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단호했다. 쌍용자동차가 매각되고 ‘망가지는’ 과정을 처음부터 쭉 지켜봐 온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부의 책임”이라고 단언했다. 정종남 투기자본감시센터 기획국장이 언급한 ‘정부’에는 이명박 정부와 노무현 정부, 그리고 김대중 정부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정 국장은 “어느 누구도 상하이차가 장기경영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상하이차가 손을 떼고 나간 뒤 지난해 맞이한 새 주인(마힌드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럼 어떤 대안이 있을까. 그는 “마힌드라가 나간다고 하면 지금이라도 쌍용차를 공기업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3일 정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와의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쌍용차 문제’가 장기화되고 있다. 이런 비극이 어디에서 시작됐다고 보나.
“상하이차에 매각된 것 자체가 애초에 문제였다. 당시 (매각이 추진되던) 2004년에 어느 누구도 상하이차가 장기경영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우려대로 실제로 4년 만에 털고 나간 거다.”

-대우가 손을 떼고 쌍용차에 투입된 공적자금이 얼마나 되나.
“2002년 2월에 (당시 쌍용차의 주채권은행이던) 조흥은행에 공적자금 1조원을 부었고, 2천억원의 금융지원을 했다. 채권단 출자전환도 있었다. 2002년 3월에 1조 2158억원, 2011년 11월에도 1조원 가량 있었다. 2000년에 1160억원도 있었고. 뿐만 아니라 주식감자도 있었다. 말하자면, 한 번 무너지고 나서 지속적으로 정부의 돈이 들어갔다. 이렇게 정부가 돈을 지원하고 구조조정 하면 부실이 없어지니까 당연히 재정 상태는 좋아진다. 최종적으로 쌍용차를 인수한 상하이차 입장에서 보면 가만히만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주가가 오를 수밖에 없는 조건으로 만들어진 기업이라는 거다. 외국자본이 한국 정부를 통해서 한국 기업을 살 경우 대부분 수익을 내는 이유가 다 거기에 있다. 정부가 부채를 다 털어주고 구조조정도 다 해주고 ‘깨끗하게’ 해놓은 상태에서 매각을 하기 때문에, 기업을 손에 쥐고만 있어도 수익을 내게 되어 있다. 따라서 따지고 보면 나중에 재매각을 통해서 얻은 차익의 원천은 결국은 그 이전시기에 정부가 쏟아 부은 돈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정부의 개입을 요구하는 게 정당하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그럴 자격이 있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

-쌍용차 국내 시장점유율도 낮고, 경쟁사에 비해서 일류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려워서 정부가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해 매각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닌가.
“쌍용차는 버린 거다. 점유율도 얼마 안 되고 수출도 별로 안됐다. 이익은 꾸준히 내고 있었지만 당시 국내 시장에서 쌍용차가 가지고 있었던 독자적인 경쟁력도 많이 상실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동차 산업이라는 게 하청업체와 연관 산업이 많다. 쌍용차에 고용된 인원이 당시 6천명밖에 안됐지만 하청업체까지 합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3-4만 명은 된다. 이 사람들이 갑자기 고용이 불안해지는 상황이었는데, 이런 문제에 대해서 정부가 무책임하게 대응했던 거다. 또 정부가 이미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던 거 아닌가. 정책 결정자들 입장에서는 이윤을 앞세운 논리로만 본다면 쌍용차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고, 없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을 수는 있다. 그런데 지금 그런 문제가 아니지 않나. 바로 그런 논리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지 않나.”

-당시 ‘먹튀’ 우려가 있었음에도 굳이 정부가 매각을 추진했던 이유가 뭘까.
“98년 외환위기 이후에 정부가 외자유치에 기를 쓰고 나섰다. 2000년대 초중엽까지도 그런 분위기였다. 외국계기업이 한국에 투자하거나 한국기업을 인수하게 하는 걸 통칭해서 외자유치라고 불렀다. (외국계기업의 인수는) 외자유치의 1등공신으로 대접받았다. DJ정부 때는 우리가 먹고 살려면 필요한 거 아니냐는 느슨한 논리와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는 공감대에 기반해서 정부가 밀어붙였고, 이걸 노무현 정부가 이어받았다. 지금 와서야 비로소 외자유치가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가 공론화되는 거지, 그 이전까지는 학계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진보진영 일부에서도 무비판적이었다. 당시에는 아무 문제의식이 없었다.”

-쌍용차 사태에서 기술유출 문제가 늘 지적된다. 그런데 지난 2월, 기술유출 혐의를 받던 쌍용차 임직원 전원에 대해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다.
“첫 번째는 내가 대주주인데, 이 회사(쌍용차)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또 다른 내 회사(상하이차)에 옮기는 게 뭐가 문제냐고 얘기한다. 두 번째는 그 기술이 별 거 아니기 때문에 국가에 해를 끼치는 기술의 반출이라고 간주하기 어렵다는 근거다. 그런데 말이 안되는 게, 한국정부가 정책적으로 국고를 지원해서 하이브리드 엔진개발에 투자를 해왔다. 그 중 하나를 쌍용차에 줬다. 경유를 기반으로 하는 하이브리드 엔진개발 기술이었는데, 정부가 지원했고 첨단기술이기 때문에 정부가 관리를 했다. 국정원에서도 관리를 했다. 정부가 실제로 첨단기술로 지정하고 돈까지 쏟아 부었으면서 이제 와서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이야기하고 있다. (법원에서는) 핵심기술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이 없이 유출된 기술은 아주 기초적인 기술이었다고 하는데, 도둑이 집에 들어가서 금고 안의 금송아지는 놔두고 현금만 가져갈 사람이 어디 있나.”

-기술유출이 이뤄지는 동안 정부가 감독을 하지 않았나, 못했나.
“정부는 방기했다. 당시 기술유출 우려가 많으니까 산업은행이 상하이차에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특별협정을 맺어서 기술유출이나 기업의 매각, 재매각, 핵심 사업에 대한 전폐를 결정할 때는 정부 또는 채권단과 반드시 협의 하에 승인을 받고 해야 한다는 조항을 나중에 삽입한다. 그런데 2006년 5월이 되면 이 특별협정을 일방적으로 해제해 준다. 당시 심상정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를 불러서 그 문제를 질의하는 과정에서, 김 총재가 시인을 한다. 정부는 이런 식으로 사실상 방조 또는 적극적인 도움을 줬다. 물론 첫 번째 과오는 매각을 했던 거고, 두 번째는 상하이차가 본격적으로 먹튀를 하려고 기술유출 및 투자회수를 하려고 했던 그 시점에도 그걸 알면서도 눈 감았다는 거다. 또 상하이차가 나중에 2008년 12월이면 법정관리 신청을 한 다음에 2009년 8월 이후에 완전히 털고 나가는데, 이 기간 동안 정부가 ‘뒤처리’를 다 해준다. 상하이차는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혔다. 이게 세 번째 죄다. 그런 면에서 정부가 쌍용차 사태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으로 지목돼 비슷한 절차를 밟아 매각된 기업들이 많이 있다. 쌍용차 하나의 문제가 아닐 텐데.
“오리온전기라는 회사가 있었다. 대우그룹 계열사로 옛날에는 굉장히 유명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옛날 티비의 볼록한 브라운관(CRT)을 만드는 회사였는데, 국내에서 거의 독점적인 지위였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반으로 오면서 PDP LCD OLED로 다 넘어가면서 사양산업이 됐다. 그래서 법정관리를 몇 차례 하다가 7천명짜리였던 회사가 1300명으로 줄었다. (정부는 공적자금 3967억원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정부가 나서서 매틀린패터슨이라는 미국계 펀드에 판다. 헐값 매각이었다.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 시절인데, ‘성공적인 외자유치 모델’이라면서 국무총리 표창을 한다. 당시 신문들도 ‘곧 망할 기업이 외자유치에 성공해서 장기적인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대서특필을 했다.”

“황당하게도 그러고 나서 6개월도 안 돼서 회사가 없어져 버린다. 2005년 10월31일에 세 명의 대주주가 무슨 음식점에서 모여서 이사회를 자기들끼리 열어서 해산결의를 해버린다. 기업을 아예 청산하기로 결정한 거다. 그렇게 1300명이 바로 길거리에 나앉는다. 기계 설비들은 다 뜯어서 베트남으로 팔아 버렸다. 오리온전기는 OLED 같은 새로 깐 라인 몇 개만 남겨놨고, 이것마저 다른 회사로 합병을 해버렸다. 이건 일부 사례고, 이런 일은 부지기수였다. 주연테크, 기륭전자도 그런 사례였다. 2000년대 이후 지난 10년 동안 있었던 장기투쟁사업장, 대량해고가 벌어졌던 사업장은 다 이런 종류의 매각과 매각 이후의 대량해고 문제가 결부가 돼 있는 사업장이 많았다. 그런 경우 하나같이 돈을 버는 건 해외 펀드나 (인수자로 나선) 국내기업들이었다.”

-당시 정부 정책 책임자들이 지금 야당 입장인데, 그런 정책 흐름에 대한 반성은 찾기 어렵다.
“택도 없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서 너무 무방비였고 무지했다, 반성한다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다. 문제는 전혀 믿음이 안 간다는 거다.”

-당시 그런 정책 방향이 잘못됐다고 하면, 어떤 대안들이 가능했을까. 또 앞으로는 어떤 대안이 가능할까.
“가만히 두면 살아나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이미 돈을 다 쏟아 부어서 빚을 갚게 만들지 않았나. 정부가 계속 가지고 있어도 된다. 정부가 가지고 있으면서 수익을 내면 그 수익의 일부로 (공적자금을) 갚게 만들어서 회수를 하면 된다. 1998년 이후에 공적자금 169조를 쏟아 부었는데, 50% 정도는 아직 회수를 못했다. 실제로도 시장에서 장악력이 크거나 경제 전체의 비중이 큰 기업들의 경우는 이미 그런 식으로 (정부가 맡아서 관리를) 다 한다. 이게 가능하다는 거다.”

“만약에 어떤 기업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필요한 재화를 만들고 있고, 존속의 필요성이 인정이 된다고 치자. 그렇다면 정부가 돈을 이미 쏟아 부었고, 당장 망하는 건 아니니까 그걸 굳이 팔아서 노동자들의 고용을 불안정하게 만들 게 아니라 정부가 책임지고 운영을 하라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공기업 형태로 유지하자는 거다.”

-마힌드라 ‘먹튀’ 의혹이 또 제기된다. 어떻게 보나.
“마힌드라도 상하이차랑 똑같다. 굳이 한국에서 자동차 공장을 운영해야 할 만큼 큰 메리트가 없다. 결국 국내에서 자기들이 만들어서 팔만한 자동차의 기술을 획득하는 것이 목적인 거다. 상하이차하고 똑같은 의도다. 어느 정도 기술을 습득했다고 판단되고 양산시스템을 갖추면 손 털고 나갈 거다. 방식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당연히 그렇게 할 거다. 노동자들도 그걸 다 알고 있다. 2005~20066년에도 저희들이 1~2년 안에 오리온전기 같은 사례가 틀림없이 쌍용차에서 벌어진다고 얘기했었다. 안타깝게도 그 예측이 맞았다. 장담할 수 있다. 인도 마힌드라가 틀림없이 또 그렇게 할 거다.”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주체가 누가 있을까.
“정부가 해야 한다. 지금 마힌드라는 편한 입장이다. 정부가 산업은행을 통해서 노동자들 다 잘라 주고, 부채도 다 정리 해줬다. 마힌드라는 그냥 정리된 기업을 샀을 뿐이다. 경영상태가 회복되면 461명은 복직할 수 있다는 약속을 지금 안 지키고 있을 뿐인데, 별 책임이 없는 거다. 자기들이 들어오기 전에 다 벌어졌던 일이기 때문에. 따라서 마힌드라에게만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을 묻는 건 공허한 얘기다. 정부가 나서라고 해야 한다. 만약에 마힌드라가 나간다고 하면 지금이라도 쌍용차를 공기업화 해야 한다고 본다. 작년하고 올해 들어서 쌍용차 매출이 좀 늘었다. 말하자면 장기적으로 이 회사가 유지되는 것 자체가 손해인 상황은 아니라는 거다. 적어도 지금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과 해고된 사람들의 일자리는 유지할 역량이 되니까 정부가 인수해서 공기업 형태로 운영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노동자의 고용을 유지하는 방안으로서는 그것만큼 좋은 건 없다.”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 않나.
“달리 할 일이 없다. 싸우는 것밖에. (웃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질긴 놈이 이기는 법이니까. 최근에 이채필 장관이 쌍용차 공장에 왔다 갔다고 한다. 마힌드라한테 ‘무급휴직자 정도는 해결해야 하지 않겠냐’고 얘기를 했다고 한다. 사회적 압력이 크니까 그런 거다. 지금 쌍용차 문제로 싸움이 커지니까.”

-노동자들은 싸움의 ‘뚜렷한 대상이 안보여서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대상은 명확한데, 그 쪽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니까 답답할 뿐이다. 일단 대상은 정부다. 당시 노동자들이 해고하지 말고, 당장 필요한 자금 3천억~4천억 정도 지원 해주면 우리가 일 좀 더 열심히 해서 차 만들어 판돈으로 갚겠다고 요청했다. 당시 산업은행이 눈썹 하나 꿈쩍 안 했다. 먼저 해고를 하라, 먼저 자구노력을 보이라고 얘기했다. 2646명 해고를 노조가 받아들이라는 거였다. 실제로 (파업 끝나고) 자르고 나니까 돈을 줬다. 이것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 나간 거다. 정부의 책임은 이런 거다. 경찰 보내서 진압한 것도 정부였다. 이런 점을 명확히 제기하고 싸워야 한다.”

-쌍용차 사태의 본질을 뭐라고 봐야 할까.
“경제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긴 거다. 2009년 당시는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에 전 세계가 경제위기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공포의 도가니로 빠지는 상황이었다. 위기감이 극대화됐던 시기였다. 노동자들과 진보진영의 위기감도 그랬고, 자본가들의 위기감도 더할 나위 없었다. 다시 말하면 이런 거였다. ‘자 큰 게 온다. 이제 누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남았다. 이때 어떤 모델을 만들 것이냐’하는 문제가 제기 됐다. 이 경제위기의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를 놓고 힘겨루기가 벌어졌던 것이다. 쌍용차는 그 하나의 표상이 됐다. 모델이었다. 그래서 당시 모든 운동들이 집중을 했고, 마찬가지 이유로 정부도 모든 힘을 그쪽으로 집중을 했다. 그런 진압은 80년대 후반 이후 처음이었다. 정부가 결국 그 위기의 대가를 철두철미하게 노동자들에게 다 떠 넘겼고, 그 결과가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게 핵심이라고 본다.”
“왜 노동자들이 그 책임을 져야 하나. 그런 점에서 헤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언제 또 그런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 그러면 다시 또 힘겨루기가 벌어질 수 있다. 그때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 누구에게 뒤집어씌울 거냐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면 이렇게 된다는 걸 ‘쌍용차 사태’가 보여준다고 본다. 따라서 이런 걸 막기 위해서 범진보진영이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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