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윤리지원관실이 직접 기자들과 만나 녹취해 대화 내용을 수집한 것으로 드러났다. 언론사 장악을 위해 KBS, YTN 등의 동향을 사찰하고 4대강 비판 기사를 쓴 기자의 내부 취재원을 색출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뿐 아니라 언론사 기자들과 나눈 대화 내용까지도 사찰 내용에 포함된 것이다.

지난 2008년 10월 '장차관의 직무 역량 정보 수집'이라는 문건에는 종합일간지 기자 3명을 만나 기록한 녹취록이 포함돼 있다. 기자들과 대화를 나눈 음성파일도 첨부됐다. 거칠게 말하면 언론사 기자들이 정권에 유리한 정보를 주는 정보원으로 적극 활용된 셈이다.

내용은 문건 제목 그대로 장차관에 대한 기자들의 평가가 담겨 있다.  녹취록 내용 중 조선일보의 한 기자는 "국감은 훌륭히 치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장관이 VIP의 테니스 회원이고 실세라는 소리에 여당 의원들이 많이 도와주었다"고 말했다. 2008년 10월 당시 교육기술부 장관은 안병만 장관이 맡고 있었다.

특히 조선일보 기자는 "교과서 수정문제는 VIP 관심 사항이라 그것만 추진했고, 여당 의원들이 많이 도와주었다"고 말했다.

당시에 교과서 수정 문제는 뉴라이트 진영 '교과서포럼' 등이 기존 역사교과서가 좌편향적이라며 논란을 일으켰고, 결국 2008년 10월 30일 교육과학기술부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6종의 55건에 대해 이들의 의견이 반영된 수정 권고를 내렸다.

교과부는 수정권고안에서 "친일파를 프랑스처럼 대량으로 처형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우리 현대사를 옥죄는 굴레가 되었다'는 표현은 지나치게 주관적인 견해이므로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또한 "일장기 대신 올라간 것은 태극기가 아니었다. 일장기가 걸려있던 그 자리에 펄럭이는 것은 이제 성조기였다. 광복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역사적 순간은 자주독립을 위한 시련의 출발점익도 했다"는 문장 중 마지막 문장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녹취록에서 조선일보는 기자는 또한 "(교육과학기술부 내에)관료주의가 팽배해 있다. 통합 후 어느 자리에는 어느 쪽 사람이 가야 한다는 식의 자리 채우기가 성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008년 2월 29일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교육과학기술부가 출범했지만 조직 인사를 두고 통합 진통이 있어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한 중앙일보 기자는 "교과부는 언론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장관은 현재 학습기간으로 보아야 한다. 교육 관련 업무 전반을 총괄해본 경험은 없기 때문에 현재 학습 중"이라고 전했다.

또다른 중앙일보 기자는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 차관이 과기부 장관 역할을 해야 되는데 과학을 모르는 사람이 차관이 되었다. 한 마디로 비전문가"라고 말했다.

한겨레21 박용현 편집장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 대상 명단에 이름이 오른 것도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겨레는 31일자 신문에서 박용현 편집장은 직접 글을 기고해 "한 가지 밖에 떠오르는 게 없다. 한겨레21의 보도 내용이다"라며 "한겨레21 편집장으로 일한 것 외에는 지원관실의 촉수를 건드릴만한 다른 공적인 활동을 한 게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편집장은 "한겨레21은 이명박 정부 초기 촛불정국 때부터 다른 어떤 매체보다 날을 세워 정부의 비민주적 행태를 비판해왔다"면서 지난 2008년5~7월 713호부터 109호까지 7주 연속 촛불 사건을 표지이야기로 다뤘다고 전했다.

박 편집장은 또한 "725호 '파시즘의 전주곡'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히틀러를 나란히 세운 표지 이미지와 함께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 해임, 100번째 촛불집회에서의 무차별적 강제연행, 조중동 광고거부 운동 누리꾼 구속 등 촛불을 역공하는 공안 드라이브를 정면으로 고발했다"고 말했다.

박 편집장은 "김종익 전 KB 한마음 대표에 대한 불법사찰의 계기가 이 대통령 비방 동영상이라는 점에 비춰 보면, 정권에 비판적인 진보적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의 이런 일련의 보도가 지원관실의 '관심'을 끌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박 편집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도 "정권 입장에서 보면 잘못된 점을 비판하니 불편했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방법과 내용이 나오지 않았지만 언론인들을 불법과 탈법으로 사찰한다는 건 비판을 권력으로 억누르려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같은 언론계의 전방위적인 사찰 내용이 드러나면서 국민과의 소통 창구로서라기 보다 '정권 친위대'로서 언론을 길들이는 이명박 정부의 천박한 언론관이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언론에 개입하고 장악하려는 정황은 많았고, 입증하기 힘든 문제였는데 직접적인 증거들이 문건을 통해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교수는 "과거 참여 정부를 청산하고 지워버려는 의도, 사회의 시스템을 만들기보다는 사람에 대한 성향 같은 구태의연한 뒷조사를 통해 회유, 협박하는 이런 식은 일상적인 정보 수집과 정무 기능을 초월해 벌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언론관에 대해 "기자를 사회의 파수꾼, 소금이라는 역할로 인정하기 보다는 비판 언론에 대해서 정치적이라고 하면서 자신들은 언론을 아군과 적군으로 나눠 아군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는 국정에 협조하려는 사람으로 간주하려는 측면이 있다"면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서는 건수를 찾아서 뒷조사를 한다던가 하는 그런 점에서 언론관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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