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 PD, 경기동부연합, 주사파, 인천연합, 당권파, 당권파 비주류, 자민통, 전진, 패권주의, 정파주의, 자주파, 쇄신파, 연합전선….’

통합진보당 당내 문제가 관심의 초점이 되면서 운동권 전문용어들이 기사에 넘쳐나고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단어가 적지 않다.

운동권 용어에 생소한 일반인들이 볼 때 주사파는 뭐고 자주파는 또 뭔지 경기동부연합은 뭐고 인천연합은 또 뭔지, 자민통은 무엇이고 전진은 또 무엇인지 ‘패권주의’ 얘기가 많은데 사전에 나오는 뜻인지 아니면 심오한 다른 뜻이 있는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 수밖에 없다.

운동권 안팎에서 나름대로 경험을 축적한 기자들은 신나서(?) 일반인들은 알기 쉽지 않은 운동권 전문용어를 사용해가며 기사를 써내려가고 있지만, ‘자기만족’일 수도 있다. 기사는 운동권 유경험자를 위한 친절한 설명자료, 팩트 안내문이 아니라 국민에게 전하는 말 그대로 ‘뉴스’이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건은 언론 입장에서도 참으로 곤혹스러운 사안이다. 통합진보당을 출입하는 기자들은, 특히 진보성향의 언론사 기자들은 나름대로 그쪽 세계의 메커니즘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기사 작성에 고민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알고 있는 어디까지를 기사화해야 하는지, 속속들이 기사화한다고 해서 일반인들이 이해를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일반인도 알기 쉬운 언어로 표현할지 등등 고민은 하나 둘이 아니다.

운동권 전문용어를 통역해주는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독자들 역시 적지 않을 것이다. 사실 진보정당 당내 문제는 언론의 주된 기사 대상이 아니었다. 일반인에게 쉽게 이해시키기도 어렵고, 진보정당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꿰고 있는 기자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운동권 세계를 잘 모르는 기자들이 어설프게 배운 지식으로 진보정당 역학구도를 정리하다보면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에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건처럼 진보정당 문제 역시 언제든 뉴스의 초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은 있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한 이후 12년이 흘렀다. 민주노동당 창당 초기에는 변변한 기자실도 없었지만, 당사를 찾는 기자들은 더 적었다. 정말로 손에 꼽을만한 기자들만 꾸준히(?) 당사를 찾았고 취재를 했다. 그들 모두가 현재 진보정당 출입기자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언론은 새로운 얼굴로 진보정당 출입기자를 배치하고 있다. 해마다 월마다 얼굴이 바뀌기도 한다. 진보정당의 역학구도를 이해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꾸준하고 깊이 있게 진보정당을 출입해야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지, 어떤 선택이 있을 때 그 배경은 무엇이고 노림수는 무엇인지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진보정당 기사에서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의견을 기사로 내보낼 때 그 주장이 해당 정당의 보편적인 의견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정파별로 의견을 하나하나 전하다보면 기사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기사 쓰기가 더욱 어렵다는 얘기다.

진보정당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기자들 역시 자기와 가까운 또는 과거 학창시절 운동권 출신의 경우 자기 정파 쪽 당내 인사들의 의견을 담아 기사를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진보정당을 출입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 중 하나는 주요 언론에서 진보정당 전문기자를 육성하는 데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인사이동, 출입처 이동의 일환으로 잠깐 출입하다 마는 그런 공간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에 비해 기사 비중도 적고, 어렵게 취재해서 쓰더라도 크게 실리지 않기에 방치된 측면도 있다. 그러나 한국정치의 토양을 비옥하게 하려면 진보정치의 분발이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제대로된 진보정치 기사가 필요하고, 그것에 대해 목말라하는 독자들도 있다.

운동권 전문용어를 나열하면서 자신의 ‘지적 우월감(?)’을 보여주는 그런 기사보다는 진보정치의 맥을 알기 쉽게 전해주는 그런 전문기자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진보정당도 변화가 필요하다.

언론사마다 심지어 개별 기자마다 성향을 따지고 우리 편인지 아닌지 구분해서 정보접근의 차등을 두는 ‘관행’은 지양하는 게 좋다. 과거 학생운동 시절 어떤 정파 쪽에 속에 있던 이들이라고 해도 지금은 해당 언론사를 대표하는 기자일 뿐이다.

기자의 역할은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는 것이지, 과거 자기 정파 쪽 입장에서 진보정치에 개입하는 게 아니기에 그렇다. 물론 그런 기자가 없지는 않지만 다수의 기자는 그렇지가 않다.  

다시 현실을 얘기해보자. 그리고 고민해보자.

진보정치가 아주 깊은 어둠의 터널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아스팔트 위에서 흘렸던 과거의 땀과 눈물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고, 답답한 마음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점은 진보의 가치를 알리고 실현하고자 했던 많은 사람이 있었고 그들의 땀과 눈물의 노력은 조금씩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꿔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폐허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모습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밑거름 아니겠는가.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