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토요일 오전 이 아무개씨(34)는 무심코 TV 채널을 돌리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무려 세 개의 종합편성채널에서 강아지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동시에 방영되고 있었던 것. 이씨는 동물 애호가이긴 하지만 세 개 채널의 프로그램 모두 어디선가 본 듯한 소재와 포맷 때문에 다른 채널로 눈을 돌렸다.

종합편성채널이 강아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편성하고 있다. 동물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의 경우 고정층의 시청률 패턴이 나타난다는 것이 정설이다. 0.1%대 시청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종편 입장에서는 애완동물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고정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하지만 해당 프로그램이 거의 비슷하고 하루 같은 프로그램을 여러 번 방영하는 행태로 나타나고 있어 오히려 시청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현재 종편 중 애완동물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은 채널 A의 <너는 내 운명>, TV 조선의 <동고동락>, MBN의 <기막힌 동물원>  등이다.

채널 A는 "드라마보다 재미있는 인간과 동물의 운명적인 스토리로 매일 저녁 시청자들에게 삶의 위안이 되는 감동을 삶의 활력을 주는 재미를 선사하고자 한다"면서 <너는 내 운명>의 프로그램 편성 취지를 설명했다.  

<너는 내 운명>은 특별한 사연을 가진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일상생활을 5부작으로 나눠 그리고 있는데,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KBS1 <인간극장>의 내레이션을 차용하고 애완동물을 소재로 삼은 것뿐이라는 혹독한 평가를 나왔다.

<너는 내 운명> 제작진은 홈페이지를 통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저녁 7시 20분에 본방을, 토요일 오전 11시에는 스폐셜로 편성해 방영한다고 밝혔지만 실제 월요일에는 새벽, 오후, 저녁 시간대 세 번에 걸쳐 재방송과 본방송을 편성하고, 수요일 역시 재방송과 본방송을 두 번에 걸쳐 편성해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TV 조선의 <동고동락>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록그룹 백두산의 멤버들이 '백두산'이라는 강아지를 키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이외 <동고동락>은 화제가 되고 있는 애완동물을 소개하고, 개그맨 지상렬이 스타의 집을 방문해 '스타애견상담소'라는 이름으로 반려동물로 인한 고민을 해결해준다.

시청자들은 하지만 기존 지상파 방송에서 본 소재를 가지고 재탕을 하고, 화면의 질이 떨어지는 UCC 화면을 끌어다 쓰고 있다며 프로그램의 질이 낮다는 평을 내리고 있다.

TV 조선의 <동고동락> 역시 월요일 베스트 장면으로 오전,  오후 두 번에 걸쳐 내보내고, 금요일에는 두 번의 재방송과 본방을 내보내고 있다.

MBN의 <기막힌 동물원>은 탤런트 김정민과 개그맨 양세형이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들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제작진은 "지금까지 이런 프로그램은 없었다. 동물과 인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신개념 동물 버라이어티쇼"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방영 초기 한 시청자가 <기막힌 동물원> 게시판에 '동물학대 프로그램인가요'라는 제목으로 출연진들이 반려동물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등 기대 이하의 내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 프로그램의 시청률 역시 기대와 달리 일일평균 시청률에도 못 미치고 있다. 지난 3일 채널 A <너는 내 운명> 스폐셜 편은 전국 단위 가구 시청률로 0.384%를 기록하면서 일일평균 0.490%에 미치지 못했다. 4일 MBN <기막힌 동물원> 재방송편도 0.243%를 기록, 일일평균 0.404%에 한참 뒤떨어졌고, 5일 TV 조선 <동고동락> 베스트 재방송편은 0.290%를 기록해 일일평균 0.403%를 넘지 못했다. 

이에 반해 지난 2001년부터 현재까지 방영되고 있는 SBS < TV 동물농장>의 경우 꾸준히 10%대 시청률을 유지하면서 장수 프로그램으로서 사랑을 받고 있다.

지상파 관계자는 "동물과 아이들이 주인공인 프로그램인 경우 기본 시청률이 나오기 때문에 매력적인 소재이기는 하지만 단기간 내에 기획력만 믿고 접근했을 때는 실패하기 쉽다"며 "투자한 만큼 되돌아오는 것이 동물 프로그램이다. 동물에 대한 애정과 인내력을 가지고 장기 프로그램으로 접근해야할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동물농장>은 긴 시간으로 기획된 아이템 촬영분을 찍어놨다가 때가 됐을 때 방송에 내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동물이라는 소재는 차용하기는 쉬워도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긴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면, 또다른 지상파 관계자는 “차별성 있게 기획을 하려고 열심히 준비한 측면이 엿보인다. 단기간 내에 평가하기는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이윤소 활동가는 "종편 프로그램보다 케이블 방송의 인기있는 다른 프로그램이 훨씬 신선하다고 느낄 정도"라며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급하게 개국하면서 초반에 영화 재방송으로 편성을 메꾸는 행태가 나타났는데, 동물 프로그램 역시 종편 출범 초기 시행착오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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