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여건 MB정부 총리실 작성문서와 일반공문 / 2200여건, 盧 정부 경찰서 만든 비위감찰 등 자료"

위 제목은 민간인 사찰 문건을 놓고 지난 2일 동아일보가 직접 입수, 분석해 내놓은 제목들이다. 얼핏 객관적인 제목 같지만 ‘400-2200, 총리실-경찰, 일반문서-비위감찰’이라는 말을 대조시키려는 흔적이 역력하다.

지난달 KBS 새노조가 2616건의 민간인 사찰 문건을 발표하고 난 뒤 청와대가 80%는 노무현 정부 당시 작성한 문건이라는 반박이 나오면서부터 보수신문들이 일제히 '숫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청와대 반박이 나오면서 합법적인 감찰과 사찰의 차이점은 오간데 없이 오로지 노무현 정부 당시 80%가 작성됐다는 청와대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보도 일색이다.

다른 신문들을 보면 숫자에만 매달리는 보수 신문들의 일관성(?)은 더욱 도드라진다.

KBS, YTN 방송사 장악을 위한 동향 문건 분석부터 시작해 문건에 나온 노무현 정부 당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의 줄사퇴 문제, '영포라인'을 특별관리한 흔적들, 보수단체들의 비영리민간단체 무더기 등록 사태 배경 등 문건을 바탕으로 한 후속취재를 통해 불법 사찰의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보수 신문은 ‘80% 노무현 정권 작성’이라는 주장성 보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어떤 사안이 터졌을 때 양비론으로 끌고 가면서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이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난 경우도 드물다.

그렇다고 노무현 정부 당시 작성된 문건의 불법 여부를 추적해 폭로한 보도도 찾아볼 수 없다. 청와대는 노무현 정부 당시 민간사찰 의혹 문건 내용으로 2007년 1월 보고된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2교대 근무전환 동향 파악, 전국공무원노조 공무원연금법 개악투쟁 동향, 화물연대 전국순회 선전전 동향 등을 소개했지만 보수 신문들은 문건 제목만 거론했을 뿐이다. 청와대가 제시한 문건 내용 대부분 합법 감찰로 드러났지만 보수신문들은 이마저도 지적하지 않았다.

지난 2일 조선일보는 <"청와대, 구라 격조있게 까라"던 KBS 새노조, 5시간 후 오류 사과>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문건 작성 시기를 확인하지 못하고 민간인 사찰 문건 2619건을 발표한 KBS 새노조의 말바꾸기를 비난했지만 정작 사찰 문건 내용의 불법성 여부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해당 보도가 민간인 사찰 문제를 떠나 KBS 새노조를 비난하기 위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선일보는 이어 <검찰 "민간사찰, 기소한 2건 외엔 문제 없어" 총리실 "BH하명, DJ, 盧 정권 때도 쓴 표현>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검찰의 입장을 전달하기에 바빴다. 이미 공개된 문건 중에 불법 사찰이라는 할 만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검찰의 부실 수사 논란이 일고 신뢰성까지 떨어진 마당에 검찰의 입만 고집스럽게 바라보는 형국이었다.

특히 7일자 조선일보의 <민간인 사찰 요령, 우리가 누구한테 배웠겠어요">라는 기사는 양비론을 통해 물타기를 하는 보도의 폐해를 스스로 고백하는 꼴이 됐다.

조선일보는 기사에서 노무현 정부의 총리실 조사심의관실과 공직윤리관실에서 근무했던 전 현직 직원들의 증언을 뭉뚱그려 '암행감찰팀'으로 지칭하고 불법성 여부도 판단하지 않은 채 노무현 정부에서도 일상적인 사찰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그렇다면 과거에 노출되지 않았던 암행감찰팀의 활동이 왜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일까"라면서 전직 암행감찰팀 직원을 말을 빌려 "일부 팀원들이 어설프게 조사하다 문제를 일으켰다"고 전했다. 역으로 말하면 노무현 정부는 민간인 사찰을 '프로' 답게 숨겨서 문제가 안됐지만 현 정권에서 아마추어의 실수로 인해 노출이 돼 문제가 됐다는 식이다.

조선일보의 보도대로라면 민간인 사찰은 어느 정권이나 이뤄진 것이고, 이번 사안의 핵심은 불법 여부가 아니라 사찰의 노출 여부다.

이같은 조선일보의 논리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와 KBS, YTN 동향 파악 등 민간인 사찰로 볼 수 있는 전 정권의 민간인 사찰 내용은 왜 나오지 않고, 보도하지 않는지 답을 내놔야 한다.

덧붙여 민간인 사찰은 정권을 막론하고 비일비재한 일이라고 한다면 자사 기자의 취재원도 사찰의 대상이 된 현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번에 공개된 ‘2009년 하명사건 처리부’ 문건에는 조선일보 박은호 기자가 쓴 “댐을 세우면 수질 되레 악화”라는 제하의 기사와 관련해 환경부내 정보 유출자를 색출하라는 지시가 적혀 있다. 조선일보는 하지만 자사 기자의 취재원이 문건을 통해 사찰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 드러났는데도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경향신문이 지난 2일 뉴스분석 기사에서 "사태의 본질에는 침묵하고 전 정권을 끌어들여 정치적 물타기에 나선 청와대와 총리실은 역풍을 맞고 있다"면서 "보다 본질적인 것은 전 정권의 문제를 지적한다고 해서 현 정권에서 발생한 권력형 비리가 감춰지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한 부분은 조선일보 등 보수 신문에서도 돌이켜 곱씹어 볼 대목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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