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총파업 93일, KBS 총파업 57일째이자 파업중 처음 맞게 된 노동절에 방송사 기자 조합원들이 “이제야 노동자들의 고통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며 “이제 돌아가서는 정말로 노동문제의 심각성을 파헤치고 뜯어고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는 성찰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MBC 노동조합(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은 지난달 말로 석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았고, KBS 새노조와 연합뉴스 노조는 한 달에서 한 달 반씩 급여없는 월급날을 맞았다. MBC 노조의 경우 집행부 다수가 MBC 경영진으로부터 손해배상소송과 이에 따른 가압류까지 결정됐다. 방송을 국민에게 돌려주겠 다는 목표로 시작했지만 파업이 길어지면서 이제 방송·언론노동자들은 파업의 현실적인 고통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풍족했던 급여와 남부럽지 않은 직업인이었던 방송·언론인들은 이제 전셋값 대출금 마련, 병원비 해결 등 시급한 생활의 고통을 맞게 된 것이다.

전 MBC 노조 부위원장을 했던 나준영 MBC 영상취재부 기자는 1일 이번 파업을 통해 노동절에 처음 쉬게 됐다며 이날 오전 등산을 다녀와 느낀 것을 소개했다. 나 기자는 “노동자가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살기힘든가를 뼈속깊이 느끼게 됐다”며 “MBC 파업을 하면서 김재철 사장 등 사용자가 얼마나 임의대로 불합리하게 하는 지를 많이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 기자는 노동자에 대해 “과거 취재원 또는 취재 대상으로서 취재현장에서 그들의 삶이 힘든지를 보고 느꼈을 뿐 내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며 “보도를 할 수 있는 입장에서 봤기 때문인데, 이제 석달째 월급도 못받고, 전세자금 대출받고, 부모님이 아파서 병원비를 내야 하는데 임금이 끊어지는 상황을 맞았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 간절함을 피부로 겪게 된 것”이라고 털어놨다. 파업시 손배소, 가압류라는 문제가 MBC 이나 <2580> 등 프로그램에서나 보는 일이었지만, 파업을 하면서 당해보니 이것이 고통이라는 것을 절감했다고 나 기자는 전했다. 이 때문에 그는 파업을 끝내고 올라가게 되면 이런 고통을 낳는 사업장의 문제 뿐 아니라 구조적인 뿌리를 파헤치고 뜯어고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나 기자는 앞서 파업 80일을 넘겨도 꿈쩍않고 무시로 일관한 이 정권을 보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단상을 전하기도 했다. “이 정권 초반부터 박해와 고난을 받아 오며 투쟁하고 있는 수많은 비정규직노동자, 정리해고노동자, 용산철거민, 4대강에 쫓겨난 농민들, 제주강정마을의 주민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라 이야기되는 수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265일을 타워크레인에서 버틴 김진숙은 또 어떠했을까?”. 그는 “파업이 80일을 지나고 본격적인 삶의 문제들이 매일 밤 엄습하고서야, 그들의 고통과 눈물과 외침이 만들어낸 마음의 소리들이 조금씩 내 귀에 들리기 시작하는 것 같다”며 “이 말도 안돼는 세상 어떻게 끝을 낼꼬”라고 반성했다.

더구나 그동안 방송이 얼마나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비추지 못했는가에 대한 반성도 나왔다.

김우진 KBS 새노조 노사국장은 1일 “우리가 KBS와 MBC라는 좋은 직장에 다니지만 자신이 노동자라는 인식을 거의 안하고 살아왔다”며 “하지만 파업을 하면서 맞은 노동절에 ‘내가 정말 노동자이구나. 아무리 권위가 나아져도 사용자를 이길 수 없구나, 그래서 더욱 단결할 수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국장은 “특히 우리보다 힘든 근로조건에 있는 노동자를 한 번 더 생각하면서 연대해야 한다는 의지와 결심을 다지게 된다”며 “모든 시청자를 대변한다지만, 누구보다 공영방송이 비워야 할 곳은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인데도 그동안 이런 역할을 못했던 KBS인으로서 자괴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남철우 KBS 새노조 홍보국장도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자로서의 현 상황에서 파업을 하는 노동자의식을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나준영 MBC 기자는 “앞으로는 약자의 목소리 실어줄 수 있는 장을 열어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MBC 노조와 KBS 새노조는 1일 총파업 자체 일정없이 민주노총 행사에 자율적으로 참가하도록 해 파업참가 조합원들은 모처럼 노동절 휴무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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