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일, KBS 제주총국 홍성엽PD에게 프로그램 기획서 하나가 떨어졌다. 5월 21일 방송할 제주편을 제작하라는 것이었다. 지역국에 근무하는 홍PD에게 이 기회는 전국 방송망을 탄다는 점에서 기쁘기도 하지만 부담 또한 적지 않았다.

방송은 사람과 기자재로 하는 것인데 지역국의 경우 인력이건, 기자재건 충분한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성우가 즐비하고, 작가가 있고, 외주조명에 음향까지 임대해서 쓸 수 있는 중앙사와는 사정이 다르다. 그래도 홍PD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달안에 제작을 끝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제주총국의 는 준비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KBS 제주총국이 지국의 총력을 모아 제작준비를 갖추고 선정한 아이템은 제주의 명물인 돌하루방. 사실 원래 제주 사람들은 돌하루방이 특별히 제주를 상징한다거나, 지켜준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 돌하루방이 각광받게 된 것은 정부가 제주를 관광도시로 개발하기 시작한 60년대로 이렇다할 관광상품이 없던 제주의 상징으로 하루방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하루방이 장사가 되자 많은 사람들이 그 사업에 뛰어들었다.

장공익옹도 그런 사람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제작진의 눈에 비친 장옹의 모습은 여느 쟁이들과는 달랐다. 돌하루방이 풍기는 신비한 미소에 매료돼 사업도 버리고 40여년을 돌하루방에 매달려 온 장옹에게서 고집스런 장인의 기개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장옹을 테마로 본격취재에 들어가자 이번에는 엉뚱한 문제가 발생했다. 제주 출신 사학자들의 대개가 서울에 몰려 살고 이렇다 할 향토사학자 하나 없어 역사적 고증을 받기가 어려웠다. 내용을 채우기가 만만치 않은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는 또 참을 수 있었다. 제작진이 노력하면 될 문제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영상매체의 특징상 소위 ‘그림’을 잡아야 하는데 돌하루방의 미소가 좀체 카메라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궁리 끝에 제작진은 야간시간대를 이용, 간접조명으로 돌하루방의 미소를 잡아 보기로 했다.

됐다 싶었는데 막상 화면에 뜬 모습은 실망스러워 재촬영을 시도하기를 여러날, 제작진은 여러 날밤을 세우며 가까스로 돌하루방의 미소를 화면에 담아낼 수 있었다. 흡족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제작진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심 하나만으로 한달여의 고생을 스스로 보상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제주총국 제작진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 못하다. TV가 거의 꺼질 무렵인 11시 30분이나 돼서야 돌하루방이 방송을 타기 때문이다. 지방토속 문화를 전국에 소개하고 지역국의 제작역량을 키워 다가올 지방시대에 대비한다는 의 제작 취지가 이렇게 지역국의 제작의지를 무색케 할 만큼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전국적이라는 말이 시청자들의 관심으로 확인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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