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공동대표단 사이에서 비례경선 부정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발표와 향후 대응에 대한 극명한 의견 대립이 공적으로 표출됐다.

4일 오후 2시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의 시작에 앞서 공동대표 4명은 모두발언에서 전혀 다른 입장을 뚜렷이 드러냈다. 이정희 공동대표는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의 절차와 결과 발표의 정당성과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조사위의 발표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고 천명했다. 반면 유시민 심상정 조준호 공동대표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발언을 했다.

이 대표는 “해당 당원들은 진상조사위로부터 (조사기간 동안) 전화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전혀 설명 기회도 갖지 못한 채 부정의 당사자로 내몰렸다. 과연 누가 진보정치에 십수 년 몸바쳐온 귀한 당원들을 책상머리에서 부정행위자로 내몰 수 있나”라며 “진상조사위는 진실을 밝힐 의무만 있을 뿐이지 당원을 모욕할 권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실상 진상조사위의 역할과 조사과정, 발표결과 등의 정당성을 전면 부정하고 나선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대표는 이어 “부끄러운 상황을 아무리 빨리 벗어나고 싶어도 당원 한 사람의 명예라도 헌신짝처럼 취급해선 안된다”며 ‘총선 이후 자신이 부산에 내려가 2주간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했다. 부정 경선과 관련해 다른 세 대표인 유시민, 심상정, 조준호 공동대표의 입장과 대응에 동의하지 않음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는 이어 “진상조사위의 결과발표는 불신에 기초한 의혹만 내세울 뿐 합리적인 사실과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며 “부풀리기식 결론은 모든 면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한 진상조사위원회가 ‘정파적 이해관계에 의해 특정 정파를 몰아세우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대표는 “저는 (조사과정에서) 당원들의 개인 정보를 지켜내지 못했다. 비밀투표 원칙이 정파적 이해관계에 침해됐다”며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 당내에서 일어났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대표의 발언이 끝난 직후 중앙위원회의에 참석한 청중들 사이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장시간 이어졌다.

반면 유시민 심상정 조준호 공동대표의 입장은 이와 분명하게 갈렸다.

유 대표는 “저는 진보정당 경력이 5개월밖에 안 되는 사람이다. 많은 기대, 설렘, 걱정과 불안을 안고 진보통합에 합류해 지난 5개월 여러분과 함께 이 당을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그런데 경선과 관련해 제 자신의 많은 의문점이 있었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점들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당연히 선거가 끝나면 공개돼야 마땅할 현장투표소별 데이터를 중앙선관위는 여태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여러분 이런 선거 보신 적 있으십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는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후보를 선출하는 투표결과가 최소한의 투명성조차 당원과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는다면 무엇을 담보로 주장할 수 있을지 정말 난감하다”고 명백한 진상 규명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또 “만약 오늘 회의(전국운영위원회의)에서 당의 앞날을 밝히고 우리 자신을 쇄신해나가고 국민의 눈높이와 맞춰나갈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나가지 못한다면 당의 앞날이 굉장히 불투명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저는 부정이냐 부실이냐를 떠나 이번 비례 경선 사태는 민주주의 일반 원칙과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주요 당직자들과 당원들이 하는 일이 있는 그대로 세세하게 전체 당원과 국민에게 공개됐을 때, 우리의 행동양식이 옳다고 하는 증거가 있거나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 경우에 우리의 생존이 가치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심상정 대표는 2008년 민주노동당에서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갈등으로 인한 분당사태를 언급하며 통합진보당에서 폐쇄적인 조직논리가 혁신돼야 함을 강력히 호소하고 나섰다.

심 대표는 “저는 2008년 민주노동당 비대위원장을 맡았고 혁신을 제기했지만 실패했다”며 “그리고 분당의 책임자로 기록됐다”고 운을 뗐다. 이어 “진보신당 조직적 결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통합을 선택한 이유는, 더 이상 폐쇄적인 조직논리를 넘어서서 대중적인 진보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는 미완의 혁신의 과제를 통합된 진보정당의 틀 안에서 완수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심 대표는 “제가 그동안 진보정치를 하면서 가장 어려움을 느꼈던 대목이 진보정치 내부의 조직논리, 상황논리와 국민과 소통 논리 사이의 대립이다”며 “통합진보당은 헌법 또는 정당법으로 뒷받침되는 공당이기에 무엇보다도 공천의 과정을 비롯한 모든 정당활동은 국민께 공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치부를 가리는 관성과 유산을 과감하게 척결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당이 살길”이라며 “저는 당원 동지 여러분을 믿는다. 반드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길에 여러분과 모든 것을 걸고 함께 하겠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어조가 다소 격앙되기도 했다.

심 대표는 또 진상조사위의 구성, 권한, 책임은 대표단의 합의에 의해 전권이 위임된 것임을 밝혔다. 그는 “진상조사위의 결과발표에 대해 이러저런 제기가 있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진상조사위는 대표단의 합의로 구성돼 조준호 대표께 드린 것”이라며 “조사기간 동안 이 대표께서 잠시 자리를 비웠지만 안 계신 동안 다른 결정, 또 진상조사에 영향을 주는 결정을 대표단이 추가한 것은 없다”고 이 대표의 발언에 반박했다.

진상조사위원장을 맡았던 조준호 공동대표는 자신과 진상조사위는 조사과정과 결과발표에 있어 어떠한 입장과 정파의 이해를 대변하거나 치우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조 대표는 “저는 이번 조사위에 임하면서 많이 괴로움이 많았다”며 “저는 당에 온지 백날밖에 되지 않았다. 당에 올 때 이정희 대표님이 노동중심성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꼭 와달라고 부탁해 왔다”고 말했다. 조사위의 결과발표가 옛 국민참여당계와 옛 진보신당에서 합류한 통합연대 등 소위 ‘비당권파’로 분류되는 계파적 이해관계에 휘둘린 것이 아니냐는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이처럼 밝힌 것으로 보인다.

조 대표는 “그렇게 와서 제가 당에 온지 얼마 되지 않는데 당의 대단히 어려운 문제를 맡게 되는 것에 걱정이 매우 많았다”며 “그러나 저는 어떠한 입장과 정파의 이해를 대변하거나 흔들려서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고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조사했고 조사위 구성도 그렇게 되도록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이어 “조사위 진행되면서 어떠한 의견도 권고도 받지 않았다. 조사위원들이 온전히 조사에 임할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이 제 임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했다”고 밝혔다.

그는 “조사위원들과 저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조사를 했고 그 내용이 온전하지는 않으나 저희들이 할 수 있는 만큼 했다”며 “조사 결과에 대해 어떤 분이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또 어떤 분이 득이 된다는 고려는 하지 않았으며 이 결과에 어떤 의견도 달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시민, 심상정, 조준호 공동대표의 발언이 끝난 후에는 싸늘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조 대표의 발언이 끝난 직후 중앙위원회의에 참석한 당원들 사이에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고 외치거나, 조 대표가 조사결과를 상세히 보고하는 중 “의혹 제기 그만해라”, “확실한 것만 얘기해라”는 등 거센 항의와 반발이 이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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