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게이츠 한국강연, 정보통신혁명 온다’ ‘21세기 사이버시티 솟는다’ ‘서류없는 무역시대 성큼’ ‘인터네트 비지니스시대 막올랐다’ 아무렇게나 뒤적여본 일간지의 큼지막한 과학면 머릿기사 제목들이다. 온다, 왔다, 열린다, 솟는다, 개막한다, 변화한다.

이 대단한 구호성 제목들은 오늘도 자연적이어야 할 우리의 아침 식탁 위에 잔뜩 인공의 모습을 한 채 올라와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다그치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은 이토록 변하는 데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 참인가라고. 떠넣은 콩나물 국물에서 아스파라긴산이 날아가고 어느새 입안이 껄껄하다.

‘정보사회’라는 테마를 파는 언론의 상업주의 모습이다. 실례로 창간 몇주년하는 신문사마다 특집호는 예외없이 정보사회 관련기사로 도배 하다시피한다. 신년호 표지는 붉은 태양과 아무개 화백의 휘호대신 지구와 인공위성을 컴퓨터그래픽으로 합성한 환상적인 그림으로 대치된 지 오래다.

그러나 이 찬란한 예찬에서 한발 떨어져 바라 보자. 언론의 ‘주술’들이 실제로 신통한 효력을 발휘하는가에 대한 차분한 고찰이다. 과연 전화선과 컴퓨터만 들여놓으면 그토록 화려한 삶이 바로 지금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가라는 데 대한 의문이다.

가장 피부에 와닿는 예로 컴퓨터를 새로 구입한 사용자들이 경험하는 실망감이다. 도시 가스관처럼 폭발의 위험성은 없으나 접속망의 불완전성은 큰 낭패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더욱 큰 문제는 채널 그 자체가 아니라 그곳에 흐르는 정보의 질이다. 꼭 필요한 공공정보를 접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제공되는 정보의 절대용량, 축적률의 일천함으로 인해 실망하기 일쑤다.

또한 정치, 경제, 사회정보는 태부족인 반면 게시판을 중심으로 하는 연예, 오락정보는 넘쳐난다. 이는 사회부문별 정보화 진척도가 상이해서 발생하는 정보의 불균형일 수도 있으나 통신망 소유 및 운영주체의 상업주의도 한몫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게다가 암묵적인 통신채널의 가치중립성은 언제부턴가 정보의 비정치성을 요구하고 있다.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네트도 그 빛나는 명성만큼 유용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언어의 장벽은 물론 ‘여과되지 않은 정보의 황무지’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그곳에서 유용한 정보를 건져내기란 별따기만큼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나마 칼라사진 한장을 전송 받으려해도 정보고속도로가 아닌 ‘정보 비포장길’ 수준인 국내실정에선 반나절이 족히 소요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기술적 한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멀티미디어시대를 맞이하면서 소프트웨어 산업의 절대적 열세를 면치못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통신기술의 하드웨어 투자에만 매달리다 보면 ‘길닦아서 남주는 꼴’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보전쟁이 문화전쟁을 일컬음이라면 한국영화역사 75년에 단 15%의 국내시장 점유율로 무수한 ‘할리우드 키드’라는 불행아를 양상하는 체제에서는 소위 정보종속, 문화종속의 위험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이 사회구조적 진보를 도모할 것이라는 예측은 섣부르다. 일부 미래학자나 신화의 맹목적 추종자들은 자본주의라는 ‘정보외적 강제’를 애써 무시하려 든다. 그들은 정보사회를 세상의 온갖 사회적 악습과 폐단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 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자기를 확대재생산하려는 자본의 탐욕스런 욕망은 공룡처럼 자기를 부풀려만 간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디어산업의 합종연횡, ‘적과의 동침’은 가히 돈의 핵전쟁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공룡은 귀여운 만화영화 ‘둘리’의 모습으로만 보일 뿐이다. 자본이 커질수록 억압구조는 보다 교묘화, 공고화될 것이다. (실제로 스필버그가 운영하는 그렘린 영화사의 주당 노동 80시간이라는 살인적 노동강도가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신화를 벗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클리퍼드 스콜은 그의 저서 <실리콘, 엉터리약>에서 PC통신에서의 대화방이 커피향과 친구의 다정한 음성을 대신할 수 없고 컴퓨터음악이 연주회가 주는 감동을 가져다 줄 수 없는 것처럼 맹목적인 정보통신 순종은 인간소외만을 심화시킬 거라고 경고하고 있다. 인류사적으로도 신화탐닉은 언제나 비싼 대가를 요구해왔다는 점을 이번에도 잊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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