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6일자 중앙일보는 4면에 5단 대형 상자기사에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현재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패션스타일을 가득 채웠다. 각양각색의 ‘박근혜 칼러 패션사진’ 7장도 함께 소개했다. <박근혜 ‘특사패션’…“외국정상에 대한 예의”>라는 제목과 함께 ‘기자들이 궁금했던 레인보 패션’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5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 한 호텔에서 취재기자들과 간담회를 했다. 이 자리에 그는 보라색 재킷에 검정 바지 정장 차림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8일 시작된 대통령 특사 외교 일정을 소화하면서 자주 입었던 치마 대신 바지를 선택했다…그는 하루에도 옷과 구두를 서너 번씩 갈아입거나 신었다…”

이 기사는 박 위원장이 대통령의 특사자격으로 수교 50주년을 맞아 3개 유럽국가를 방문하던 중 나온 취재기자들과의 간담회에 관한 것이다. 간담회 내용이 패션에 관한 것 일리는 없지만 이 기사는 여느 패션모델 기사 못지않아 보였다. 또 이날 연합뉴스는 박근혜 특사의 레인보 패션뿐 아니라 그의 헤어스타일은 물론 신발과 가방, 심지어 브로치 패션에 대한 사진과 기사를 쏟아냈다. 순방 하루 앞서 있은 4·27 재보선 얘기는 그 곁에도 끼지 못했다. 순방홍보와 짜고 치는 언론의 행색이 보기 딱할 정도였다.   

지난해 12월 방송을 시작한 종합편성채널(종편)이 일제히 박 위원장과의  특별인터뷰를 방송사 개국특집으로 다룬 것도 우연이 아니다. 특정한 정파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를 한결같이 ‘박근혜의 패션감각’ 이상으로 칭송한 것이 어디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칭송 정도가 아니다.

TV조선은 박근혜 전 대표와의 인터뷰를 내보내며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자막을 화면에 고정시켰다. 이 정도면 이미 언론의 독립은커녕 언론이기를 포기한 사례라고 할 만하다. 따지고 보면 박 위원장이 오늘의 종편을 있게 한 미디어법 국회통과의 공로자이기는 하다.

이번에는 이상일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공천을 받는 과정이 유착의 이면을 보여주었다. 그는 새누리당의 공천발표 직전까지 박 위원장과 새누리당을 성원하는 경향의 칼럼을 썼다.

그는 ‘박근혜, 눈물 흘리지 않으려면(2월9일)’이라는 중앙일보 칼럼에서 박 위원장의 대구·달성 불출마 선언을 두고 “당을 위한 희생”이라고 칭송했다.

‘손수조 공천이 장난일까요?(3월8일)’와 ‘김무성의 진가(3월15일)’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대항마로 낙점된 손수조 후보결정과 김무송 의원의 탈당철회를 치켜세웠다. 공천발표 2주 전에는 박 위원장을 초청한 관훈클럽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 ‘특기인 썰렁 개그를 하나 해달라’는 어이없는 주문을 내놓기도 했다.

그와 박 위원장의 관계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지만, 언론인으로서는 차마 해서는 안 될 처사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두 사람 모두 현직 언론인이 이렇듯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하다. 오히려 당당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것도 비례대표 당선안정권인 8번에다, 4·11 총선 새누리당 선거대책위 대변인으로 나서는 길이니 모두 잘된 일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선지 그는 새누리당 선거대책위 대변인이 되자마자 야당 물어뜯기에 나섰다. ‘통합진보당을 종북파가 휘어잡고 있다’는 조선일보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 색깔론을 다시 일깨우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런 판국에 새삼 언론과 언론인의 언론윤리를 들먹이는 것조차 버거운 일이다. 무너져 내리는 저널리즘의 원인이 언론과 언론인의 탓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치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문화방송(MBC) 한국방송(KBS) YTN은 물론 연합뉴스 등이 파업을 벌이고 있는 이유도 언론과 언론인의 기본을 되찾겠다는 소망에 다름 아니다. 이명박 정권의 출범 이후 낙하산 인사로 시작된 언론장악의 쌓이고 쌓여온 폐해가 정권 말기에 파업으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방송파업에 관한 얘기는 어처구니없다. 각 방송사의 파업이 ‘내부사정’이니 “언급을 하게 되면 오히려 간섭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정부가 관심을 갖는 것은 불법파업의 여부라며 파업에 대한 법적 조치를 시사했다. 그의 태도는 박 위원장의 정수장학회와 부산일보 사태에 대한 입장을 연상케 한다.

박 위원장은 정수장학회와 무관함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이 정수장학회의 이사장을 내놓은 이상 관여할 수 없다는 논리다. 정수장학회의 과거를 일일이 돌아보지 않더라도 박 위원장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이 대통령의 방송파업에 대한 언급이 어불성설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람과 정강정책 그리고 당명까지 바꾸며 변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박 위원장의 과거지향적 언론관만은 요지부동으로 보인다. 방송파업에 대한 그의 침묵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박 위원장의 언론관을 다시 묻는 까닭이다.

(저널리즘학 연구소장·순천향대 신방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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