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하얼빈 맥주…러시아 상인이 1900년 처음 맥주 공장 세워

날이 풀리면서 퇴근뒤 시원한 맥주 한잔이 생각나는 때가 됐다. 우리는 중국 맥주하면 칭다오(靑島) 맥주를 떠올린다. 그래서 칭다오 맥주가 중국 맥주의 원조라 생각한다. 그러나 최초의 중국 맥주는 놀랍게도 하얼빈 맥주(哈爾賓啤酒)다.

하얼빈 맥주는 1900년에 태어났다. 1903년에 만들어진 칭다오 맥주 보다 3살 위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숨어있다. 당시 하얼빈은 러시아의 관할아래 있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문화도 힘이 센 데서 약한 곳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청(淸)나라 말 중국은 이빨빠진 호랑이였다. 중국은 강한 군사력을 앞세운 제국주의에 무력하게 짓밟혔다. 1900년 당시 러시아는 하얼빈을 사실상 지배했다. 국경을 넘어 러시아인들이 밀어닥쳤고 이와함께 유럽식 맥주문화가 따라 들어왔다.

맨 먼저 맥주공장을 설립한 사람은 러시아 상인 우루프레프스키였다. 그는 1908년에 글로리아 맥주공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주인도 와트푸로 바뀌었다. 1932년에는 ‘하얼빈맥주공장’으로 개명됐다. 소유주는 체코인 자프레크와 중국인 리주천(李竹臣)이 공동운영했다. 그뒤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대일본맥주주식회사’에 흡수됐다. 일본패망뒤인 1949년 러시아 홍군(紅軍)이 장악해 ‘붉은별’이란 브랜드를 내놓은뒤 1950년에 중국 정부가 인수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얼빈은 맥주의 탄생지…웃통을 벗어던진 채 잔대신 병나발 불어

하얼빈은 20세기 초만하더라도 유럽풍의 도시였다. 하얼빈은 1913년 인구 6만8549명중에 러시아인이 3만4313명을 차지했다. 당시 인구의 절반이다. 중국인은 2만3537명이었고 일본인은 696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인구구성도 유대인 5032명, 폴란드인 2556명, 독일인 564명 등 서양인구가 절대다수였다. 이러한 인구구성비는 20세기초 맥주문화가 싹틀 밑거름이 됐다.

하얼빈이 맥주로 유명한 또다른 이유가 있다. 하얼빈 사람들은 성격상 술을 즐긴다. 겨울에는 날씨가 영하 20-30도로 춥다. 술로 몸을 덥히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정도다. 겨울은 독주를 마시지만 여름은 맥주를 찾는다. 여성들도 대부분 곧잘 마신다. 하얼빈은 1인당 맥주소비량이 중국내 1위다. 댓병 하나가 3위안(540원)으로 저렴하다. 생수 한병값과 동일하다. 이 가격은 필자가 베이징 특파원으로 있을 때인 10년전과 같다.

하얼빈에서 맥주는 술보다 음료의 성격이 강하다. 2명의 젊은 청년이 삼복더위에 24병이 든 한 상자를 거뜬히 마신다. 술을 마실 때 북방인 특유의 호방함과 열정이 느껴진다. 잔보다는 병나발을 부는데 아예 웃통을 벗어던지고 마시는 풍경은 낯설지가 않다.

맥주 안주는 양꼬치가 필수…국내에도 하얼빈 맥주 보급 늘어

중국에서 맥주안주는 양꼬치가 필수다. 중국어로 “양뤄촨”(羊肉串)으로 부른다. 특히 ‘관’(串)자가 재미있다. 가운데 쇠꼬챙이에 두개의 고기덩이가 꿰어진 형상이다.

양꼬치는 한국의 땅콩에 해당한다. 아주 대중적인 음식이다. 양고기의 노린내를 없애기 위해 ‘쯔란’(孜然)이란 향료가 뿌려진다. 양꼬치를 먹을 때는 생마늘을 곁들여야 한다. 양고기의 맛을 더하고 강장제역할을 한다. 가게에서는 통마늘을 아예 탁자위에 비치해두고 있다. 처음엔 맵싹하지만 익숙해지면 먼저 찾는다. 생마늘 한쪽을 아싹 베물면 양고기의 맛이 살아난다. 양뤄촨은 맥주매니아들에게 추억의 음식이다.

하얼빈에서 맥주를 주문할 때 주인은 ‘냉장’(冷藏)과 ‘상온’(常溫)중 어떤 것을 마실 것인지 물어본다. 한국인들은 시원한 맥주를 좋아한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일반적으로 미지근한 상온을 즐겨 마신다. 평소 기름기를 많이 먹기 때문에 찬 맥주는 배탈이 나기 때문이다.

하얼빈맥주를 줄여 ‘하피’(哈啤)라고 한다. 중국은 맥주를 ‘피주’(啤酒)라고 부른다. 영어로 맥주란 뜻의 ‘비어’(beer)에서 앞자를 차음했다. 그래서 ‘하피’는 하얼빈맥주의 약칭인 셈이다. 하피(hapi)의 어감은 행복하다는 ‘해피’(happy)와도 유사하다. 하피가 널리 불리는 또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하피는 보통 녹색병에 담겨 팔린다. 녹색은 더 시원하고 깔끔한 느낌을 준다. 겨울이면 날마다 눈이 내리는 북국의 낭만이 느껴진다. 맛도 눈처럼 순수하다. 하피중 더 부드럽고 비싼 춘성(純生)은 투명한 유리병에 담겨있다. 고전적인 디자인의 1900징뎬(經典)은 고급주점에서 팔린다. 하얼빈맥주가 탄생한 해인 ‘1900’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병맥주와 함께 캔맥주로도 포장돼 팔린다.

 

하얼빈맥주의 광고 카피는 ‘빙둥(氷動), 신둥(心動)’이다. ‘차가우니 마음까지 시원하다’는 의미다.

한국에도 하피가 점점 늘고 있다. 조선족들이 운영하는 음식출처=중국포털 바이두점이 주보급망이다. 주로 빨간상표가 붙어서 팔리는데 필자는 귀국뒤 처음 보았다. 독일인이 만든 칭다오맥주는 쓴 맛이 강하다. 반면 하피는 부드러운 편이다. 하피 성분에는 쌀이 들어간다. 동북특산인 쌀이 개운한 맛을 낸다. 때로는 약간 고소한 맛이 난다. 부드럽게 취하는 맛 때문에 하피팬들이 늘고 있다. 국내에 칭다오(靑島)팬들도 많다. 각자의 취향을 존중할 필요가 있겠다.

1900년 300t 첫 생산에서 시작…현재 연간 170만톤으로 5600만배 증가

하얼빈 맥주본사는 하얼빈 샹팡취 여우팡제(香坊區 油坊街) 20호에 있다. 1900년 첫해300t 생산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5600만배인 연간 170만t을 생산한다.

중국내 맥주의 제품별 연간 판매순위는 1위 쉐화(雪花) 72억리터 2위 칭다오(靑島) 29억리터 3위 옌징(燕京) 21억리터 4위 하얼빈(哈爾賓) 15억리터순이다.

중국의 맥주 시장은 지역분할구도다. 하얼빈 맥주는 아직 동북지역에 치우친 편이다. 전국시장의 5%를 차지하지만 하얼빈 시장의 66%를 독점한다.

중국은 맥주의 잠재적 시장이 크다. 중국인들은 아직까지 독한 술을 즐긴다. 그러나 갈수록 젊은이와 여성층은 부드러운 술을 선호한다. 중국은 맥주시장이 해마다 두자리 수 이상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하얼빈 맥주는 이를 겨냥해 생산공장을 늘렸다. 현재 창사(長沙), 지린(吉林), 다칭(大慶), 진저우(錦州), 탕산(唐山), 포산(佛山) 등 30군데에 공장이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공식 후원사…미국의 버드와이즈와 손잡고 세계무대 누벼

하얼빈맥주는 2002년 홍콩 주식시장에 상장하면서 변신을 시작했다. 2004년에는 미국의 버드와이저 생산업체와 합작을 계기로 국제화를 선언했다. 하얼빈맥주는 세계 최대의 맥주회사 안호이저 부시(AB)와 99.66%의 주식소유지분을 가지고 있다. 안호이저 부시는 2004년 55억 8000만 달러에 하얼빈맥주를 인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안호이저 부시는 급성장하는 중국시장을 겨냥했고 하얼빈 맥주는 세계적인 기업을 노렸다.
 

하얼빈맥주에게 2010년은 획기적인 한 해였다. 남아공월드컵 공식후원을 하면서 세계를 겨냥한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하얼빈맥주는 월드컵 홍보비로 수천만 미국달러를 퍼부었다. 이는 종전 홍보비의 두배 규모다. 월드컵홍보로 인지도는 3배이상 증가했다. 실제 2011년 상반기 매출이 20.7% 증가했다. 그중 동북지역이 가장 뚜렷했다. 이외에 광둥(廣東), 후난(湖南), 저장(浙江), 쓰촨(四川) 등도 20% 증가했다.
 

중국은 세계최대 맥주 공장이다. 매년 4천만톤을 생산해 연간 2천4백만톤의 미국을 따돌렸다. 3위 독일은 연간 1천2백만톤 생산에 그치고 있다. 특히 버드와이저의 중국 공세가 매섭다. 버드와이즈는 58.86억위안(약 1조595억원)으로 2007년 푸젠(福建)성의 쉐진(雪津) 주식을 100% 사들여 파문을 일으켰다. 버드와이즈는 이외에 솽루(雙鹿), 진룽촨(金龍泉) 등 다른 중국지역 맥주업체를 사들였다.

버드와이즈는 중국 10개성에 35개 맥주공장이 분포해있다. 버드와이저는 칭다오맥주의 주식도 일부 가지고 있다.

버드와이즈는 생산과 함께 거대한 중국시장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통큰 월드컵홍보도 이런 이유였다. 중국매체에선 이를 “담장 밖에 꽃을 피워 집안까지 향기롭게 한다”(墻外開花墻里香)는 전략을 쓴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 하얼빈맥주는 월드컵기간 중국내에서 인터넷을 활용해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중국의 인터넷인구는 4억여명이다. 하얼빈맥주는 영상전문 인터넷 사이트인 투더우왕(土豆網)을 통해 월드컵 준결승전부터 생중계를 했다. 하얼빈맥주는 월드컵 기간중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 영상으로도 눈길을 모았다. 하얼빈시내 광장바닥에 맥주를 물감처럼 뿌려 하얼빈의 상징물인 소피아 성당을 그리는 창조적인 영상물이다. 뿌린 맥주는 영하 34도의 혹한에서 하얀 얼음으로 변하며 성스러운 성당의 모습으로 승화한다.
영상보러가기→ http://v.youku.com/v_show/id_XMTQwODc2OTE2.html
 하얼빈맥주는 미국프로농구(NBA)에도 홍보를 하고 있다. 

겨울엔 빙등제, 여름엔 맥주축제 ‘피주제’…올해 6월28일 개막, ’맥주왕’에 승용차 한대

북국의 도시 하얼빈은 여름철 피서도시(避暑)다. 매년 여름 하얼빈 국제맥주제(啤酒節)인 ’하얼빈 피주제’(哈爾賓啤酒節)가 열린다. 하얼빈 맥주축제는 1988년 처음 중앙대가(中央大街)에서 소규모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2년부터 태양도(太陽島)로 옮기면서 규모가 커졌다.

하얼빈 맥주축제는 올해 11회를 맞이한다. 여름철 대축제로 겨울철 빙등제(氷燈節)와 함께 하얼빈을 대표한다. 이 행사에는 중국 맥주외에 미국 버드와이저, 네덜란드의 하이네켄, 덴마크의 칼스버그 등 서방맥주도 참가한다. 보통 100개 브랜드에 200여종의 맥주가 선보인다.
 


2012년 맥주축제는 6월 28일 개막예정이다. 중앙대가와 태양도의 30만㎡ 부지에서 열리는데 역대최대다. 태양도 행사장은 빙등제가 열리는 곳인데 지난해의 2배 규모다. 4월 현재 행사장 땅고르기 등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축제기간중 서울의 명동격인 중앙대가에는 밤늦게까지 대형 야외맥주집이 문을 연다. 축제기간중 밤마다 유럽식 맥주파티가 열린다. 이때는 유명 가수들의 노래와 춤이 따른다. 각종 게임도 열린다. 결혼식도 벌어진다. 음식축제도 열린다. 자동차, 부동산 전시회와 야외영화관도 설치된다.
올해 태양도 행사는 대자연이 주제다. 물, 배, 육지, 얼음, 숲속 등 어디서나 맥주를 즐길 수 있다는 컨셉트다. 특히 처음으로 얼음 공간속에서 맥주를 마시는 행사가 특별히 마련됐다. 얼음으로 가득찬 서늘한 공간 속에서 쇼를 보면서 맥주를 마신다는 프로그램이다.


축제기간중에는 ‘맥주왕’을 뽑는다. 맥주를 가장 빨리 많이 마시는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우승자에게는 승용차 한대가 지급된다.

2011년에는 맥주축제에 62만명이 참가했다. 2010년에 비해 22% 증가했다. 40%가 비하얼빈출신 사람들이다. 미국, 독일, 러시아, 한국, 일본과 대만에서도 여행을 왔다. 이때 열흘 정도 진행된 행사에서 960t의 맥주가 소비됐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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