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불법 사찰이 가능했던 것은 이명박 정권의 부도덕성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지만 일상적인 시민들의 감시가 가능한 법 제도의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수원살해 사건을 계기로 위치정보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자칫 민간인 사찰을 합법화 시킬 수 있는 위험이 크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는 2일 여야가 본회의에서 ‘개인의 동의 없이 경찰에 자동위치추적권을 부여’하는 위치정보보호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생활 침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동안 경찰의 오남용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위치정보보호법 처리를 반대해왔던 민주통합당이 본회의에서 국회선진화법과 함께 ‘패키지’ 형태로 위치정보보호법을 처리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면서 논란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김진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측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법사위 소위에서 오남용 방지 부분에 대한 자구 수정 문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국회선진화법과 함께 처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며 “시민사회단체들이 원안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지만 지난주 시민사회와 조율을 끝내고 자구를 약간 수정하는 방식으로 통과시키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근 위치정보보호법 개정이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은 수원 살해사건과 같이 긴박한 상황에서 경찰에게 자동위치추적권을 부여하면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데 배경이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수사 당국의 행태를 보면 법 개정의 의도를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시민사회단체들의 주장이다.

우선, 경찰은 위치정보보호법상 소방서나 해양경찰은 신고자의 자동위치추적이 가능하지만 경찰은 불가능해 긴박한 상황에 대처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반면 위치정보보호법 개정에 반대하는 측은 경찰이 이미 위치정보를 오남용하고 있어 위치정보보호법을 개정하면 민간인 사찰과 같은 불법에 이용될 수 있는 활용도를 높여주는 결과만 가져다 줄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시민단체 진보네트워크는 “현재도 당사자가 동의하면 충분히 위치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고, 정보 수사기관은 간단한 요건만으로 법원의 허가를 받아 매 10분 또는 30분 간격으로 장기간 대상자의 위치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위치추적정보는 통신비밀보호법상 통신사실 확인자료로 제공되고 있는데,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상반기에만 휴대전화 실시간 위치추적 건수는 일평균 53건에 달했다. 여당 의원조차도 “피해자 긴급 보호도 수사의 첫 단계이므로 검찰을 거쳐 법원에 영장을 신청해야 한다”(새누리당 이한성, 박민식)며 위치정보보호법 개정에 반대 의견을 낸 것도 위치추적 정보를 활용한 경찰 수사의 위헌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3일 미국 연방대법원도 GPS 장치를 이용하여 차량 이동을 실시간으로 감시해 피의자를 검거한 사건을 두고 GPS 실시간 위치추적을 ‘수색(search)’이라고 판단하고 해당 시점과 지역에 대한 수색을 허용하는 일반영장(probable-cause warrant)이 없는 이상 이 같은 위치추적 수사는 위법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 4월 <이슈와논점> 제440호 ‘112신고시스템의 현황과 개선과제’라는 리포트를 통해 “경찰도 긴급구조를 위해 위치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경찰의 위치정보 오ㆍ남용으로 인한 프라이버시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도 아울러 논의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경찰은 소방본부와 ‘112·119 핫라인 3자 통화’ 업무공조 협약을 통해 119 정보를 이용한 실시간 신고자 위치추적이 가능하도록 했는데, 법 개정을 하지 않고도 수원살해 사건과 같은 위급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이같이 손쉽게 마련할 수 있는데도 법 개정 타령만 하고 있다는 비난도 나온다. 

경찰의 무분별한 기지국 수사도 위치정보보호법 개정 의도를 쉽게 봐줄 수 없는 근거다. 기지국 수사는 특정 시간대 특정 기지국에서 발신된 모든 전화번호를 압수수색하거나 통신사실 확인자료로 제공받는 수사 방식이다. 1회에 보통 1만 2천건의 전화번호가 제공되고, 지난 2010년에는 전체 3870만 6986건의 전화번호가 제공됐다. 통신비밀보호법에는 통지 의무가 규정돼 있지만 경찰이 이행하지 않아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인지할 수 없다는 문제가 컸다. 특히 신상정보가 담긴 통신자료는 법원의 허가가 필요 없기 때문에 사법경찰관이라면 누구라도 요청해 가져갈 수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민간인 사찰 대상의 이름과 주민번호도 이같은 방식으로 제공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27일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감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감청 전체 건수 7천167건 중 국가정보원이 6천840건(95.4%)의 감청을 했다는 대목은 국가보안법을 내세워 본인도 모르는 감청이 일상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사 당국이 이처럼 수사라는 이름으로 위치추적을 하고, 개인 정보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개인정보 유출 문제에 대해서는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이동통신사 협력업체 직원들이 통신사 가입자들의 휴대전화 위치정보와 가입자 인적사항 등을 무제한 조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약 20만명의 개인 정보를 조회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의견서를 통해 “유괴, 납치 등 긴급 상황에서 수사상 필요에 따라 경찰이 위치정보를 제공받을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경찰의 자의적인 권한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경찰은 성남 여성살인사건을 이유로 위치정보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번 사건의 경우 경찰의 GPS 위치정보 취득 실패에 따른 문제가 발생한 바 없고, 소방방재청과의 협약에 따라 현재도 실시간으로 GPS 위치정보를 소방방재청으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다. 이에 사회적 논란을 계기로 일단 법 개정 후 경찰이 계속적인 권한 확대를 시도할 것이라는 의구심이 든다”고 밝혔다.

장 활동가는 “실제로 경찰은 2007년부터 줄곧 GPS 위치정보 제공 허용을 요구해왔고 긴급구조요청을 할 수 있는 주체를 현행 개인 위치 정보 주체 및 배우자 또는 직계 존비속에서 개인 위치정보 주체의 급박한 위험을 인지한 자로 확대해 위치정보를 요청할 수 있는 기관을 경찰까지 확대하는 개정안을 17대 국회에서 발의해 논란이 돼 왔다”면서 “배우자 2촌 이내의 친족 또는 후견인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아닌 제3자의 요청에 따른 위치추적은 가정폭력 등 예측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만큼 원칙적으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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