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웹툰이 학교 폭력을 조장한다며 "웹툰의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나선 것에 만화계의 반발이 거세다. 한국만화가협회와 우리만화연대 등은 비상시스템으로 '방심위심의반대를위한범만화인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구성하고 웹툰작가 뿐 아니라 만화과 교수들, 법률 자문가들을 모아 대응에 나섰다.

최근 강우석 영화감독이 차기 작품으로 선정해 화제가 된 원작 웹툰 '전설의 주먹'도 이번에 방심위가 청소년 유해물 심의 대상으로 꼽은 24개의 웹툰에 포함됐다. 이 작품의 스토리작가인 만화가 이종규씨를 19일 만나 만화계의 입장을 들어봤다.

-이번에 청소년유해물로 지정된 <전설의 주먹>이 인쇄 직전에 인쇄를 멈췄다고 들었다.

“책이 출판되고 얼마 안 돼서 수거하게 되면 굉장히 큰 피해가 생기기 때문이다. 방심위에서 해당 웹툰이 청소년 유해물로 결정이 나면 간행물 윤리위원회의 심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간행물윤리위원회는 책이 출판되고 배포된 후 사후 심의를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청소년 유해물로 판정이 나면 출판물 전량을 회수하고 불투명 랩핑을 하고 청소년 유해물로서 따로 판매 루트를 정하게 된다.

‘19금’과 ‘유해매체물’의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19금’ 웹툰은 포털에서 로그인해야 볼 수 있다. 반면 ‘청소년유해매체’는 그 자체로 유해물로 고지·공시돼 광고를 제한 받으며 법률적으로 청소년들이 열람할 수 없는 서고를 따로 만들어야 하고 제목이나 표지가 노출되지 않도록 숨겨놓으라는 것. 실제적으로 판매는 거의 못한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성인 만화시장이 죽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전설의 주먹’에는 폭력의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된 부분들이 있다. 이런 것이 청소년들에게 모방 충동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나.

“그런 것에 대한 우려는 모든 작가들한테 있다. ‘전설의 주먹’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폭력에 대한 후회와 죄의식이라는 주제가 두드러지는 형태이다. 작품을 처음부터 읽은 독자들의 경우 그 장면이 멋있다거나 폭력의 충동을 가진다기보다는 그 장면이 갖고 있는 의미와 감수성에 더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만화는 싸움꾼을 주인공으로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폭력이 어떠한 방식으로 순환되고 있는지, 미디어는 어떻게 폭력을 활용하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작품을 보니 오히려 청소년에게 계도적인 내용이 될 수도 있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작품을 구상하고 작업하면서 혹시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둔 건가.

“그런 측면도 있었다. 나이를 먹다 보니까 어린 시절에 보였던 폭력과 나이 든 사람들이 느끼는 폭력이 전혀 다르다. 그 의미를 만화로 보여주고 싶은 의도가 분명히 있었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철없던 시절에 본인이 죄의식을 갖지 않고 저질렀던 폭력이 서서히 어떤 업보로 남는다는 주제의식이 전체적으로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그렇다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들이 그 작품을 청소년 유해물로 지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만화가 청소년에게 모방 충동을 일으킨다는 연구 보고나 증거 자료가 현재 없는 상황이다. 이것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없는 상황에서 방심위가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방심위가 이번에 유해 매체로 지정한 작품들은 논란의 여지가 굉장히 많을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제 작품의 경우에 표현수위가 다소 높은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표현 수위에 비해 내용 자체가 청소년들에게 사실은 이야기해줘야 할 부분이 많은 작품이다. 그러다보니 만화가들이나 팬들 사이에서 ‘방심위원들이 만화를 제대로 읽어보긴 했을까’라는 말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웹툰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하나의 작품이다. 이런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방심위의 경우 웹툰을 단순히 파편화된 정보로 인식하다 보니 개별 장면만을 보고 선별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방심위에서) 어느 장면의 어떤 부분이 문제라든가 하는 설명이 없었다. (작품들이) 방심의의 심의 대상이 됐다는 문서가 일방적으로 왔고 포털을 통해 작가들에게 전달됐다. 작가들은 영문을 모른 채 이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현재 만화계 분위기는 어떤가.

“아직 발표가 난 것도 아니고 의견서를 제출하라고 한 것만으로도 그 한 달 만에 작가들은 굉장히 혼란에 빠져있다. 차기작이나 작품을 준비하고 있던 사람들은 이 결정이 어떻게 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이번에 만화계에서 유례없이 굉장히 발 빠르게 대응했다. 만화가들은 원래 뭉치지도 않는다. 원래는 무슨 일이 생기면 ‘될 대로 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인데, 이번 일은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기도 하고 이전의 경험들이 축적돼있다 보니 그렇다.”

-이전의 경험이라면?

“예전부터 60·70년대에도 심의와 검열, 만화 탄압들이 계속돼 왔는데 가깝게는 97년 청소년보호법을 제정하면서 만화계에 중점적인 검열이 이뤄졌다. 그때도 학교폭력의 원인이 일본만화라고 하면서 정부가 청보법을 제정했고, 이번 심의의 근거 역시 청보법에 있다. 당시는 성인만화잡지 시장의 르네상스로 불리던 시기이다. 그런데 이 사태를 계기로 출판만화계가 가장 큰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그때의 경험을 했던 만화가들은 알고 있다. 작품의 창작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청소년보호법 하나만으로 성인만화잡지를 전부 폐간했고 만화시장이 반 토막 났다.”

-97년 당시 청소년보호법이 제정된 사회적 배경이 어떤 것이었나?

“97년도와 지금이 똑같은 상황이다. 97년에도 중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문화부가 만화 심의 문제를 들고 나왔다. 그 때도 역시 언론이 계속해서 그 정책에 대해 비호하는 보도를 쏟아냈고 여론을 형성했다. 출판만화계가 침체기로 접어든 직접적 계기로 작용했다. 이번에 ‘방심위심의반대를위한범만화인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에서 연구팀을 결성했다. 이 문제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론을 만들고 대응하기 위한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출판 만화 대신 웹툰이 새로운 콘텐츠로 부상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콘텐츠에 대해 규제가 필요하게 된 것 아닐까.

“물론 규제가 필요하게 되는 시점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서로가 납득할 만한 방법이어야 할 것이다. 재밌는 게 웹툰이 성공한 게 최근 5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된 것은 새로운 작가들이 등장한 요인이 상당히 크다. 성공한 웹툰 작가들은 대부분 기존 출판 만화계와는 다른 새로운 시스템으로 데뷔한 작가들이다. 기존 출판 만화계에서는 흔히 알고 있는 ‘문하생’으로 시작해 선생님 작업을 도와주면서 배우는 도제식 문화였다. 이 같은 작가들은 기존의 심의나 검열 시스템을 통해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웹툰은 누구에게도 만화를 배우지 않은 분들이 곧바로 데뷔했다. 이분들은 심의나 검열을 전혀 경험해본 적이 없다. 웹툰은 심의나 검열로부터 자유로운 매체였고 누구나 기발한 상상력과 표현력만 있으면 창작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독자들은 굉장히 다양한 만화를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발한 상상력이라든가 표현의 자유는 산업적으로 가장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장점이다.”

-웹툰 검열이 구체적으로 작가들과 웹툰이라는 문화 콘텐츠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나?

“기본적으로 심의에 걸린 작품과 동일 장르, 거기에 나온 표현들은 다 사라질 것이다. 작가로서 작품이 청소년 유해물로 지정되는 것은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이다. 자기 작품이 사회적으로 유해물로 지정됐다는 오명이 무의식적으로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한 작품이 유해물로 지정되면 그와 유사한 장르의 작품을 만들려고 했던 모든 작가들이 그 작품을 기준으로 그보다 수위가 낮은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창작가이기도 하지만 이걸로 생계로 하는 전업 작가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특히 신예 작가들은 기성 작가들보다 더 큰 부담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들이 처음으로 펼치려는 상상력을 제한된 틀에 가두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작품이 될 수 없다고 자기검열을 하게 만들면 아예 상상력 자체를 매우 제한하게 된다. 심의에 대한 내성이 없는 작가들이기 때문에 “이건 안 돼, 이건 안 돼”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웹툰에 대한 심의·규제가 어떤 형태를 띠는 게 좋다고 보나.

“개인적으로는 자율 규제가 가장 좋은 형태라고 생각한다. 작가들이나 독자들, 사회적 시선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만들어진 자율 규제 형태일 것. 만약 타율규제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만화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의 기구가 작가들에게 권고하는 형태로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 그 부분에 대한 논의는 올해 국회를 통과한 만화진흥법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또 유럽 등 외국의 경우 자율등급제를 하면서 하나의 장치로 분쟁조정위원회를 둬서 한다는 사례가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방안들을 합리적으로 검토한 후 결정해야 한다.”

-자율적인 제재가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지 않을까.

“대부분의 웹툰 작가들은 독자들이 주는 여러 방식의 피드백을 상당히 받게 된다. 인터넷은 실시간으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독자가 어떤 의견을 전달하면 그것이 작가에게 곧바로 전달된다. 웹툰을 연재해본 작가라면 웹툰의 자정 기능에 대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만약 독자들이 갖고 있는 사회적 통념에 반해서 수위를 넘어서는 작품을 연재하면 거센 반발에 부딪치게 된다. 댓글에서 독자들의 공감대가 하나의 여론을 형성해 작가를 압박하게 된다. 실제로 장기 연재를 하다보면 독자들의 의견에 의해 작품의 이야기라든가 수위를 조정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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