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5년차, 19대 총선을 앞두고 MBC와 KBS 등 공영방송을 비롯해 YTN, 연합뉴스, 서울신문 등 언론인들의 집단저항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권력의 나팔수라는 비난을 받아왔던 언론인들이 뒤늦게나마 뼈아픈 반성과 함께 언론 독립과 공정성 확보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퇴진을 요구받고 있는 김재철 MBC 사장 등이 쉽게 물러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언론인들의 저항도 그 어느 때 못지 않게 결연합니다. 이와 관련 동아투위 출신의 김종철 전 연합뉴스 사장이 미디어오늘에 기고를 보내왔습니다. <편집자주>


지금 한국 언론계에서는 사상 유례 없는 격동이 일어나고 있다. MBC, KBS, YTN이 함께 벌이고 있는 파업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혼란’으로 몰아붙이고 싶은 세력은 ‘방송 대란’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겠지만, 나는 ‘방송 항쟁’이라는 용어가 적절하다고 믿는다.

방송 항쟁의 불씨를 지핀 주체는 MBC 기자회(회장 박성호)였다. 이명박 정권의 부정과 비리를 시청자들에게 알리지 않거나 축소·왜곡하는 보도를 양산해내는 뉴스책임자의 사퇴를 촉구하던 기자회는 갈수록 뉴스가 먹칠을 더해가자 지난 1월 25일 새벽 6시부터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제작거부는 기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강경한 수단이다. 카메라기자 모임인 MBC 영상기자회(회장 양동암)까지 합세한 제작거부에 참여한 사람은 150명이나 되었다. 그래서 그 방송사는 제대로 된 뉴스를 내보낼 수가 없었다.

2월 29일에는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 소속 18개 지역 지부들이 성명을 통해 ‘시청자들과 국민의 열망, 그리고 조합원들의 의지를 한 데 모아 공영방송 MBC의 정상화를 위한 김재철 퇴진 투쟁을 할 것’이라며 무기한 파업을 선언했다

경영진은 파국이나 다름없는 비상사태를 맞아 'MBC' 이름으로 한 일간신문 1쪽에 ‘5단통’으로 광고(‘문화방송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를 냈다.  MBC는 그 광고문에서 ‘<해를 품은 달>과 <빛과 그림자> 등 드라마 시청률이 고공행진하고 있어 시청자들에게 감사하다’고 말머리를 열면서 ‘노동조합은 문화방송의 경영진이 보내준 인내와 관용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MB(명박)씨의 낙하산’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김재철 사장은 ‘공영방송’을 ‘관영화한 상업방송’으로 전락시킨 책임자로서 사퇴하거나 사과하기는커녕 보복인사로 응수했다. 박성호 기자회장을 해고하고 양동암 영상기자회장에게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가한 것을 시작으로, 노조 홍보국장 이용마 기자를 해고하는가 하면 보직을 사퇴하고 ‘파업 동참’을 선언한 주말 뉴스데스크 최일구 앵커와 보직간부, 노조간부 7명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기자들이 불을 지핀 MBC의 방송민주화 운동이 거사적인 ‘항쟁’으로 치솟은 것은 간부사원과 중견 기자들, 그리고 해외 특파원들이 합세했기 때문이다. 파업 23일째인 2월 23일, 입사한 지 20년이 지난 간부사원 135명이 자기 이름을 걸고 김재철 사장 사퇴를 요구했고, 3월 4일에는 해외특파원 7명이 ‘김재철 사장은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언론 생태계’의 속성에 비추어 볼 때, ‘혜택 받은 자리’ 또는 ‘양지’에서 일하는 중견 언론인들이 노동조합의 파업에 공개적으로 합류하는 현상은 극히 드문 일이다. 일찍이 1974년 10월 동아일보사에서 시작된 ‘자유언론실천운동’, 그 뒤를 이은 조선·한국일보의 투쟁, 그리고 1980년 전두환 일파의 ‘광주 항쟁 유혈 진압’ 직후 전국의 여러 언론사들에서 벌어진 평기자들의 자유언론운동에 소수의 간부사원들이 합세한 사례가 있었을 뿐이다.

김재철 사장이 ‘시청률 고공행진’의 대표적 사례로 내세우던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책임피디와 연출자들이 마지막 부분인 19~20회 촬영을 거부하면서 파업에 동참한 사건은 그에게 결정타나 다름없었다. 시청률 40%를 넘어선 ‘국민 드라마’라고 자랑하던 작품이 결정적 대목에서 불방되고 ‘스페셜편’으로 땜질을 했으니 시청자들은 MBC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명확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김재철 사장이 ‘야심작’으로 내세운 드라마 <무신>, 일일연속극 <오늘만 같아라>, 주말드라마 <신들의 만찬>의 피디들까지 파업에 가세함으로서 MBC는 ‘식물방송’이 되기 직전에 이르렀다.

MBC는 물론이고 방송계 전체에서 가장 인기 높은 예능프로그램으로 꼽히는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가 한겨레에서 조국 교수와 한 인터뷰를 통해 밝힌 파업 동참 이유는 방송 항쟁의 동력이 무엇인지를 선명히 보여준다.

“예능 피디들은 논리적으로 이게 이렇고, 저게 저렇고 하나하나 따지고 계산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저도 그렇고요. 이성이나 논리에서는 상당히 약하죠. 대신 감성이나 가슴이 발달한 사람들이 많아요. 프로그램을 만들 때도 치밀한 계산이나 구성으로 시청자들을 유혹하여 보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포인트 하나가 시청자들과 소통이 되면 그걸로 끌고 간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능 피디의 파업 참여도 가슴이 울었기 때문입니다.”

방송 항쟁의 불길은 MBC에서 KBS로 번졌다. 황동진 한국방송 기자협회 회장은 3월 1일 ‘뉴스 공정성이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고 판단하는 기자들 개개인의 양심에 따라 제작거부에 들어가기로 했다. 회사 징계를 감수하고라도 참여하겠다는 열기가 높다’고 밝혔다. KBS 기자들은 새노조 집행부 13명에 대한 ‘부당징계 철회’와 이화섭 보도본부장 임명 취소를 요구해왔다.

KBS 새노조는 3월 6일 오전 5시부터 ‘공정방송 복원, 김인규 사장 퇴진, 노조 징계 철회’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시작했다. 새노조는 ‘지난 4년간 KBS라는 이름을 말하기에도 부끄럽기만 했다’면서 ‘사죄해도 그 죄가 씻어지진 않겠지만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이 길을 나섭니다’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제 파업입니다. 지난 4년 저희는 철저하게 무기력했습니다. 더 이상 망가질 것도 없습니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김인규 집에 갈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Reset KBS! 국민만이 주인!”

KBS 최경영 기자가 트위터에 올린 글은 총파업의 목적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KBS 3월 6일 파업은 수십 년 묵은 국영방송의 잔재를 털어내는 봄 청소. 내부의 쥐새끼, 진드기들이 완전히 박멸될 때까지 철저히 씻어내야 한다. 지난한 싸움의 시작이다. 김인규 퇴진은 그래서 내부 개혁의 첫 단추일 뿐.”

1979년에 입사한 KBS 6기 피디 6명을 비롯해서 입사 25년째를 넘은 피디 44명은 3월 5일 성명에서 ‘지난 4년간 기자와 피디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떨치고 일어나 좋은 뉴스와 프로그램으로 국민들에게 다가서려는 처절한 몸부림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KBS에서는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뉴스와 프로그램은 사라지고 일방적으로 정권을 홍보하는 관제 프로그램들이 넘쳐났다. 여기에 도청 의혹에 이르기까지 안팎으로 만신창이가 된 KBS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럽다.”

그들은 최근 방송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외면하는 KBS 경영진에 대해 경고를 보냈다.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뉴스타파> 등이 상징하듯이 2012년 올해 한 해 혁신과 변화, 새로운 가치에 대한 폭발적인 국민들의 욕구와 목소리를 우리의 뉴스와 프로그램에 담아내지 못한다면 더 이상 공영방송 KBS는 존재할 수 없다.”

YTN은 이명박 정권의 언론 탄압과 방송사에 대한 ‘낙하산 인사’에 맞서 한국언론사상 가장 긴 투쟁을 벌여왔다. 2008년 5월 29일 YTN 이사회가 이른바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에 속한 이명박 대선캠프 언론특보 출신의 구본홍 씨를 사장 후보로 추천하자 노동조합은 ‘낙하산 사장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출근 저지 투쟁을 시작했다. 그러자 회사는 10월 6일, 노종면 노조위원장 등 6명을 해고하고 다른 6명을 중징계 했다. 2010년 3월 11일, 서울고등법원 민사 15부는 YTN 해직기자 6명이 낸 징계무효소송에 대해 ‘전원 해고 무효’라는 1심 판결(2009년 11월 13일)을 뒤엎고 노종면 등 3명의 해고는 정당하다고 선고했다.

2009년 10월 9일 YTN 이사회가 배석규 사장 직무대행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하자 노조는 다시 ‘낙하산 사장 반대’ 운동을 펼쳤다. 그렇게 계속된 YTN의 ‘공정방송 투쟁’은 2012년 3월 8일로 1746일째를 맞이했다. 2008년과 2009년의 파업 이후 세 번째 파업을 벌이기로 한 YTN 노조는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사장 자격이 없는 사람이 연임을 하려고 한다. 연임을 결정하는 주주총회가 내달 9일이어서 일단 연임 저지가 급선무다. 현 배석규 사장은 ‘편 가르기’ 인사를 일삼았고,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며 보도를 통제했으며 노조의 주장은 무조건 반대했다. 임단협 승리 쟁취 못지않게 조합원들에게 절실한 문제는 해직자 복직이다. 그러나 배 사장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노조는 배석규 사장이 상징하는 구악(舊惡)을 청산할 생각이다. 배 사장은 YTN이 케이블 시청률 1위라고 하면서 불공정 보도를 반복하고 있다. 배 사장은 2009년 취임하자마자 보도국장 추천제를 일방적으로 폐기했다. 그 자체로 이미 공정방송의 틀이 무너졌다. 이후 편파보도가 쏟아졌다. 2011년 초에는 박원순 인터뷰가 불방됐고, 최근엔 BBK 관련 아이템이 못 나갔다. 정권에 불리한 보도는 계속 보류됐다.”

MBC와 KBS 경영진이 총파업에 대응하는 태도는 ‘관영화한 상업방송’의 본질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MBC 김재철 사장은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출석 요구에 불응한 채 특급호텔을 전전하면서 장기간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3월 6일 노조가 ‘법인카드로 7억여 원을 남용한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그를 고발하기 하루 전에 그는 총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노조 집행부 10명을 상대로 3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서울남부지법에 제기했다. 그가 법인카드로 사들인 ‘명품들’ 가운데 여성용이 많고, 7억여 원의 용도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에 대해 MBC는 2월 27일 ‘특보’를 통해 ‘전임 사장 시절 22억 원에 그쳤던 협찬액이 114억 원으로 늘어난 것은 김 사장이 열심히 법인카드로 결제한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김재철 사장은 제작과 편성 체제가 공백 상태가 되다시피 한 거대조직 MBC를 계약직과 신입사원으로 채우려고 하고 있으나 그런 방법으로 방송을 정상화하기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KBS의 김인규 사장은 새노조의 파업에 대해 ‘이명박식 저지 전술’을 사용했다. 3월 6일 새노조가 본관 앞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려고 하자 회사쪽은 본관 계단 앞을 대형버스 4대로 이루어진 ‘차벽’으로 막고 청원경찰을 배치했다. 그리고 유서 깊은 집회장인 ‘민주광장’ 출입구의 셔터를 내려 출입을 통제했다. 한 언론인은 트위터를 통해, 2008년 6월 초 광우병 미국 쇠고기 반대 촛불 시위 때 광화문 네거리 등에 쌓였던 ‘명박산성’에 비유해서 KBS의 차벽을 ‘인규산성’이라고 불렀다.

나는 2012년 초에 터진 ‘방송 항쟁’이 한국 언론에 혁신적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까닭을 자세히 짚어보자.

이번에 방송인들이 떨쳐 일어난 동기는 ‘자유언론 실천’, ‘언론인의 자주성과 존엄성 회복’, ‘부당한 권력의 하수인인 경영진 청산’이라고 본다. 그리고 ‘SNS(사회관계망서비스)가 대표하는 새로운 미디어 유통방식에 적응하지 못한 채 언론소비대중을 낡은 시대의 패러다임과 독선적인 경영방식으로 속이려 드는 보수적 매체에 대해 방송인들이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든 것이다.

나는 MBC와 KBS, YTN의 노동조합이 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사적인 항쟁을 펼치는 것을 보면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될는지 궁금하다. ‘만약 그들이 싸우다 지쳐서 무기력하게 투항하고 일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렇게 되지는 않으리라고 예상한다.

그 이유를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내가 직접 겪은 ‘동아일보사 자유언론실천 운동(1974년 10월~1975년 3월)’과 오늘의 방송 항쟁을 비교해 보자. ‘10·24 자유언론실천 선언’에서 비롯된 그 운동은 박정희 유신독재체제를 최대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동아일보사의 기자, 피디, 아나운서, 기술직사원들이 긴급조치가 시퍼렇게 살아 있던 시기, 누구라도 정보기관에 잡혀가서 고문을 당한 뒤 재판에서 극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던 철권정치 시대에 과감하게 그 운동을 추진했는데도 박 정권이 무력으로 대응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민중의 열화 같은 ‘격려광고’, 종교계를 비롯한 재야민주단체들의 적극적인 성원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박 정권은 중앙정보부를 통한 ‘광고탄압’이라는 음험한 술책으로 동아일보사의 목을 조이려다 실패하자 경영진에게 압력을 가해 그 운동에 참여한 언론인 113명을 강제 해직시켰다.


당시 동아일보사의 언론인들이 강제해직에 맞서 선택할 방법은 제작거부와 농성밖에 달리 없었다. 그러자 동아일보사 경영진은 박 정권의 비호 아래 청부폭력배와 일부 사원들을 무장시켜 그들을 폭력으로 몰아냈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MBC, KBS, YTN 노조원들은 방송국 스튜디오를 점거하거나 보도국 등 제작부서에서 농성을 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시민들을 향해 파업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길로 나갔다. 그리고 <뉴스타파> 같은 SNS를 통해 수십만 대중에게 다가가는 첨단 운동방식을 개발해서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나 세 방송사 경영진은 그들을 폭력으로 굴복시킬 수도, 대중한테서 격리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한 나절 안에 수백만 명에게 정보가 전해져 대대적인 항의와 시위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박정희 정권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다수 언론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10년 동안 방종에 가까운 자유를 누린 것 말고는 권력에 대한 굴종과 유착으로 일관했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는 특히 조선·중앙·동아일보와 매일경제, 그리고 문화일보가 ‘권력과의 일체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런데 과거에 비해 두드러지게 달라진 것은 한국 일간지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는 그 신문들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초라할 정도로 약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2007년의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큰 공을 세웠으나, 2010년의 6·2 지방선거와 2011년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필사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원했지만 참패를 감수해야 했다. 그들의 의제 설정 방식이나 여론 형성 능력이 크게 약해졌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 때는 20~40대 표를, 시민사회운동 출신의 박원순 후보가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보다 배나 더 많이 받은 것이 승리의 결정적 동인이었다. 그들이 이미 조·중·동·문·매의 영향권에서 훌쩍 벗어나 있음을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는데···.

이명박 정권의 특혜와 온갖 지원으로 종합편성채널을 따낸 조·중·동·매는 지금 ‘0%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시청률 때문에 숨을 헐떡이고 있다. 그 가운데 한둘은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나는 이번의 방송 항쟁이 한국 언론의 생태계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기대한다. 지난 4년 동안 국민에게 진실을 알릴 의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채 삭제되거나 잘린 기사, 데스크가 무시해버린 영상, 불방되거나 가위질 당한 프로그램, '시청률 지상주의‘를 강요당하던 드라마 때문에 전문직업인으로서 주체성과 자존심을 지키지 못하고 울분에 차 있던 기자, 영상기자, 피디들이 항쟁을 통해 다진 동지애를 바탕으로 국민과 함께 가는 방송을 제작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런 새 세상은 쉽사리 오지 않을 것이다. 방송사의 ‘낙하산 사장들’이 마지막까지 자리를 보전하려고 버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힘없이 물러난다면, 이미 레임덕이 되어버린 이명박 정권의 말기가 더 비참해질 것이므로 그들의 ‘자진 사퇴’를 방관하지도 않을 것이다.

2012년의 방송 항쟁은 오는 4월 11일, 미흡한 점이 많지만 민주진보 진영이 연대를 통해 승리한 뒤 12월 대통령 선거를 통해 민주·평화·복지를 지향하는 정부를 세우는 데 이바지할 때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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