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1) 떠도는 산업예비군 언론고시생
(2) 왜 언론사로 몰리는가
(3) 문제많은 입사제도
(4) 차별이 낳은 그림의 떡
(5) 늘어나는 조기퇴직자들
(6) 본질 벗어난 보완책
(7) 외국 언론사들의 입사제도
(8) 토론 : 대안을 찾는다
언론사에 공개채용 형식의 입사제도가 자리잡은지 반세기를 넘어섰다. 그러나 현행 언론사 입사제도는 ‘미래의 언론주역’을 선발하기에는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디어 오늘>은 수험생은 물론 현직 언론인, 언론사 인사담당자, 학자 등 각계의 의견을 통해 현행 입사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진단하고 새로운 입사방식을 모색한다. 그 첫 이야기로 ‘떠도는 산업예비군 언론고시생’을 연재한다. <편집자>


지난해 졸업을 하고서도 언론고시를 계속 준비하고 있는 S대학 졸업생 박모군(26·정외과)은 하루하루가 답답하고 불안한 날들이라고 털어놓는다. 자취를 하고 있는 박군의 일과는 새벽 6시, 졸업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모교의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시작된다. 영어단어를 암기하고 토익시험문제를 풀고나면 10시쯤. 학생식당에서 아침을 대충 해치우고 AFKN 특강을 들으러 학원에 간다.

다시 도서관에 돌아오면 오후 1시쯤. 오후에는 국어, 상식과목을 공부하기 위한 ‘지리한’ 시간이 계속된다. 집에 돌아와 학원강의를 받기위한 준비를 끝내고 나면 12시. 박군은 1시가 다돼서야 싸늘한 방바닥을 의지해 잠을 청한다. “하루에도 몇번씩 내가 뭘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든다”는게 박군의 솔직한 심경이다.

지난 한해동안 면접에서만 4번 떨어졌다는 오모군(26·Y대학 신방과졸)의 하루생활도 박군과 크게 다르지 않다.차이가 있다면 10명안팎으로 짜여진 스터디그룹에 참여하고 있다는 정도다.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는 언론고시생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어디에서도 확인하기 힘들다. 언론사 인사담당자들이나 학자들의 추산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이들의 규모가 2~3만여명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들 가운데 기자나 PD를 고집하는 수험생만 1만여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들이 각사 시험에 몰려다니면서 낮게는 수십대 1에서 높게는 4~5백대 1이라는 기하학적인 경쟁률을 만들어 낸다. 이 경쟁률이 보여주는 숫자의 그늘에는 수 많은 젊은이들의 고달픈 삶이 자리잡고 있다. 언론 고시생들이 많다보니 아예 ‘언론고시실’을 운영하는 학교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Y대학 사회과학대 건물 지하1층에서도 언론고시라는 좁은문을 뚫기위해 숨을 죽이고 한자와 영어단어에 매달려 있는 젊은이들이 있다. S대학의 도서관 역시 사법고시니 외무고시니 하는 진짜 고시생들이 3분의2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자리는 언론고시생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학교의 언론고시생 숫자만 1천여명에 이를 것이라는게 도서관 관계자의 얘기다.

K대학에서 만난 언론고시 삼수생 정모군(27·신방과졸)은 “언론사 지망생들이 급증하면서 언론사가 ‘관상쟁이’를 불러와 원서에 붙어있는 사진으로 관상을 본다고 하는데 사실이냐”고 물어왔다. 어떻게든 기자가 되고 싶은데 정군은 스스로 ‘관상’에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신빙성 여부를 떠나 이 얘기는 언론고시생들이 현행 입사제도의 공정성, 객관성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이들이 그만큼 마음을 졸이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지난 한해 동안 언론사에서 기자나 PD로 채용한 숫자는 고작 2백명선으로 추산된다. 1만여명의 언론고시생 가운데 약 2% 정도만이 언론계에 입문할뿐 나머지는 나이제한이라는 덫에 걸려 부랴부랴 다른직업을 찾아 떠난다. 이들의 98%가 적어도 2~3년동안 산업예비군으로 젊은 시절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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