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자르기냐 부정선거냐"

21일자 아침종합신문의 활자를 가르는 두개의 키워드다.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입을 열었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터진 지 21개월만에 자청한 기자회견에서다. 이영호 전 비서관은 "(지원관실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보관된) 자료 삭제에 관한 모든 문제는 바로 내가 몸통"이라고 말했다.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잇따른 폭로와 녹취록 공개로 인해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지시에 '윗선'이 있다는 의혹이 짙어진 가운데 자신이 몸통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 전 비서관은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전면 부정하고 돈의 출처도 밝히지 않아 도마뱀 꼬리 자르기의 전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김희철 민주통합당 의원의 경선 과정에서 여론 조사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이 대표가 야권 단일화 연대의 상징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번 의혹이 야권의 최대 악재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이 대표와 진보정당의 도덕성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며 정치적 결단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21일자 아침종합신문의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원전과학자 대 전태일 동생>
국민일보 <트윗 점유율 이정희(26.5%), 손수조(11.4%) 순>
동아일보 <이영호 "내가 몸통" 장진수측 "소가 웃을 일>
서울신문 <내가 이 직업 고른 이유 돈 돈 돈>
세계일보 <담보 부동산 경매서 반토막 채권자 떼인 돈 4년간 5조>
조선일보 <원전 비상발전기 수습 2명이 검사>
중앙일보
한겨레 <새누리 비례대표 15번 이봉화 직원들한테 돈 받은 혐의 수사>
한국일보 <이영호 "자료 삭제 지시 내가 몸통">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20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하 직원이던) 최종석 전 행정관에게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철저히 지우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2000만원을 줬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불법사찰의 증거를 인멸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면서 삭제 지시 배경에 대해서는 "국가의 중요 정보가 외부에 유출돼 악의적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내 책임하에 자료 삭제를 지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자신이 최종석 전 청와대를 통해서 지원관실 컴퓨터 하드 디스크 자료를 삭제한 것은 시인했지만 불법사찰의 증거의 인멸할 뜻은 없었다는 얘기다.

이 전 비서관은 또한 지난해 8월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2000만원을 준 것도 사실이지만 '입막음용'이 아닌 선의로 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불법 사찰 사건에 대해서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를 공기업 자회사 임원으로 오해해 우발적으로 이뤄진 사건”이라며 “저와 청와대는 김종익씨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이영호 “내가 몸통”, 장진수측 “소가 웃을 일”

이 전 비서관의 기자회견에 대해 당장 장진수 전 주무관 측에서는 '소가 웃을 일'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사건이 터지고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신이 몸통이라는 털어놓는 것 자체부터가 '윗선' 개입 의혹을 인정하는 꼴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드러난 사실은 스스로 인정하고 미리 수사의 칼끝을 자신에게 향하게 해서 윗선으로 가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라는 얘기다.

국민일보는 "이 전 비서관은 또 본인의 책임 아래 자료삭제를 지시했다지만 청와대 소속 비서관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비서관실 주무관에게 지시했다는 사실 자체가 청와대 개입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는 것이어서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불법 사찰 사건을 전면 부인한 이 전 비서관에 대해 "불법사찰 혐의는 이미 불법사찰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항소심까지 유죄가 선고돼 현재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라며 " 이 전 비서관은 자신에 대한 의혹을 부인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법원 판결까지 무시하는 주장을 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자료 유출을 이유로 삭제를 지시했다는 해명 역시 검찰 수사를 대비해 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전 비서관의 사법 처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진경락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은 장 전 주무관에게 증거인멸 지시 혐의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장 전 주무관도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경향신문은 박주민 변호사를 말을 인용해 "검찰이 적용할지는 모르겠지만, 형법상 범죄은닉죄도 적용될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 전 비서관은 2000만원을 건넨 것을 시인하면서도 돈의 출처에 대해서는 꽁꽁 입을 다물었다. 돈의 출처에 따라 이번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이 자금 흐름에 주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장 전 주무관은 지난해 4월 장석명 비서관이 류충렬 당시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을 통해 5000만원을 건네 받았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이 돈의 출처에 대해 민정수석실 에산 일부 전용 가능성, 청와대 예산, 다른 국가기관 돈, 정권실세 조성 비자금 등 네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특히 경향신문은 "정권실세들이 조성한 비자금의 일부가 민정수석실을 통해 장 전 주무관에게 전달됐을 가능성도 있다"며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이 ‘비선’을 통해 이뤄졌다는 의혹과 궤를 같이하는 추정이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만약 전달된 돈이 정부 자금의 일부라면 검찰 수사에 대비한 증거인멸이라는 국기문란 행위의 대가로 국가예산을 지급한 셈"이라면서 "이와 달리 ‘비선’의 자금으로 확인될 경우 정권실세의 ‘비자금’ 문제로 불똥이 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기자회견으로 인해 검찰의 부실 수사 논란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사건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증거인멸 혐의로 장 전 주무관과 총리실 실무자들만 처벌했다. 이 전 비서관이 자백은 지난 검찰의 수사를 정면을 뒤집었다는 점에서 검찰 입장에서는 망신살이 뻗치게 됐다. 일례로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증거인멸 당일 장진수 전 주무관이 최종석 전 행정관으로부터 대포폰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지만 최 전 행정관은 한 차례 출장조사로 마쳤고, 이 전 비서관은 참고인 신분으로 한 차례 소환해 8시간 조사하고 돌려보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증거 인멸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수사를 종료했다.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서 "2010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의 1차 수사가 부실수사였음이 확인된 만큼, 성역 없는 재수사가 이뤄져야 할 당위성도 커졌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불법사찰의 흔적을 은폐하기 위해 청와대와 총리실은 물론 정부 부처 곳곳이 동원된 흔적이 감지된다"며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의 사찰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라면 이렇게 했을 리 없다. 각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전방위적 불법사찰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을 공산이 크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민일보는 사설에서 "항간의 추측대로 민간인은 물론 정치인과 관료, 노동·언론계 인사들을 상대로 광범위한 사찰을 자행한 비선조직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도 사설에서 "검찰 발표대로 하드 디스크에 담긴 불법 사찰 내용이 이번 사건의 문제가 된 민간인 김모씨 한 명에 대한 것뿐이라면 청와대 비서관·행정관이 총동원돼 입막음에 나섰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불법 사찰의 의혹의 핵심 조직인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대해서도 집중 조명됐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전신은 총리실 조사심의관실이다. 조사심의관실은 이명박 정권 당시 폐지된 이후 촛불 시위 여파로 2008년 7월 공직윤리지원관실로 재탄생했다. 공직사회를 대대적으로 감찰할 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서울신문은 "출범 당시부터 지원관실은 이 전 비서관에 의해 휘둘렸다는 얘기가 나돌았다"며 "한 관계자는 '과거 공직감찰은 대부분 ‘민정’의 통제를 받았지만 지원관실은 그렇지 않았다' 면서 '‘노동’ 라인인 이 전 비서관을 통해 많은 지시가 내려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형식상 이 전 지원관의 공식 보고라인은 총리실 내에서는 김영철(2010년 사망)·권태신 사무차장, 청와대에서는 이강덕·장석명 공직기강비서관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 전 비서관을 주축으로 한 청와대와 총리실의 고용노동부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비공식 라인이 형성됐다.

이번 사건의 중심에 '영포 라인'이 있다는 의혹도 나왔다.

중앙일보는 "청와대의 민간인 불법 사찰 개입 의혹을 폭로한 장진수(39)씨에 대한 소환을 시작으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이른바 ‘영포라인’ 인사들이 사건의 중심에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영포라인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포항·영일 지역 출신 인사들을 통칭하는 용어다.

중앙일보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영포라인이 새삼 주목받는 것은 민간인 불법 사찰과 증거인멸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인사들이 대부분 포항 출신이기 때문"이라며 "폭로 주체인 장씨와 장씨에게 2000만원을 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영호(48)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장씨에게 공직윤리지원관실 컴퓨터 파기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도 포항 출신이다. 사찰을 총지휘했던 이인규(56) 전 공직윤리지원관의 고향도 포항"이라고 전했다.

특히 중앙일보는 이번 사건이 영포라인의 조직적 주도로 이뤄진 반(反)MB세력 척결 작업의 일환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직후인 2008년 7월 정부의 각 부처에서 인력을 지원받아 신설된 공직윤리지원관실 자체가 영포라인의 비선 조직이라는 의혹도 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공직자의 말을 빌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설립 당시부터 일종의 비선 조직이었고 민정수석실의 지휘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두 기관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고 전하고 "이 때문에 이번 2차 수사가 청와대의 불법 사찰 관여 입증 수준을 넘어 영포라인의 광범위한 전횡과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로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통합진보당 빨간불 켜지나

통합진보당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이정희 대표의 여론조사 조작 파문 때문이다.

사건은 20일 오전 한 누리꾼이 인터넷 유명 커뮤니티에 이 공동대표 측으로부터 받았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올리면서 시작됐다.

문자메시지에는‘조영래 보좌관’이 보낸 것으로 "지금 ARS 60대로 응답하면 전부 버려짐. 다른 나이대로 답변해야 함"이라고 적혀 있다. ARS 여론조사는 연령대 나이의 대표성을 반영하는 표본조사인데 이를 부정하고 다른 연령대의 나이로 답하라는 얘기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야권 단일화 경선은 ARS 여론조사와 임의전화걸기(RDD) 전화면접으로 절반씩 나눠 진행했다. 여론조사는 19∼39세, 40∼59세, 60세 이상으로 연령대를 나눠 실시했다. 조사 방식과 샘플 수만 공개했을 뿐 여론조사기관은 비밀에 부쳤다. 각 후보 측의 여론조사 개입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노출된 긴급문자대로라면 이 대표 측은 여론조사의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지지자들에게 거짓으로 연령을 대답하라고 지시한 것이 된다.

이 대표는 이번 사건에 대해 "당 대표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은 아니다"며 실무자들의 과욕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해명하고 "대표로서 책임지는 것이 맞지만 주민 의사를 물을 수 있는 방식으로 책임지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고 재경선을 제안했다.

하지만 김희철 의원은 "이 공동 대표 측이 국민과 관악구민을 상대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하다”며 “재경선 제의를 거부하며, 공당의 대표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한다”고 후보사퇴를 요구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신문들은 이정희 대표의 상징성과 향후 야권 연대의 전망에 초점을 맞췄다.

국민일보는 "이번 파문으로 이 공동대표와 통합진보당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게 됐을 뿐만 아니라 양당의 전국적인 단일화 효과가 반감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통합진보당은 전국 30곳에 야권 단일후보를 내는데 성공하면서 이번 총선에서 첫 원내교섭단체를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가운데 터진 사건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역시 "4·11총선을 앞두고 태풍의 눈으로 주목받던 야권연대의 신뢰도와 파괴력에 큰 흠집이 날 것이란 전망이 많다"면서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17, 18일 여론조사 방식으로 전국 74개 선거구에서 경선을 실시했다. 다른 야권연대 지역에서도 여론조사 조작이 벌어진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특히 이정희 대표의 도덕성을 집중 공략했다. 이 대표가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최구식 의원의 비서가 중앙선관위 홈페이지를 디도스 공격한 데 대해 트위터를 통해 "혼자 했을 리 없지"라고 한 것을 두고 "그랬던 그가 이번에 자신의 보좌관이 여론조사 결과를 조작하도록 지시한 사건의 당사자가 됐다"는 식이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7월 민주노동당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구태 정치 발언과 올 1월 "2012년은 무능하고 부패한 구태정치 세력이 몰락하고 참신하고 유능한 진보정치 세력이 한국 사회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는 발언도 소개했다.

조선일보는 "한국 정치를 '무능하고 부패한 구태정치'로 몰아붙이고, 민주당을 향해 "구태정치의 셈법을 벗어나서 겪는 불편함이 더 큰 분들"이라고 몰아붙였던 사람이 경선 조작의 당사자가 되고 만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이날 사건으로 4·11 총선 야권연대에도 ‘빨간불’이 켜졌다"면서 "문제를 일으킨 통합진보당이 책임져야 하는데, 경선 관리를 제대로 못한 경선관리위원회가 사과도 없이 재경선을 권고할 수 있느냐(민주당 관계자)며 불만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여론조사 조작 파문에 이어 통합진보당 후보의 성추행 전력도 제기됐다.

한겨레는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의 기사를 인용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를 통해 경기 성남 중원의 야권단일후보로 확정된 윤원석 통합진보당 후보의 성추행 전력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윤 후보는 <민중의 소리> 대표 출신으로 2007년 초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이 매체 계열사 기자를 강제로 껴안는 등 성추행을 했고 진상조사 이후 대표직에서 물러났다는 것이다.

<민중의 소리>의 한 핵심 인사는 “2007년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당시 진상조사보고서를 봐도 다른 두 사건의 경우 사실로 확인이 되지 않아 ‘…증언이 있었다’, ‘…제보가 있었다’고만 돼 있다”며 추가 의혹에 대해서는 부인했다고 보도했다.

윤 후보는 "당시 일은 몹시 부끄럽다. 그 일을 통해 많은 걸 배웠고, 다시 복귀할 수 있게 도와준 분들께도 빚을 많이 졌다. 앞으로도 계속 반성하는 마음을 갖고 활동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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