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방송 회복을 위한 KBS의 파업이 50일을 훌쩍 넘기면서 정세진 KBS 아나운서가 KBS 새노조의 ‘리셋 KBS 뉴스9’ 앵커 수락과 함께 최근 KBS 앞 촛불문화제를 진행하는 등 파업의 전면에 나섰다.

KBS의 대표적 개념 아나운서로 불려온 정세진 KBS 아나운서는 징계나 다른 불이익의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근 기자들과의 인터뷰 뿐 아니라 촛불집회 사회를 보면서도 거침없이 쓴소리와 입바른소리를 쏟아냈다. 28일 공개된 KBS 새노조 팟캐스트 ‘파업채널 리셋 KBS’를 들어보니 그는 중간중간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파업 50일째였던 지난 24일 KBS 본관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정세진 아나운서는 사회를 보면서 노래공연을 지켜본 뒤 “50일차를 맞았다. 너무 빨리 지나갔나요. 국민일보 100일 넘었고, MBC는 우리보다 한 달 더 했다”며 “그분들에게 먼저 위로를 드려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다시 다시 눈물이 나네요…나이가 드니 눈물이 많아진 것인지 그동안 마음이 그랬던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막내 라디오 PD를 소개하면서 “저만 하더라도 입사해서 13~15년 될때까지 9시뉴스 5년 하고 클래식 오디세이 5년, 클래식 방송도 6년 했다. (그래서) 후배들한테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어린 입장에서 어린 후배가 그 보다 더 어린 후배에게 미안해서 파업하는 거다라는 걸 말할 때 더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다짐했다.

정세진 아나운서는 “지금까지 온 이유도 어떤 지위에 대한 욕심보다는 일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었기에 그 마음 아픈 것들을 누르고 그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이 자리에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촛불문화제 토크콘서트 편에 초청된 소설가 공지영씨는 정세진 아나운서와 대화에서 “어렸을 때도 언론자유 없었는데, 이렇게 언론자유 중요한지는 태어나서 처음”이라며 “그런 것 그렇다고, 아닌 것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방송이 너무 그립다”라고 안타까워했다.

‘KBS는 어떠냐’는 정 아나운서의 질문에 공지영씨는 “안봐요. 이명박 정부 들어서 (KBS)보면 피부가 상할 것 같아서 그렇다”며 “주위에서 피부미용의 비결을 물으면, 조중동, 매경, KBS, MBC 뉴스 안보는 것이라 한다”고 답했다.

공씨는 “과거 100분토론과 KBS스페셜을 보면서 자부심을 많이 느꼈었다”며 “한 번 민주화 되면, 공정방송을 만들어놓으면 후퇴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안이했다. 좋은 공정방송 되면 다시는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공씨는 방송사들에 대해 “파업 하는 것 보고, 어떻게 저렇게 독똑한 사람들이 저런 짓을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정세진 아나운서는 “여기 있는 사람은 아니죠”라고 되물었고, 공씨는 “아니다”라고 했다. (정 아나운서는 이틀 뒤인 26일 기자들과 공동인터뷰에서 자신도 현 정부의 KBS 9시뉴스를 5분 밖에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당시 그는 “과거보다 사회 기득권에 대한 고발과 감시가 빠져있기 때문에 앞에 5분 정도 밖에 안보게 된다”고 말했다.)

공지영씨는 “작가가 이런 데 나와있고, (방송사) 안에 있어야할 사람들이 여기에 있고, 공장에 있는 사람 나와 있고, 시민운동가를 하고 싶어했던 박원순씨가 서울시장을 하고 있다”며 “(이 정권에서) 제자리에 있는 분, 제자리에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런데 바르게 말하지도 못하고 사는 것이 너무 의미가 없다”고 성토했다. 그는 시인 하이네의 말을 빌어 “책을 불태우는 정권은 사람을 불태운다”라고 전하며 현 정권에 섬짓함을 겪었다고 강조했다.

공씨는 쌍용차 조합원 자살사태를 두고 언론의 책임론을 질타했다.

“22명의 자살자가 한 명도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 완벽한 절망이다. 22번째 자살했던 분 맹렬 조합원이었다. 그만큼 충격 더 컸다. (그런데 이마저) 보도되지도 않고. 이러면 많은 사람 더 죽이고, 온 사회에서 썩는 내가 진동한다. 여러분이 끝까지 이겨야 한다. 그래야 좋은 세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말을 들은 정세진 아나운서는 “울컥울컥하는 자리인 것 같다. 정말 표현의자유 더 이상 논하지 않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라며 “쌍용차 조합원을 더 신경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직접 음반을 내며 가수활동도 하고 있다는 이상협 KBS 아나운서는 이날 촛불문화제에서 자신의 연주를 하기에 앞서 “애고트립이라는 그룹에서 활동 중이며 아나운서이지만 투쟁만큼은 안중근”이라고 소개한 뒤 자신이 연주할 곡이 ‘새’라며 이렇게 말했다.

“X새, XX새라는 말, 원래 이런 말 잘 안하는데, 자꾸 이런 말이 하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파업 아무것도 아니다. 앞만보고 달려나가겠다.”

지난해 입사(공채 38기)한 막내 정혜진 KBS 라디오 PD도 이날 자신이 낭독한 편지에서 “(파업의) 여정을 시작한 동기는 분명 부끄러움이었다”며 “입사했을 때만 해도 내 프로그램 많은 사람들이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발령을 받고 난 뒤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고 전했다.

그는 “친구들이 ‘채널이 어디야’라고 물으면 ‘재미없어, 듣지마’라고 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다”며 “산적한 시사문제를 다뤄야 할 시사프로그램에서 모든 것을 외면하고 나는 그저 ‘한겨울인데 왜 이렇게 날씨가 더운지 기상청 전문가를 섭외하고, 왜 멧돼지가 도시에 출몰하는지 대답해줄 야생동물 전문가를 섭외하고 있었다”고 개탄했다.

그는 “옳다고 느낀 가치 실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저와 제 동기들과 선배들 모두가 이 자리에 나와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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