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장악 시나리오는 청와대가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KBS 새노조가 지난 30일 폭로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1팀 문건에는 정부가 정치인, 경찰, 재벌, 언론 등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사찰을 벌인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특히 언론사를 상대로 한 동향 보고는 언론 장악이 치밀하고 주도면밀한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됐다는 그동안 제기된 의혹을 사실로 입증했다.

지난 2009년 12월29일 작성된 KBS 사찰 문건 내용을 보면 김인규 사장 취임반대 투쟁이 조기 종료된 배경과 KBS 새노조 설립 이후 전망이 상세히 나와 있다. 특히 “KBS의 색깔을 바꾸고 인사와 조직개편을 거쳐 조직을 장악한 후 수신료 현실화 등 개혁과제 추진 예정”이라는 문구는 KBS가 정권의 꼭두각시로 전락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대목이다.

노조가 주장했던 수요회의 실체도 드러났다. 문건에는 수요회에 대해 “08년 사장 선임시 김인규를 지지하기 위해 결성”됐다고 나와 있고, 회장은 이정봉 보도본부장이며 “수요회를 이끌고 있는” 사람으로 고대영 보도총괄팀장을 지목했다. 김인규 사장을 지지하는 사조직이 있다는 정연주 전 KBS 사장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또한 구조조정 및 조직개편 필요성을 제기해 향후 주도권을 김인규 사장이 잡고 KBS를 장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주문사항도 나와있다. 실제로 김 사장은 취임 후 2010년 BCG 컨설팅에 24억원을 주고 경영 컨설팅을 실시했고, 이를 근거로 <추적 60분>이 보도본부로 이관되는 등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KBS 새노조는 “결국 조직개편은 그의 말처럼 KBS를 세계적 공영방송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에 대한 공포감을 이용해 장악하기 위한 음험한 술책이었던 것”이라고 비난했다.

YTN 역시 청와대의 의중을 충실하게 받들었다. 2009년 9월3일자로 작성된 문건에는 배석규 사장의 개혁조치로 “친노조, 좌편향 경영 간부진은 해임 또는 보직변경 등 인사 조치”라는 대목이 있다. 당시 배석규 사장은 보도국장 추천제 폐지를 선언하고 정영근 보도국장을 김백 보도국장으로 교체했다. 이어 돌발영상의 임장혁 PD를 대기발령시키고 낙하산 반대 투쟁에 참여했던 뉴스 앵커들을 비보도 업무로 발령냈다.

특히 “새 대표가 회사를 조기 안정시킬 수 있도록 직무대행 체제를 종식시키고 사장으로 임명하여 힘을 실어 줄 필요”가 있다는 대목도 문건 작성 한 달 뒤 YTN 이사회가 배석규 사장을 대표이사로 날치기 선임하는 것으로 현실화됐다.

2009년 8월 25일과 11월 9일자 ‘KBS, YTN, MBC 임원진 교체 방향 보고’라는 문건은 ‘BH 하명’으로 분류돼 있다. 낙하산 사장을 내려 보내 조직을 장악하고 보도 방향을 통제하는 일련의 언론장악 시나리오를 청와대가 직접 진두지휘했다는 의미다.

한겨레21 박용현 편집장과 PD수첩 역대 작가들이 사찰 문건 대상에 올랐고, ‘2009년 하명사건 처리부’ 문건에는 조선일보 박은호 기자가 쓴 “댐을 세우면 수질 되레 악화”라는 제하의 기사와 관련해 환경부내 정보 유출자를 색출하라는 지시도 적혀 있다.

향후 언론사와 언론인을 상대로한 불법사찰이 추가로 드러날 가능성도 높다. 이미 언론사들은 KBS 새노조가 폭로한 문건 이외에 검찰이 압수수색해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또다른 USB(저장장치)를 찾는데 집중하고 있다. KBS 새노조는 오는 5일 <리셋 KBS 뉴스9> 방송을 통해 “총리실 문건 외에 다른 민간인 사찰 문건의 존재 여부”를 취재한 결과물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언론 사찰 문건에 대해 “언론에 개입하고 장악하려는 정황은 많았고, 입증하기 힘든 문제였는데 직접적인 증거들이 문건을 통해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교수는 “과거 참여 정부를 청산하고 지워버리려는 의도, 사회의 시스템을 만들기보다는 사람에 대한 성향 같은 구태의연한 뒷조사를 통해 회유, 협박하는 이런 식은 일상적인 정보 수집과 정무 기능을 초월해 벌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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