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와 싸우고서 바람 필 때 다른 여자와 입맞추고 담배 필 때"(노래 아메리카노)

"아주 가끔 니 생각이 나서 슬퍼지려 하면 친구들과 술 한잔 정신 없이 취하련다 다 잊게"(노래 밥만 잘 먹더라)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된 인디그룹 10㎝의 '아메리카노'와 옴므의 '밥만 잘 먹더라'를 방송에 내보냈다는 이유로 라디오 프로그램이 방송심의위원회로부터 제재 조치를 받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 산하 방송소위원회는 14일 회의를 열어 해당 노래를 튼 MBC-AM <조영남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와 CBS-AM <이명희 박재홍의 싱싱싱 1부>에 대해 행정지도인 의견 제시 조치를 결정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2001년 8월 두 노래에 나오는 '담배', '바람필 때 다른 여자와 입맞추고', '술' 등의 가사가 '유해약물'과 '불건전 교제'에 해당된다며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한 바 있다.

당시 여성가족부의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 결정은 시대 상황을 무시한 80년대식 결정이라는 비난을 받는 등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또한 음반 제작사가 여성가족부의 결정에 반발, 소송을 제기해 '술과 담배는 청소년들에게 허용된 문학작품과 대중예술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어 유해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판결을 받아 승소하는 등 이미 법적으로도 실효성을 잃은 상황이다.

하지만 방송소위원회는 정부 기관이 법에 따라 이미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되고 청소년보호시간대에 방송한 이상 방송심의규정에 따라 제재는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징계에 적용된 방송심의규정은 제33조(준법정신의 고취)와 44조(수용수준) 제2항으로 방송은 제작・편성에 있어 관계법령을 준수하고 시청자의 준법정신을 고취하며 위법행위를 고무 또는 방조하여서는 안되며 어린이 및 청소년 시청보호시간대에는 시청대상자의 정서 발달과정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방송소위원회에서는 법을 따라야 하는 집행기구라고 하더라도 잘못된 법 적용에 대해서는 정부 기관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는 의견과 '악법도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했다.

김택곤 위원은 "어이없는 여성가족부의 결정에 대해 질질 끌려갈 문제가 아니다. 우리 위원회가 여성가족부에 과도한 제재이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의견 보고서를 보내야 한다"며 의결 보류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권혁부 소위 위원장은 "여성가족부가 결정한 사안에 대해 타당한지 여부를 논의하는 것은 권한 밖의 일"이라며 제재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권 위원장은 두 노래 가사를 읊은 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따라 부르고 즐겨 부르는 가사 치고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논란이 일자 방송소위원회는 이번 안건에 대해서는 제재 조치를 결정하는 대신 추후 전체회의를 열어 여성가족부의 청소년유해매체물 결정 사안에 대해 이견을 제시할지 여부를 논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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