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은 총선의 화두가 됐고, 대선도 비켜설 수 없는 문제이다. 친재벌 정당으로 불리는 새누리당조차 노동자의 도시, 울산에 ‘비정규직 철폐’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정치권에서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실제 2000년 통계청이 시작한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를 보면 2011년 8월 현재 1750만 노동자 중 862만 명이 비정규직이다. 2004년 이후 800만 명을 넘은 이래 줄어든 적 없다. 2000년 8월 41.6%에서 2011년 8월 49.2%로 늘었다.

사회보험 혜택의 격차 또한 심각하다.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건강보험의 직장가입률은 정규직의 3분의 1 정도 수준. 정규직이 100%에 가깝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직장가입률은 32%, 32.2%다. 고용보험은 35.6%로 미가입이 63.4%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구호는 이런 부실한 사회 안전망을 가리킨다.

이 와중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운동 주류는 선거를 맞아 최대의 개입을 시도했다. 정책협약을 맺고, 특정 정당에 지지를 선언했다. 노동운동이 정치권을 압박하는 목적에서 이루어진 전략이었다.

총선에서 경남 울산과 창원 등 이른바 노동블록이 무너지면서 노동계의 몫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쌍용차 등 노동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비정규직 문제를 쟁점으로 만들려는 노동계의 노력 또한 계속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8월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27일 영등포에서 만난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민주정부 원죄론’과 ‘MB 심판론’을 모두 경계하면서 실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요구를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남신 소장은 “민주노총의 정치적 요구는 노동조합법 2조에 명시된 노동자와 사용자의 개념을 확대하고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부와 사법부의 자본 편향적 해석에 매달리고 이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간접고용, 불법파견의 법적 근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비정규직·정리해고제 철폐와 같은 거대한 구호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는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노동조합 가입률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철폐와 같은 구호가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 기간제 노동자 사용 사유 제한 등 구체적인 요구를 내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입법 요구에 가장 적절한 시기에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민주노총이 이대로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런 구호들이) 도덕적, 역사적으로 온당한 구호이긴 하지만 미조직 대중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구호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가 비정규직 확산을 막는 방법으로 든 것은 구체적이었다. 자본은 직접고용 계약직 노동자를 2년 이상 고용했을 때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의제조항(고용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으로 바꾸고, 불법파견의 근거가 되는 도급과 파견의 분리에 대해 보다 엄격한 기준을 세우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 소장은 “자본은 철폐보다 이런 규제를 더 부담스러워 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반MB 전선에 대해 “보수정당들의 프레임에 민주노총이 들러리를 서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를 ‘악마화’하는 걸로 해결할 수 없다”며 오히려 이런 흐름에 결합한 민주노총을 비판했다.

그는 이어 노동운동의 제도정치 개입 문제에 대해 “전에는 진보정당이 있었지만 지금은 노동문제에서 많이 탈피해 있는 상황”이라며 “98년 이후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질서를 반전시킬 정치적 주체를 조직하고 당사자인 비정규직 노동자가 직접 나설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총선 때 너도나도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새누리당 같은 경우 울산에 ‘비정규직 철폐’를 현수막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가 간단치는 않다. 김대중 정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 어떻게 보나.
“1997년 IMF 외환위기는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절반 이상으로 고착화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물론 이전에도 건설 일용직, 불법 파견 등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었지만 임금 등 노동조건에 있어 차별이 이렇게까지 심하진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비정규직이 당연시되는 사회가 됐다.”

-김대중 정부의 실정 중 하나는 IMF의 구제금융과 정리해고를 맞바꿨다는 것이다. 어떻게 평가하나.
“98년 정리해고제와 파견법이 입법화됐다. 한국사회의 노동을 완전히 바꾼 계기가 됐다. 정리해고는 정규직 일자리조차 불안하게 만들었고, 파견법은 중간착취를 가능하게 했다. 자본에게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셈이다. 반대로 노동기본권이 대단히 위축되거나 제한됐다.”

-당시 정리해고는 ‘고통분담’으로 정당화됐지만 파견법에 대해서는 큰 논의가 없었는데.
“원래 근로자공급사업(파견)은 금지였다. 한국노총을 제외하고 못하게 돼 있었다. 자본에게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셈이다. 고용을 무한하게 유연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은 32개 업종 제한이 늘어났고, 시민들은 이제 파견과 비정규직을 취업의 1차 관문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비정규직은 얼마나 늘어났나.
“2000년 통계청이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를 시작했다. 통계를 조합해보면 2011년 8월 현재 전체 1750만 중 862만 명이 비정규직이다. 2004년 이후 800만 명을 넘었고, 내려간 적이 없다. 비율로 보자면 2000년 8월 41.6%에서 2011년 8월 49.2%로 늘었다. 여기에 특수고용노동자, 하청 등 간접고용노동자를 포함하면 9백만에서 1천만 명 정도 될 거라 추산한다.”

-노동조건 격차도 심각한데.
“임금, 기업 내 복지 격차가 심화됐다. 단 한 번도 역전, 반전된 추세 없이 흘러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2000년 정규직(157만 원)과 비정규직(84만 원)의 임금격차는 73만 원 정도였지만 이제 272, 132만 원으로 그 차이가 140만 원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특히 심해졌다. OECD 최대 규모, 최다 격차다.”

-노동 양극화는 어떻게 진행됐나.
“저임금 노동자(워킹 푸어)가 많이 생겼다.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노동자가 200만 명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3분의 1에 가까운 32.4%가 최저임금(시급 4320원)도 받지 못한다. 사회보험 혜택의 격차 또한 해소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건강보험의 직장가입률은 정규직의 3분의 1 정도 수준이다. 정규직이 100% 가까이 가입돼 있지만 비정규직은 아니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직장가입률은 32%, 32.2%다. 고용보험은 35.6%로 미가입이 63.4%다.”

-19대 총선에서 여야가 공통으로 내건 것 중 하나가 ‘비정규직 해결’이다.
“보수정당들도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증거다. 선언에 그칠지는 두고봐야하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특히 박근혜 조차 비정규직 문제를 얘기할 정도다.”

-참여정부 원죄론 또한 불거졌다. 사실 비정규직을 양산한 건 김대중 정부 아닌가.
“외환위기 등 외부 압력을 고려해야겠지만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김영삼 정부도 세계화와 경영합리화 등을 표방하긴 했지만 김대중 정부의 정리해고제와 파견법 입법화가 결정적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이를 이어 나갔다.”

-이명박 정부와 어떤 차이점이 있나.
“남북관계, 대북정책뿐이다. 경제정책에 있어 차이는 없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일정 부분 반성하면서 복지국가모델 설계를 얘기한 적도 있다. 이명박 정부와 비교해 자세와 태도는 대단히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재임 중 경제정책, 노동정책에 있어 차이는 없었다. 개인적인 이념, 철학의 지향의 차이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정책, 입법수단, 역할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노동조합 조직률이 떨어졌다. 지난 민주정부가 소악이라면 이명박 정부는 ‘거악’아닌가.
“한국의 노동자 열 명 중 한 명만이 노동조합에 가입돼 있다. 상담할 곳조차 없이 불이익을 감내하며 일하는 미조직 노동자들이 많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서 조직률이 급감하고 있다.민주노조 운동을 무력화하는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와 타임오프제를 보자. 사용자는 이를 이용해 비정규직 없는 사업장을 깨고 있다. 유성기업이 대표적이다. 한진중공업을 이겼다고 하지만 지금 어용노조가 절반 넘게 차지했다.”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은 어땠나.
“2006년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면서 분신한 고 허세욱씨에 대한 노 대통령의 발언을 떠올려보자. 개인이 가진 도덕적 인식의 한계였다고 본다. 일부에서는 ‘관료와 자본에 둘러싸여 사면초가였다’는 평가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야합한 거다. 노무현 정부에 구속된 노동자가 가장 많았다.”

-반MB 전선에 대한 비판 논리이기도 하다.
“민주정부 10년과 이명박 정부를 관통하면서 우리 사회에 노동 양극화, 사회 양극화가 구조화됐고 안착됐다. 그렇게 때문에 이 문제를 책임질 세력을 지목하는 것도 힘들다. 한때는 진보정당이 있었지만 노동문제에서 많이 탈피해 있는 상황이다.”

-‘원죄론’도 ‘정권심판론’도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말했다시피 책임질 정치세력을 지목할 수 없는 문제도 있고, 보수정당의 프레임에 갇혀 결국 정치에 동원된다는 느낌이 강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를 ‘악마화’하는 걸로 해결할 수 없다. 98년 이후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 질서를 반전시킬 정치적 주체를 조직하고 당사자인 비정규직 노동자가 직접 나설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데 노동운동은 지나치게 우경화되고 있다.”

-민주노총의 야권연대 지지를 얘기하는 것인가.
“야권연대에 대해서도 정치공학적 관점, 전술적 측면에서는 동의하지만 정권교체가 노동운동의 지향점이 돼서는 대단히 곤란하다. 민생문제, 노동문제를 경시하게 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알맹이 없는 대동단결로 가기 십상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않았나. 보수양당 체제에 진보정당은 들러리가 돼 왔다.”

-우경화된 민주노총은 필요없다는 ‘폐기론’도 나오고 있는데.
“민주노총은 재활용해야 한다. ‘뻥파업’(파업한다고 선언하고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난도 있지만 8월 총파업에 대한 열의가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게 바닥이려니 했는데 총선이 끝난 뒤 아직 바닥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셈이다. 총파업을 위한 수련회에 역대 가장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한다. 김영훈 위원장은 구속을 결의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예전같이 백화점식 요구안을 낸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철폐·정리해고 금지·노동법 전면 재개정 등 3가지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한국노총의 좌클릭도 눈에 띈다.
“한국노총은 민주통합당과 기간제노동제 사용 사유 제한,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간접고용노동자의 원청 사용자성 인정 요구 등 정책협약을 맺었다. 그 진정성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아있다. 실천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은 교섭보다 투쟁이다. 정당과의 정책 협약을 구체적으로 채우고, 이를 강제하려면 ‘종이호랑이’가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 대선에 기대기만 해서는 허탈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근거가 뭔가.
“이번 총선에서 경남 창원, 울산 등 노동블럭에서 당선된 진보정당 의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지도자로 성장한 노회찬, 심상정이 있지만 민주노총의 영향력은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사실상 몰락했다고 봐야 한다.”

-현장 조직화도 중요하지만 입법 요구 또한 진행해야 하는 게 현실적이다. 총선과 대선이 겹치는 올해는 입법 요구에 가장 유리한 시기일 수 있다. 민주노총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뭐가 돼야 하나. 민주노총에게는 지난해부터 시행된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와 타임오프제(유급근로시간면제제도) 문제가 계속 중요해 보인다. 창구단일화로 어용노조가 만들어지고 있고, 타임오프는 노조 활동가를 지역본부와 산별본부 등 상급단체로 파견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규모를 크게 줄이고 있지 않으나 조직률이 계속 떨어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와 타임오프에 대한 수정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900여만 비정규직, 중소영세사업장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 요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총파업의 주축이 건설노동자와 화물연대인 점만 봐도 그렇다. 비정규직이 사회적 쟁점이 된 만큼 여기에 집중하는 게 맞다. 어느 때보다 한국사회 전반에 노동이 왜소화돼 있고, 실제에 있어 사회적 시민권이 많이 박탈돼 있다는 것을 비정규직, 시민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하나.
“비정규직 철폐, 파견법 철폐 등 민주노총의 총파업 기조가 구호로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입법 요구는 굉장히 현실적이어야 한다. 파견법을 없앤다고 파견이 없어지는 것 아니다. 재벌 대기업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불법파견이니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얘기를 듣고도 과태료 물고 면피해버린다. 정리해고법 폐지한다고 대량 해고 사라지는 게 아니다. 자본에 국경은 없다. 언제든 도피할 수 있다. 오히려 강력하게 파견과 정리해고를 규율하는 게 사용자 입장에서는 부담스럽다. 예를 들어 자본은 직접고용 계약직 노동자를 2년 이상 고용했을 때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의제조항(고용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으로 바꾸고, 불법파견의 근거가 되는 도급과 파견의 분리에 대해 보다 엄격한 기준을 세우라고 요구하는 것이 더 부담스러워 한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보다 그렇지 않은 노동자가 더 많다. 그래서 과격한 정치투쟁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선거 때 확실히 드러나긴 하지만 노동자도 노동자편이 아닌 경우를 자주 본다. 이들에게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요구는 무엇인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파견법 폐지는 도덕적, 역사적으로 온당한 구호이긴 하지만 미조직 대중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구호는 아니다. 아무도 당장 가능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파견법은 철폐해야 한다. 그러나 올해로 한정한다면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 사유를 제한하고, 특수고용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간접고용에 있어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요구가 필요하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요구는 노동조합법 2조에 명시된 노동자와 사용자의 개념을 확대하고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최저임금도 빼놓을 수 없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최저임금 인상 투쟁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현장에 가 봐도 사회운동단체 활동가가 민주노총 활동가보다 많은 경우도 많다.
“민주노총이 임금 투쟁을 한다면 최저임금 투쟁을 해야 노동자계급을 대변할 수 있다. 최저임금 미만으로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30%가 넘는다. 민주노총이 이런 측면에 집중한다면 구체적인 성과도 만들 수 있고, 지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현행 4580원이다. 전년도 4320원 기준 6% 올랐다. 이는 지난해 노동자 평균 임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난해 노동자 평균 정액임금은 234만1027원이고, 시급 5610원이다.) 매년 ‘흥정’으로 결정된다는 것도 문제다.
“최저임금 같은 경우, 고용노동부에서 공익위원을 지명하고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된다. 대부분 교수다. 구성을 두고 말이 많다. 노동계와 사용자를 실제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차라리 국회에서 하는 게 낫다. 사회적으로 공론화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새누리당이 과반을 차지해서 난감하긴 하지만 사회적 압력이 쉽다는 측면에서 국회에서 결정하는 게 더 낫다고 본다. 노동자 평균임금의 절반을 요구하고 있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에 더 기대는 형태 아닌가.
“사회적 공론화가 더 쉽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만들어지고 대선에서 승리한다고 노동자 민중의 해방이 오는 것은 아니다. 반MB전선의 한계다. 반대편에는 정치 배제의 과잉이 있다. 그러나 말로만 대중운동을 강조하다보면 현실적인 투쟁은 하지 못한다. 한국 노동운동에는 정치 과잉과 정치 배제의 과잉을 주장하는 두 진영이 있다. 극복해야 한다.”

-이탈리아 노동계에서는 “모든 노동자에게 5만 리라를”이란 구호를 낸 적이 있다. 같은 10만 원 인상이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큰 금액이다. 한국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요구에 비유할 수 있다.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 가장 현실적인 요구이기도 하다. 민주노총이 내건 비정규직 철폐 구호에 대해 얘기해보자.
“우선 입법 요구는 최소한 대중적 요구들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염두해 둬야 한다. 대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의 80% 이상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그러나 비정규직 철폐는 어떻게 보면 정규직 중심의 요구일 수 있다. 비정규직은 오늘이 어떻게 될지 내일이 어떻게 될지가 가장 큰 문제다. 노조에 가입해 같이 비정규직 없애자고 얘기한들 하루 밥벌이가 중요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철폐는 굉장히 추상적인 요구일 수 있다. 최소한 이를 향상시킬 수 있는 요구가 필요하다.”

-비정규직 철폐를 내걸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비정규직 철폐는 논란이 필요 없는 요구다. 이견이 없을수록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 최대강령을 요구로 내거는 것은 투쟁동력을 소실하고 내부의 민주적 토론조차 생략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민주노총의 투쟁을 복기해보자. 인간해방과 노동해방과 같은 최대강령을 요구를 내건 다음 나중에 협상하는 게 반복된다. 이건 싸움의 기본이 아니다. 조합원들은 바보가 아니다. 내부에서 논란이 되더라도 요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정리해야 한다. 이견이 없을수록 이해가 걸려있지 않은 거다. 예를 들면 서울시의 정규직 전환 조치 같은 걸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기간제법 상 2년 이상 노동자에 한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지만 서울시는 2년 미만이더라도 상시지속업무에 대해 1054명에 대해 모두 전환시키겠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세습채용이 논란이 됐었다. 취재결과 꽤 많은 사업장의 정규직 노조가 자신의 일자리를 버리면서까지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이른바 ‘세습채용’을 요구하고 있고, 실제 그런 현장도 꽤 있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이를 두고 ‘고용지옥’이라고 했다. 고용 없는 성장을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정규직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포섭됐다는 말이다. 정규직-비정규직 간 노노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보나.
“금속노조 내 많은 사업장에 세대 간 고용승계 조항이 단체협약에 있다. 대중조직은 자기 조합원의 이해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지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적 안전망을 기업별 노조가 책임지는 구조를 극복하지 않으면 이런 게 계속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연대임금제 또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나누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임금 삭감이 문제다. 노사정 합의가 돼야 할 사안이다. 또 좋은 일자리가 재벌 대기업에 몰려 있다는 점에서 관철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기업 생태계에서 최상층에 위치한 재벌 대기업에서 하지 않는다면 중소기업도 가능하지 않다. 사용자의 선의에 기대야 한다. 그래서 공공부문에서 이런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

-회의적이라는 건가.
“일하는 시간을 합리적 수준에서 줄이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올해 이 구호가 중심적인 요구가 되기에는 무리가 있다. 기업집단과 재벌구조를 개혁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연대임금제를 요구했고, 특정 산업에서 그 이상을 보장하지 않으면 기업을 퇴출했다. 그리고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에게 취업교육을 제공했다. 안전망이 기업이 아니라 사회에 있었던 셈이다.”

-비정규직에게 노동시간 단축은 어떤 의미인가.
“1998년 이후 확립된 신자유주의 경제질서 전반을 개보수하지 않고, 혁신하지 않고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한다면 그 영향 자체는 한계적이고 반감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에게 큰 의미가 없다. 임금을 더 받기 위해 더 일해야 하는 사람이 비정규직이다.”

-다시 정리해보자. 대선을 앞둔 민주노총의 총파업 요구는 뭐가 돼야 하나.
“파견법부터 얘기해보자. 불법파견을 분별하는 구체적인 법적 기준을 둬야 한다. 현행 직업안전법에는 그런 게 없다. 공은 노동부로 넘어가지만 사용자 편향적으로 안이하게 해석한다. 고용의무조항을 고용의제로 되돌려야 하고, 2년 미만이더라도 불법파견 노동자라면 직접고용해야 하는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기간제 노동자 문제는 ‘사용 사유제한’이 핵심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명문화를 통해 차별 시정의 전제를 마련해야 한다. 비정규직 차별시정 요구를 노동조합에서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간접고용, 특수고용노동자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직접 고용해야 할 노동자들을 간접적으로 고용해 노조를 만드는 것조차 어렵게 한다.”

-한편에서는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얘기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조를 만들고 싸움을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싸워라”고 독려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사내하청노동자들의 경우 원청이 계약을 파기해 사업장이 통째로 없어지거나 장기투쟁이 되기 일쑤다. 또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경우, 대정부 투쟁이 되기 쉽다. 자본은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는 가장 잘 연대한다. 그런데 노동운동은 아니다. 양대노총이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 함께 하는 것부터 총파업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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