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청소년들의 도용 방지를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성인인증 방식을 금지하고 대신 아이핀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행정안전부와 방송통신위원회, 여성가족부는 16일 총리 주재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청소년 음란물 차단 대책을 보고하는 자리에게 이같은 대책을 발표하고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을 개정하기로 했다.

문제는 아이핀 제도가 청소년 도용을 막는 데 실효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개인 정보 유출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잇따르는 등 인터넷 실명제의 폐해가 커지고, 실명 인증이 필요 없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확대되면서 사실상 인터넷 실명제가 실효성을 잃었다고 판단해 아이핀 제도를 대안으로 고민해왔다. 하지만 아이핀 제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편의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개인정보가 더욱 한쪽으로 집적돼 유출사고가 날 경우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돼 반대 여론이 많은 상황이다.

아이핀은 주민번호를 대신한 인터넷 상의 가상 주민번호라고 하지만 아이핀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역시 주민번호 등의 정보를 5곳의 신용평가사에게 제공해야 한다. 아이핀 제도가 활성화되면 오히려 주민등록번호가 소수의 신용평가사에게 집중돼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아이핀 발급 기관에는 개인 사이트 방문 경로까지 저장이 되기 때문에 주민번호 이외의 또다른 개인정보가 유출될 위험성도 크다.

시민사회가 이번 정부의 아이핀 제도 전면 도입 방침에 대해 청소년 보호라는 명분을 미끼로 반대 여론을 불식시키자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보는 이유다.

정민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정부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핀 제도로 유도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불편하기도 하고 소수의 민간회사에 주민번호가 집적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개인 정보 유출 문제가 오히려 심각해질 수 있어 반대 여론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민경 활동가는 "정부가 아이핀 제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반대의 목소리가 클 것을 우려해 청소년 보호를 명분으로 해서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도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주민등록번호 사용을 제한하고 아이핀 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히자 "최근 스마트폰에는 단말 위치와 같은 민감한 정보가 들어가 있는데 통신 서비스 실명제를 기반으로 하는 아이핀 제도는 프라이버시 침해의 최대 해악 요소"라며 "통신서비스 실명제는 법적 근거도 없고 채권 추심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이런 제도는 개인정보 유출에 더 큰 위험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민번호 성인 인증 방식 대신 아이핀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도 청소년들의 도용을 방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미 부모의 주민등록번호 등 정보를 알고 있는 청소년이 아이핀 번호를 발급받는 절차만 밟으면 되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어떤 콘텐츠를 보기 위해 일일이 인증 여부를 확인해야 할 경우 콘텐츠 유통 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이용자들의 불편도 예상된다. 정부는 아이핀 제도를 포함해 휴대폰이나 신용카드, 공인인증서 등을 이용해 본인 여부를 확인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정아무개씨(37)는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지만 이렇게 절차를 복잡하게 해 놓으면 누가 불편을 감수하고 인터넷 콘텐츠를 보겠느냐"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아이핀 제도 전면 도입 이외에 정부는 스마트폰 등 스마트 기기는 통신사 등과 공동으로 음란물 차단 프로그램을 제작·보급하도록 하고, 청소년이 스마트폰 가입을 할 때는 전용 가입계약서(그린 계약서)을 통해 음란물 차단수단 사전 고지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린 계약서'의 경우 청소년들의 인터넷 이용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또한 웹하드 업체에 음란물 차단기술을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강제하기로 하고, 오는 5월부터 정부가 직접 온라인 유통 음란물에 대한 모니터 및 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정민경 활동가는 "청소년 음란 차단 대책으로 세계적으로 필터링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정부가 강제적으로 필터링 제도를 의무화를 하는 곳은 없다"며 "효과적인 필터링을 계발해 사용을 권장하는 것은 좋지만 강제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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