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기자에게 강조되는 태도 가운데 하나는 ‘사실 확인’이다. 취재원으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들었더라도-아무리 솔깃한 이야기라도-이를 그대로 기사화해서는 안 된다. 취재원의 ‘주장’과 객관적 ‘사실’이 다를 수 있고,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주장은 정보가 아니라 흉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의 원칙에 관한 기본적 이야기를 먼저 꺼낸 이유는 이런 기본을 지키지 않는 언론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선 <신동아> 4월호에 실린 ‘정수장학회 대선 뇌관 될까?’라는 제목의 기사 일부를 인용한다.

“앞서 한겨레는 2월4일 최 이사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도하면서 ‘최 이사장은 누가 뭐래도 박근혜 위원장 사람이다’ ‘최 이사장이 박 위원장을 대신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부산일보 직장폐쇄 및 매각 가능성도 수 차례 내비쳤다’고 썼다. 최 이사장은 이 기사를 보고 격노했다고 한다. 자기 말을 가지고 오히려 장학회에 불리한 방향으로 보도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장학회 관계자는 ‘한겨레 기자가 정식 인터뷰를 한 것도 아니고 편하게 대화하는 자리에서 녹음기를 몰래 숨겨 기사로 만들었다’고 했다. 어쨌든 이 기사로 인해서 최 이사장은 ‘언론 인터뷰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뜻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인용한 대목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신동아는 정수장학회 관련 기사를 준비하며 재단법인 정수장학회의 최필립 이사장 인터뷰를 시도했다. 인용되지 않은 기사 앞부분을 보면 신동아의 최 이사장 인터뷰 제안은 성사되지 않았다. 신동아는 그 이유를 “(최 이사장이) 한 달 전 한겨레 인터뷰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해 계신다”는 ‘장학회 관계자’의 설명에서 찾고 있다. 인용한 부분은 이 관계자의 주장에 대한 부연이다.

맞다. 장학회 관계자가 말하고, 신동아가 적시한 ‘한겨레 기자’가 나다. 신동아가 소개한 것처럼 한겨레는 지난 2월4일치 토요판 커버스토리로 정수장학회 논란을 3개면에 걸쳐 다뤘다. 최필립 이사장 인터뷰도 한 면(3면)에 걸쳐 실었다. 모두 사실이다.

그런데 사실이 아닌 것이 있다. 신동아가 소개한 ‘장학회 관계자’의 말이다. 그 관계자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한겨레 기자가 정식 인터뷰를 한 것도 아니고’ ‘녹음기를 몰래 숨겨 기사로 만들었다’고 했는데, 이는 모두 허위다.

간단히 반박할 수 있다. 한겨레가 당시 최 이사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녹음한 음성파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인터뷰 기사의 경우 취재원의 허락을 얻어 필기 대신 보이스레코더 등으로 인터뷰 기록을 남기는 기자가 많다. 지난 1월4일 오후 3시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 11층 정수장학회 이사장실에서 이뤄진 최 이사장과의 인터뷰 때도 마찬가지였다. 1시간58분1초 분량의 당시 인터뷰 녹음파일을 들어보면 들머리에 아래의 대화가 나온다.

“이사장님, 제가 말씀을 좀 집중해서 듣기 위해 따로 메모를 안 할 겁니다. 대신 녹음을 해도 되겠습니까.”(한겨레 기자)

“뭐, 그러세요. 녹음해도 괜찮아요. 다만 내가 한겨레 인터뷰에 응해드리는데, 뭐랄까 극단적 표현은 안 하는 게 제일 나은 거 아니에요.”(최필립 이사장)

한겨레는 최 이사장과의 약속대로 2시간30분 동안 이어진 이날 인터뷰를 비롯해 두 차례의 대면 인터뷰와 4~5차례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발언 가운데 감정적 표현, 사소한 말실수라고 판단되는 부분은 기사에 싣지 않았다. 거친 표현을 적절히 거르는 것도 저널리즘의 기본이다.

신동아는 어떤가. 신동아는 장학회 관계자의 일방적 주장만 듣고 결과적으로 ‘한겨레 기자’를 매도했다. 인터뷰를 전제로 만났는지, 최 이사장의 허락을 얻은 녹음이었는지, 상대방인 내게는 확인 한번 하지 않았다. 신동아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어디에도 ‘한겨레 기자’의 반론이 없다.

또한 신동아는 취재원의 일방적 주장에 대한 최소한의 ‘합리적 의심’도 하지 않았다. 신동아가 만약 그날(2월4일)치 한겨레를 직접 눈으로 봤더라면 “정식 인터뷰가 아니었다”는 장학회 관계자의 주장을 도저히 그대로 받아쓰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면 이날 한겨레 토요판 1면에는 최필립 이사장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렸기 때문이다. 그의 머리 위에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의 모습이 담긴 사진액자가 걸려 있는 사진이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최 이사장에게 그쪽으로 자리를 옮겨달라고 부탁한 뒤 촬영한, 일종의 연출사진이었다. 한겨레 기사가 몰래 인터뷰였으면 이 사진은 ‘몰카’라도 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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