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항쟁의 불길이 얼음장 같던 한국현대사의 한복판을 뚫고 치솟아 오른지 벌써 15년이 흘렀다. 15년이면 강산이 뒤바뀌고도 남을만한 시간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누구도 소리높여 광주항쟁의 비극과 참상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80년 5월 광주는 이제 살아있는 현실이 아니라 잊혀져가는 역사의 유산이 돼 버린 느낌이다. 하지만 진정 광주가 생생한 현실이 아니라 잊혀진 과거뿐인가. 정말 그런가.

한편으로 살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금기의 대상이던 광주의 망월묘역은 국가차원의 성지가 됐다. 일부 학생들의 반발로 이뤄지진 못했지만 대통령이 몸소 광주묘역을 두번이나 찾으려 했다. 이것을 보면 광주묘역은 더이상 운동권이나 찾는 요람이 아니라 역사적 유적지가 된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고 마땅하다.

뿐만 아니라 올해초에는 ‘모래시계’라는 TV드라마를 통해 당시의 기억이 충격과 감동으로 재생되기도 했다. 유례를 찾기힘든 시청률을 기록하며 온나라에 광주열풍이 불어 닥치기도 했다. ‘모래시계’를 보면서 내게 든 느낌은 단 한가지였다. 아직도 광주는 우리에게 슬픔과 감동이 식지 않은 휴화산이고 용암덩어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근자에 5·18행사를 놓고 벌어지는 일을 보면 아직도 우리에게 남긴 숙제중 어느것도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중 하나가 오는 5월18일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열리는 광주민중항쟁 15주기 추모식 행사의 전국 생중계가 올해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겨우 광주지역에서만 방송한다고 한다.

국가적 성역이니 기념사업이니 생색을 낼때는 언제고 정작 국민이 바라는 일은 왜 하지 않는 것일까. 무엇이 겁나고 두려운 것인가. 이 문민정부 아래서 말이다. 개혁이니 세계화니 요란벅적한 것들도 이런 일조차 이뤄지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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