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11일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직후 방사능 물질(방사능물질)이 한반도로 유입될 수 있다는 국립환경과학원의 실험결과가 나왔는데도 국가정보원이 이 결과의 발표를 막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환경과학원과 국정원은 사실이 아니며, 법적 대응도 준비한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환경과학원은 실험한 사실을 시인했으며, 지난해 기상청과 원자력안전기술원, 각종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주장했던 ‘탁월한 편서풍에 따른 방사능 유입불가’론과 달리 시점과 방향에 따라 유입가능성을 전혀 배제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대기권에는 편서풍만 분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 ‘편서풍 만능론’은 결국 거짓임이 드러난 것이다.

한겨레는 8일자 1면 머리기사에서 환경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빌어 “지난해 3월 국립환경과학원이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의 확산 경로를 모델링해 보니, 저농도이지만 한반도로 날아오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사실을 알게 된 국가정보원에서 대외비로 하라고 해서 모델링 결과를 폐기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환경과학원이 모델링을 통해 얻은 값은 (방사성 물질이 한반도에 일부 온다는) 노르웨이 대기연구소의 분석 결과와 비슷했다”며 “환경과학원의 주 업무는 아니었지만 나중에 요청이 올 수 있어서 자체적으로 모델링을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 고위관계자는 “기상청이 한반도에는 방사성 물질이 전혀 오지 않는다고 한 것은 정부 부처로서 적절한 대응은 아니었다고 본다”며 “‘저농도 방사능은 오지만 엑스선 사진을 찍은 것과 마찬가지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정도’라고 했어야 했다…이런 태도 때문에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국립환경과학원은 방사능 유입경로에 대한 실험을 한 사실을 시인했으나 국정원의 요구를 받은 것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이석조 환경과학원 기후대기연구부장은 8일 오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내부적으로 환경부 차원에서 모델링을 해보자는 의미에서 실시한 것”이라며 “모델링할 때 후쿠시마 유출 방사능량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체르노빌 원전사고 때의 배출량을 기준값으로 넣어 조사했다”고 밝혔다.

이 부장은 “당시 우리의 조사도 기상청과 같이 후쿠시마 폭발 방식의 기상상황으로 볼 때 국내로 이동할 수 없는 기상패턴이었다”면서도 “다만 시기적으로 여름일 경우나 남동풍 기류로 바뀔 때 국내로 올 수도 있다. 우리 쪽으로 불어올 때 들어올 수 있다”고 밝혔다.

기상청을 비롯한 우리 정부는 지난해 당시 시종일관 한국과 일본 사이의 대기에서는 탁월한 편서풍이 불기 때문에 절대 방사능이 한국에 유입될 수 없다고 주장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는 판단이다. 1.5~10km 상공엔 편서풍이 안정적으로 불지만, 그 아래쪽 대기 중엔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바뀐다는 주요 사실을 과학원은 배제하지 않은 것이다. 이 부장은 “설사 우리나라로 바람이 불어오는 패턴이 있다 해도 다른 기상요소에 따라 올 수도 있고, 안올 수도 있다. 그 시점에 가서 조사해봐야 정확하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우리 조사는 방사능이 우리에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지만, 1년 365일 바람의 방향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는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KBS는 지난해 3월 26일 방송된 <뉴스광장>에서 국립환경과학원이 내놓은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확산 모델을 유일하게 보도했었다. 편서풍이 부는데도 후쿠시마보다 서쪽에 있는 도쿄에서 방사능 오염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 KBS는 “지표에서 1.5~10km 상공에는 편서풍 영향으로 바람이 동쪽으로 불지만, 지표에서 1.5km 이내에는 대기 순환 영향으로 동풍이나, 북풍이 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송창근 국립환경과학원 기후대기연구부 박사는 “도쿄에서 관측되는 높은 방사능 수치는 (지상풍의) 국지적인 순환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역시 지상층(낮은 대기)에서 부는 바람의 방향을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편서풍 만능론’은 정부와 기상청의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수준임이 입증된 셈이다.

그러나 국정원이 이 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하지 말라고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환경과학원과 국정원 모두 강하게 부인했다. 이석조 기후대기연부장은 “국정원의 연락이나 요구도 없었고, 폐기하라 말라고 얘기했다는 것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국정원 관계자도 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보고서의 존재사실도 몰랐고, 우리가 관여할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어제도 이런 사실을 충분히 설명했다”며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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