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와 EBS가 ‘제대로 된 어린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며 케이블이나 IPTV로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그동안 상업방송의 어린이 프로그램은 종종 폭력성·선정성으로 논란이 돼 왔다. 반대편에서는 교육적 가치를 중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27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백수정 팀장을 만나 어린이프로그램의 현황과 문제점을 들어봤다. 백 팀장은 유아어린이프로그램을 꾸준히 모니터링해왔다. 그는 편중된 장르, 반복편성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제작 가이드라인, 전문작가 양성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근본적으로 어린이에 대한 보수적인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어린이프로그램의 최근 흐름은 어떤가.
“방송매체가 상업성을 띄기 시작하면서 소비계층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다. 그러면서 어린이프로그램도 달라졌다. 전 세계적으로 어린이프로그램이 줄었고, 어린이도 성인프로그램을 선호하게 됐다.”

-모니터링 결과는 어떤가.
“유아·어린이용이 아닌데 내보내는 경우가 많다. EBS <빼꼼>은 엽기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이 많아 청소년 이상이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짱구는 못 말려> 같은 경우 유아를 대상화할뿐더러 잘못된 성 인식도 많다. 짱구가 엄마의 치마를 들추고, 여성을 섹시코드로 본다. 이런 짱구는 말려야 한다. 일본에서는 성인용 만화책이었다. 투니버스 <아따맘마>도 원작은 일본 성인용 만화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유아·어린이프로그램은 교육적이어야 한다’는 사람이 대다수다.
“강박관념이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아이들에게 ‘넌 몰라도 돼’라면서 교육적인 프로그램만 강요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어린이들도 드라마 선호도가 크지만 거의 없다. 시사보도프로그램도 필요한데 없다. 영국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뉴스, 시사프로그램이 많다. 어린이를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어릴 때부터 민주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소양을 알려주는 것이다. KBS <저요저요>는 토론프로그램, <뉴스탐험>은 뉴스프로그램이었지만 다 폐지됐다.”

-2월 둘째 주 4~12세 어린이 시청률을 보면 1~3위가 <개그콘서트> <해를 품은 달> <오작교 형제들>로 15세 이상 프로그램이다. 자의든 타의든 성인프로그램에 노출돼 있는 상황이다. 폭력성, 선정성을 이유로 비판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어린이들이 선정, 폭력에 노출되는 게 현실이라면 그 이면에 대해서 같이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폭력성을 보여주되 그에 따른 책임의식도 보여 달라는 거다. 아무리 정의를 위해 휘두른 칼이라도 그 칼은 나쁜 것이라는 얘기를 해줘야 한다.”

-연속편성도 문제 아닌가.
“<뽀로로> 같이 인기 있는 프로그램을 연속편성하거나 몇 개 애니메이션을 연속해 내보내고 있다. 20분이라는 러닝타임은 유아의 집중시간이다. 그 이상 넘어가면 신체리듬과 건강에 좋지 않다. 연속편성 중간에는 광고가 들어간다. 광고는 어린이에게 특히 안 좋아서 시민단체에서는 보여주지 말라며 권유하고 있는데 연속편성하면 모두 노출된다.”

-사전에 제작 가이드라인을 내실화하고 사후에 심의를 강화하는 방법은 어떤가.
“우선 심의대상이 소재와 내용이 아니라 특정 장면과 언어라는 점에서 현행 심의제도는 한계가 있다. 다음으로 유아·어린이프로그램 제작 가이드라인을 보자면 EBS는 외국 사례를 정리한 수준이고 MBC, SBS는 없다. KBS는 있지만 어린이프로그램은 KBS2 1시간뿐이다.”

-대안을 소개한다면.
“프랑스와 같이 전문작가를 양성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프랑스의 어린이 프로그램에는 이런 질문이 나온다. ‘바닥이 뜨겁다고 생각해봐, 어떻게 할래?’ 반면 한국은 ‘선생님을 따라해 보세요’, ‘토끼가 돼 볼까요?’와 같은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대본을 쓰는 작가와 작가중심의 제작환경이 중요하다.”

-KBS와 EBS가 케이블이나 IPTV에서 유아·어린이채널을 시작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기존 케이블 상업채널과 내용이나 편성도 다를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공영방송의 케이블 진출이 반갑지만은 않다. 시청에서 소외되는 어린이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2만 원에 가까운 돈을 낼 수 없는 가정의 어린이는 볼 수 없다. 반면 어린이 채널은 거의 케이블에 있다. 저소득층 아이일수록 오히려 TV를 많이 보는 계층이다. EBS 경우, VOD패키지를 구입해야 하는데 그걸로 볼 수 없는 프로그램이 많은 점도 문제다.”

-유아·어린이프로그램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에 대해 말해 달라.
“한국사회는 어린이를 ‘보호의 대상’으로만 본다. 이게 프로그램에서 드러난다. 어린이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다르고 관련 연구가 진행하는 프랑스는 유아 대상 오락프로그램이 유아 발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를 통해 프로그램을 제재했다. 한국도 이런 연구가 필요하다. 아이를 잘 알려는 제작진의 노력은 물론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는 사회 구조와 인식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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