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어느 조직에 있어서 ‘내가 힘이 되느냐, 짐이 되느냐’ 하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내가 힘이 되지 않고 짐이 된다고 여겨졌을 때 진퇴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을 (방통위)식구들에게 여러 번 했다. 이번 퇴진 또한 우리 조직에 ‘내가 힘이 되는 시기가 지나고 짐이 되는 시점이 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저는 떠나야 된다고 생각했다.”

지난 2월22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이임식에서 사퇴 배경을 이렇게 말했다. 야권의 쏟아지는 퇴진 요구에도 아랑곳 하지 않던 최 전 위원장은 전격적으로 사퇴 선언을 했다. 이후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다는 소식만 보도됐을 뿐, 총선 과정에서 현 정권 ‘실세’를 둘러싼 비리 의혹 보도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최 전 위원장의 정치적 ‘노림수’가 먹힌 결과였다.

이번에도 최시중 전 위원장이 예기치 않은 ‘폭탄 발언’을 했다. 최 전 위원장은 23일 기자들과 만나 “받은 돈은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대선 캠프에서 여론조사에 필요한 비용으로 썼다”며 “인허가 청탁 대상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이 나오자 대검 관계자는 “최 전 위원장이 사실상 개인적으로 여론조사 비용으로 썼다고 하는데 우리 수사는 우리 식대로 간다고 보면 된다”고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곧이어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법에 따라 모든 걸 처리해야 한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보수언론들도 1면에 대서특필하며 ‘정권 실세’에 대한 준엄한 질타를 하고 나섰다.

관전 포인트는 최시중, 검찰, 박근혜, 조중동의 ‘속내’다. 대선을 8개월 앞두고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이 같은 보도가 정권 말기 흔히 터져 나오는 비리 의혹이지만, 그 속내에는 나름의 여권 ‘대선 전략’이 숨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시중은 왜?

전국단위 일간지 9곳 모두 최시중 전 위원장 관련 기사를 1면에 실었다. (경향 1면 기사<최시중 “돈 받아 대선자금으로 썼다”>, 국민 1면 기사<최시중 “돈 받아 MB 대선에 썼다”>, 동아1면 기사<검 칼끝, MB 대선자금으로 향하나>, 서울1면 기사<‘멘토’의 자백…대선자금 수사 불가피>, 세계 1면 기사<금품수수 시인 최시중씨 내일 소환>, 조선일보 1면 기사<멘토와 심복까지 검찰 문앞에 서다>, 중앙 1면 기사<“5억~6억 받아 MB 여론조사에 썼다”>, 한겨레 1면 기사<최시중 “돈 받아 MB 대선캠프서 썼다”>, 한국 1면 기사<돈 받은 MB멘토…대선자금 뚜껑 열리나>)

최시중 전 위원장의 ‘노림수’는 △증거가 드러난 ‘고육지책’ △혼자 죽지 않겠다는 ‘물 귀신’ 작전 △청와대에 구원 요청 △청와대에 항의 시위 △처벌 수위를 낮추려는 꼼수 등이 지적되고 있다.

경향은 2면 기사<최시중의 충격 고백…‘MB 대선자금’ 수사로 확대 가능성>에서 “최 전 위원장이 돈을 받았다고 순순히 시인한 것은 검찰 수사에서 실체가 드러나면서 더 이상 발을 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며 “그가 대선자금을 언급한 배경에는 정치적 노림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을 향해 혼자 죽지는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게 아니냐는 것”이라고 밝혔다.

경향은 3면 기사<‘MB 멘토’ 최시중,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에도 돈 받았나>에서 “일단 대가성을 부인하면서 알선수재 혐의를 벗겠다는 취지”라며 “대신 정치자금으로 청와대에 일정 부분 구원 사인을 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는 3면 기사<최, 하루만에 “안받았다→받았다” 왜?>에서 “형량을 낮추기 위한 꼼수라는 분석”이라며 “검찰이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 금품수수를 부인하기 어려워지자 뇌물죄보단 형량이 낮은 정치자금법을 적용받기 위해 사용처를 밝혔다는 얘기”라고 분석했다. 또 혼자 죽지 않겠다는 “‘물귀신 작전’이라는 시각도 있다”고 세계는 덧붙였다.

한겨레도 3면 기사<벼랑끝 ‘MB멘토’ MB 끌어들이기?>에서 “정치권에서는 ‘혼자 죽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보고 있다”며 “검찰 안팎에서는 최 전 위원장의 이런 발언을 두고 ‘대가성을 부인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고 밝혔다.

최시중 전 위원장이 애초 금품수수를 부인하다 이를 인정한 배경도 주목된다. 동아는 3면 기사에서 “검찰 안팎에서는 ‘이미 검찰에서 파악한 로비 정황이 뚜렷하다는 사실을 알고 금품수수 사실은 인정하되 대가성을 부인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고 밝혔다. 대선 과정에서 썼다고 밝힌 것은 “청탁 대가가 아닌 친분에 의한 지원임을 밝히면서 대선 자금을 거론해 ‘자신을 위해 쓴 돈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는 분석”이라고 동아는 보도했다.

조선은 1면 팔면봉에서 “대통령 정치 멘토 ‘개발업자 돈 받아 2007년 대선 때 썼다’ 고백? 폭로? 아니면 협박?”이라고 밝혔다. 조선은 3면 기사<최시중 “대선때 돈 쓸데 많았다”…청와대 향한 시위?>에서 “여권에선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더 이상 확대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를 청와대와 검찰에 던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중앙도 정권 압박용에 힘을 실었다. 중앙은 4면 기사<정권 압박용이냐, 의도 없는 돌출발언이냐>에서 “정권 압박 차원이 아니냔 거다”라며 “이런 분석이 맞다면 검찰수사를 놓고 권력심층부에서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최 전 위원장의 ‘전략’이 아니라 어차피 터질 비리였다는 시각도 있다. 서울은 3면 기사<마침내 터진 ‘최화산’…정권말 대형게이트 비화 조짐>에서 “최 전 위원장은 사실상 ‘휴화산’이었다. 터질 시기가 문제였을 뿐”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왜?

검찰이 얼마나 혐의 입증에 자신감이 있는 것일까. 한겨레는 자신감을 부각시켰고, 조선은 ‘확대 수사’를 경계하는 분위기를 전했다.

한겨레는 3면 기사<돈보자기 받는 최시중, 브로커 운전기사가 ‘찰칵’>에서 “검찰이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금품 수수 혐의 입증을 자신하는 배경에는 브로커 이아무개씨의 운전기사인 최아무개씨의 ‘사진’ 한 장이 결정적 구실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혀 ‘물증’을 가진 검찰 움직임을 주요하게 보도했다.

경향도 4면 기사<눈치보던 검찰, 정권말 ‘펄펄’/ 권력형 비리수사로 명예회복?>에서 “위기에 몰린 검찰이 중수부 존속의 필요성을 입증하기 위해 대형 사건 수사에 나섰다는 얘기”라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검찰의 수사 ‘의지’를 부각시켰다. 

그러나 조선은 4면 기사<“이번 사건은 인·허가 로비 수사, 길게 끌지 않을 것”>에서 “(한상대 검찰)총장은 회의석상에서 ‘길게 끌 수사가 아니다’고 교통정리를 했다고 한다”며 “중수부 이금로 수사기획관은 이후 ‘이번 수사는 대선자금 수사가 아니라 인·허가 로비 수사’라고 공식 발표했다”고 밝혔다.

국민도 3면 기사<눈치 보는 ‘정치 검찰’…MB 대선자금에 칼 겨눌까>에서 “검찰은 이번 수사가 대선자금 수사로 확대되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에 국한된 수사임을 거듭 강조했다”고 밝혔다.

중앙도 5면 기사<“대선자금 수사 아니다” 일단 선 그은 중수부>에서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최 전 위원장 소환 일정을 잡은 것도 수사 본질에 대한 확대해석을 방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밝혀, 대선 자금 수사까지 확대되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전했다.

박근혜는 왜?

주목되는 점은 여권에서는 크게 놀라지 않는 분위기라는 점이다. 조선은 3면 기사<최시중 “대선때 돈 쓸데 많았다”…청와대 향한 시위?>에서 새누리당의 한 친박측 관계자는 “지금 나오는 정도는 시중의 루머에 비하면 아주 작은 액수”라며 “다음 정권에서 터질 경우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으니 현 정권이 컨트롤할 수 있는 지금 시점에서 처리하고 넘어가려는 의도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여권에서는 대선 전에 악재를 미리 털고 가자는 분위기인 셈이다. 세계는 3면 기사<최, 하루만에 “안받았다→받았다” 왜?>에서 “조기진화설도 나온다. 어차피 터질 대선 자금 폭탄을 미리 터뜨려 후폭풍을 최소화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주장”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금품의 대가성이 없다는 것을 밝혀 상황을 조기에 정리하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중동은 왜?

지난 23일 전국단위 일간지 중에서 최시중 전 위원장의 소식을 실은 곳은 조선, 동아, 한겨레였다. 조선, 동아, 한겨레 모두 이를 1면에 배치했다. 검찰발 주요 뉴스를 1면에 싣는 것은 당연하지만 보수언론까지 현 정권의 ‘실세’의 문제를 부각하는 것은 주목되는 보도 행태다. 이들 보수언론들은 24일에도 사설까지 게재하며 현 정권을 비판했다.

조선은 사설<대통령의 마지막 남은 멘토까지 검찰 수사 받는 오늘>에서 “이 정권의 두 후견인 중 이상득 의원에 이어 최 전 위원장까지 검찰 수사를 받는 현실을 국민은 어떻게 바라보겠는가”라고 논평했다.

동아는 사설에서 “개탄할 일”이라며 “대통령은 도대체 주변 관리를 어떻게 했는가”라고 밝혔다. 중앙은 사설<‘최시중 검은 돈’ 한 줌 의혹도 남기지 마라>에서 “적당히 여기저기 칼을 대는 선에서 끝내서는 안 된다는 얘기”라고 적극적인 수사를 촉구했다.

조중동의 ‘변심’일까. 노종면 <뉴스타파> 앵커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두고 “신분 세탁 기간”이라고 눈길을 끄는 해석을 했다.

“끝까지 비밀로 할 수 있다면 안 들춰낼 수도 있지만, 유권자가 심판 할 수 있을 정도로 현 정권 비리들이 툭툭 나올 것이다. 7, 8월까지 MB 사람들을 털어내는 수순이 있지 않을까. 권력의 속성을 보면 그렇게 추측이 된다. 대가를 치르는 것이지만 조율돼서 터져 나오는 것들이 최시중이든 이상득이든 그 누구든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강하게 터져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이 조중동, 새누리당과도 이해를 같이 한다. 일정 부분 털어내서 대선에 임박해서 새로운 것이 웬만해선 나오지 않도록 위기 관리를 하는 게 아닌가. 조중동의 경우에도 지금 이런 보도를 해야 본선에 가서 그런 보도를 한 매체가 여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지금은 다 신분 세탁 기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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