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로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시절, 시민들의 발길이 광화문 청계천을 벗어나 여의도로 향한 적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언론장악 시나리오를 본격적으로 전개해 나갈 때였다. 시민들은 마봉춘(MBC), 고봉순(KBS), 윤택남(YTN)이란 애칭으로 언론에 애정을 드러냈고 MBC와 YTN의 파업 등 언론인들도 저항으로 이에 화답했다.

하지만 정권 초기 서슬 퍼런 정권과 사측의 탄압에 이들의 저항은 우르르 무너졌다. MBC는 몇 차례나 파업에 나섰으나 큰 성과를 내지 못했고 가장 먼저 저항에 나선 YTN은 노종면 노조위원장 등 6명이 해고당하며 엎어졌다. 이후는 그야말로 ‘암흑의 시대’였다. 정권의 목소리가 전파를 탔고 신문지면과 포털을 장식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은 성공했고 국민들은 쏟았던 애정만큼 냉소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12년 다시 언론인들이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권초기 벌어진 파업과 정권 말기를 맞은 현재의 파업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보인다. 무엇이 달라졌으며 어떻게 달라졌을까?

▷많아졌다= 일단 그동안에 비해 2012년 파업에 나선 언론의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전선이 확산되고 있다. 우선 MBC가 들고 일어나자 KBS와 YTN이 연쇄파업에 돌입했으며 연합뉴스도 파업 찬반투표에서 파업이 가결됐다.

이에 앞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정수장학회에 맞서 부산일보도 싸움을 시작했다. 최대 교회를 장악하고 있는 조용기 순복음교회 원로목사 일가에 맞선 국민일보의 싸움은 이미 지난해부터 시작해 80일을 넘겼다.

언론의 수도 그렇지만 내부 참가자들도 늘었다. MBC는 보직간부들과 드라마PD들까지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대열에 합류하고 나섰다. MBC는 파업 이후 점차 참가자들의 수가 느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도 파업 찬반투표에 돌입하면서 조합원이 100여명 넘게 늘었다.

강성남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에 대해 “이번 파업은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 폐해가 터진 것”이라며 “그동안 산발적으로 저항하고 문제를 지적했지만 이들은 법을 악용하면서 각 언론사 내부를 철저하게 장악해 갔다”고 말했다. 이어 “그 폐해가 개선 없이 심화되는 상황과 정권 말기에 정권 재창출 음모까지 겹치며 언론 종사자들이 참지 못하고 들고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독해졌다= MBC노조는 지난 1월 30일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김재철 사장이 물러날 때 까지 벌이는 끝장파업”임을 선언했다. 정영하 위원장은 “MBC는 ‘MB씨’의 MBC가 됐다”며 “김재철이 나가지 않는 한 이 멍에와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싸움이 끝을 보는 투쟁이고 퇴로가 없는 싸움”이라며 “이번 투쟁을 통해서 MBC를 반드시 국민의 품으로 되돌려 놓겠다”고 다짐했다.

YTN도 배석규 사장의 퇴진을 전면에 내걸었고 연합뉴스도 박정찬 사장의 연임저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국민일보도 최근 조민제 사장이 신문법을 위반했다며 조민제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각각 사측 최고 책임자의 진퇴를 내건 끝장투쟁이다. 퇴로도 없고 협상의 여지도 없어 보인다.

왜 이렇게 독해졌을까?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은 “정권 초기는 그 속성을 제대로 알기 힘들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상식적인 요구가 반영될 것이라 생각하고 목소리를 냈다”며 “그것이 벽에 부딪히며 상당한 시간을 보냈고 특히 언론이 장악되고 통제받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내부에서는 인사 징계 보복을 당하고 시청자들에게는 외면과 비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 일상적인 요구와 어지간한 수준의 싸움으로는 우리가 요구하는 언론의 자유 확보와 독립성 보장을 이뤄낼 수 없다는 인식하에 이번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며 “독하게 싸워야 끝낼 수 있고, 반드시 끝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 전 위원장은 “정권이 1년 남았다고 하지만 실제로 1년을 싸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며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이고 결과에 대한 각오도 정권 초기 보다는 두터워졌을 것이고, 싸움에 임하는 상대를 바라보는 인식도 달라져 있다”고 설명했다.

▷다양해졌다= 언론사에서 파업이 발생하면 그 정당성을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통로가 부족해진다. 아고라와 유튜브를 통해 파업 상황을 알렸지만 최근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팟케스트가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이 “이제 우리에겐 뉴스타파라는 신무기가 있다”고 말할 정도다.

YTN과 MBC 등 해직 노동자들이 만드는 뉴스타파는 매주 금요일 업로드 할 때 마다 수십만이 보고 있다. 뉴스타파 2회는 57만여명이 봤으며 최근 업로드된 7회 강정특집 2탄은 3일 만에 10만 가까이 영상을 재생했다. 이는 유튜브 기준이며 팟케스트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욱 올라갈 수 있다.

MBC 노조가 제작하는 제대로 뉴스데스크도 김재철 사장의 법인카드 내역을 공개하는 등 병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제대로 뉴스데스크도 2회가 30만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한데 이어 10만을 전후한 시청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KBS 새노조도 최근 비슷한 내용의 ‘리셋 뉴스9’를 방송할 예정이다.

노종면 전 위원장은 “지난 3~4년 동안의 모순이 파업의 형태로도 나오고 뉴스타파 등의 제작 형태로도 나오는 것”이라며 “예전에는 우리 매체를 지키기 위해서 언론인들이 나섰다면 지금은 이미 장악되어 있는 언론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고, 이를 통해 기존 매체를 다시 제자리로 돌리고 진보시키겠다는 의지가 드러난 것”이라고 밝혔다.

강성남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그동안의 언론사 파업이 미디어법 개악 저지 등 어떻게 보면 언론계 내의 문제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현재의 언론노조의 파업의 기조는 엄격하게 말하자면 이명박 정권에 대한 공격”이라며 “사회 전반적인 이명박 정부 심판 분위기에서 언론 노동자들도 들고 일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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