대한민국에서 노동자 계급 대중에 기초한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실험은 일단 실패했다.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선거 사태는 진보정당 실패 역사의 끝에서 두 번째 쯤 되는 에피소드이다.

이번 일은 물론 예견된 것이었다. 2008년 분당이 민주노동당 내 패권주의 때문이었고, 2011년 진보신당-민주노동당 통합 논의 과정에서 진보신당 독자파들이 주되게 정파 패권주의 재발 우려를 거론하며 통합을 반대했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진보정당 내 민주주의 파괴행위에 대한 경고는 계속되어 왔었다.

오히려 이에 대한 집단적 묵인과 방조가 문제였다고 볼 수도 있다. 진보정당 통합과 야권연대를 그토록 강조했던 시민사회인사, 대학교수, 소설가, 그리고 무엇보다 언론인들은 민주노동당 내부의 정파패권주의에 대한 경고에는 아예 관심도 없었다가 이제 와서 개탄하고 탄식하는데 이래서 평론가 자리는 속편한 법이다.

하지만 사실 이런 것들은 이번 사태의 핵심이 아니다. 진보정당 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보기에 진짜 핵심은 노동정치가 몰락했다는 점이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때, 정파의 패권주의 보다는 정파패권주의의 토양 자체가 더 문제라는 것이 당시의 진단이었다. 패권주의가 해소되기 위해서는 정파를 압도해야 하며, 정파로부터 자유로운 다수의 건강한 노동대중이 당을 이끌어가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길이라는 해답도 나와 있었다.

노동대중과 함께 한다는 진보정당의 기본 원칙에 집중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보정당 운동의 커다란 한 흐름은 대중적 토대 확대보다도 당장의 의석수 확보에 몰두했고, 또 하나의 흐름은 노동정치의 확대에 거의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 채 세월을 보냈다. 한편 민주노총은 진보정당을 건설한 주도세력에서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단순유권자집단으로 후퇴해 갔다.

이런 점에서 통합진보당의 울산, 창원 등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의 패배와 이번 비례대표 부정선거 사태는 모두 노동정치실패의 결과물들이다. 진보신당이 김순자 후보를 비례 1번으로 내세워 놓고도 3% 득표에 실패한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통합진보당이 현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든 노동정치의 관점에서 그 전망은 밝지 않다. 형식적 민주주의 규칙에 익숙할 국민참여당계가 문제를 제기했다는 면에서 이번 통진당 사태는 과거 민주노동당 당시 PD세력이 NL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정파문화를 공유하는 측면이 있었던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점 때문에 이번 사태가 가장 바람직하게 풀려봐야 그 귀결은 결국 통합진보당 내 자유주의적 흐름의 확대이고 이는 올해 대선에서의 야권연대와 연립정부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노동조합의 총연맹체가 지지하는 진보정당이 자유주의 보수정당과의 연합 및 공동정부 구성으로 자기 역할을 규정할 때, 노동대중을 굳건한 기반으로 한 진보정당이라는 꿈은 보수-자유 양당제 하에서 자유주의 정당의 하위파트너로서만 명맥을 유지하는 제3당 혹은 궁극적 소멸이라는 현실로 결론 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대한민국 진보정당 운동 실패의 마지막 에피소드다. 이제 노동자 정치는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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