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내 언론팀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소위 문민정부의 대언론관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격의 차원을 떠나 극히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 우선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초기부터 자신이야말로 안기부 공작정치의 최대 피해자임을 내세워 공식적으로는 정치언론 담당부서(제4국)를 폐지했음에도 불구, 은밀히 언론담당 부서를 계속 유지해 온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이는 현정부 역시 언론을 ‘철저하게 감시, 감독’ 해야 한다는 군사정권의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음을 말해준다. 안기부가 대통령 직속기구라는 점에서 안기부 언론팀의 보고가 청와대로 올라가고 그에따라 대언론 ‘조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실제로 청와대가 사안이 있을 때마다 미리 언론사에 전화 등을 통해 기사 삭제, 축소 등을 ‘요구’해 온 사실에 미뤄 안기부 언론팀의 존재는 대언론통제의 범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안기부는 언론팀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요원들이 대공활동의 일환으로 언론관련 정보수집 활동을 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언론을 간첩잡는 대공활동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말은 그야말로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대구 가스폭발 사건관련 방송보도에 이들 언론팀이 개입, ‘현장의 끔찍한 장면은 줄이고 수습에 초점을 맞춰달라’고 요구한 사실이 어떻게 대공활동과 연결될 수 있는 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와관련, 박원순 변호사는 “안기부가 언론담당팀을 일상적으로 운용하며 정보수집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선 불법·부당한 ‘정보활용’을 전제로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런 일”이라며 “언론사는 명백히 안기부의 공작 대상 기관이 아닌만큼 언론사내에 국가안보를 위해할 소지가 있는 인물이 있다거나 이와 유사한 보도사안이 있을 경우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업무협조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 오늘>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안기부 요원들은 언론사 간부들에게 전화를 걸어 주로 언론사 밖에서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선기자들도 자주 만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이 접촉한 언론인들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존재라면 지금까지 안기부는 직무유기를 해왔다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다.

안기부의 변명을 변명으로 흘려버리더라도 안기부 언론팀의 존재는 지속적인 언론 통제를 가능케 하는 대목으로 앞으로 더욱 많은 문제를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 대구참사 축소보도 요청이 지자제선거에 미칠 영향력을 고려한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지자제선거때까지 안기부 언론팀이 어떤 형태로든 언론보도에 간섭할 가능성도 매우 높은 상황이다. 언론계에서는 지자제선거를 앞두고 청와대를 중심으로 정부 유관기구의 대언론 활동이 보다 강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언론사 사주와 간부들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보도 ‘협조요청’을 해 온 사례가 빈발해지는 것은 물론 대구참사 낮방송 축소허가에서 보듯 공보처의 통제, 여기에다 안기부 언론팀의 움직임이 가세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에는 90년 윤석양씨 양심선언 이후 대외사찰을 중지했던 기무사까지 대언론 정보수집 활동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져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그 어느때 보다 언론자유가 구가되고 있다”는 김영삼정부의 호언이 이번 안기부 언론팀 존재 확인과 더불어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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