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시사만화는 대구참사로 지면을 메우다시피 했다. 5월3일자 경향의 만평은, 사고가 터질 때마다 애꿎게 말단들만 ‘다치는’ 현실을 통박하고 있다. 진짜 책임을 져야할 ‘윗분’들은 손가락하나 다치지 않는 세태, 무릎을 꿇고있는 잔챙이(업자)들만 온갖 구정물을 다 뒤집어 쓰는 현실을 잘 나타낸 수작이었다.

또 2일자 중앙일보의 ‘왈순아지매’는 사고의 책임은 지지않으면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얼굴 알리러’ 행차하는 나으리들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정화백은 이들을 위해 ‘로열박스’를 만들어주자는 패러독스를 그림으로 나타내 신문만화의 묘미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러나 4일자 서울신문의 만평은 사건의 진의를 잘 파악하지 못한 내용으로 독자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사건당일 가스 냄새를 사전신고한 환경미화원 김만수씨의 진술번복사건을 두고, 김씨가 전부 잘못했다는 식의 ‘풍자 잣대의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신고가 접수됐던 해당 파출소의 근무일지 재작성 흔적, 진술번복 전에 7시간동안 수사관들에게 ‘사전조사’ 받은 것 등이 밝혀져 이 사건은 어느모로 보나 당국의 ‘은폐의혹’이 크게 작용됐다는 것이 중론이기 때문이다. 신문 만평을 그리는 작가의 눈은 늘 ‘공정한 잣대’가 돼야 한다. 그것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 때, 풍자의 맛은 완전히 왜곡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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