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려나 응원은 감히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국민 여러분의 관심이라면 매서운 질책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 길의 끝에서 기다려만 주십시오. 곧 찾아갑니다.”(6일 KBS 새노조 파업 투쟁선언문)

KBS 새노조(위원장 김현석·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6일 김인규 사장 퇴진을 촉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전국의 KBS 새노조 조합원 700여 명은 이날 오후 2시30분부터 KBS 신관 계단에서 개최한 총파업 출정식에 참석했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가 임명한 사장이 취임한 이후 KBS의 뉴스와 프로그램이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며 국민에 사죄했다.

오태훈 아나운서(KBS 새노조 조직국장)은 파업출정식에서 이번 파업을 두고 불법정치파업이라는 비난에 대해 “이 파업은 지금까지의 파업과 다르다”라며 “공정방송을 사수하라는 국민 명령을 받고 하는 정당한 파업”이라고 역설했다. 오 아나운서는 그동안 국민들에게 꾸짖음과 질타를 많이 받았다며 그것은 정권방송으로 변질된 데 대한 정당한 항의였다고 고백했다. 이어 새노조 조합원 700여 명은 국민의 방송 KBS를 이렇게 전락시킨 데 대해 “죄송합니다. 국민들게 사죄드립니다”라며 사죄를 담아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KBS 새노조는 투쟁선언문에서 공영방송의 가치를 지키지 못하고 저들의 입이 됐고, 내부의 배신자들이 KBS를 사익의 도구로 활용할 때 침묵이나 냉소로 일관했으며, 그 결과 KBS와의 인터뷰는 부담스럽지 않고 좋다는 권력자를 대하는 자신들이 나쁘고 슬프다고 자책했다.

KBS 새노조는 이어 수백의 노동자가 해고되고 죽어도 자본과 정권의 입장만을 대변했을 뿐 아니라 권력의 부패함이 나라 전체를 썩은 내로 진동시켜도 카메라의 앵글을 다른 곳으로만 비췄던 것을 고백하며 “우리는 없다”고 반성했다.

이들은 그래서 길을 다시 찾을 것이며, 그 길의 끝에는 국민 여러분이 있다며 “격려나 응원은 감히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국민 여러분의 관심이라면 매서운 질책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 길의 끝에서 기다려만 주십시오. 곧 찾아갑니다”라고 다짐했다.

이와 함께 이날 파업출정식에 참여했던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간절히 듣고 싶은 말이었다. ‘국민이 주인된 세상’, ‘KBS는 국민만이 주인’”이라며 “19대 국회가 열리면 MB정부 언론장악에 대한 국정조사에 반드시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도 “이미 방송계의 적벽대전이 시작됐다”며 “전쟁에 이기는 전제는 대의명분이며 명분은 없는 전쟁은 이길 수 없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KBS가 파업을 풀 때까지 (KBS에) 취재를 거부하겠다”며 “앞으로 ‘뉴스타파’, ‘제대로뉴스데스크’만 보겠다. KBS도 ‘제대로 9시뉴스’만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격려했다.

이강택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이 싸움 통해 김인규 뿐 만 아니라 배후 이명박 본진까지 불사르는 싸움으로 이어져야 한다”며 “우리는 이 파업을 김인규 뒤에 있는 이명박, 박근혜를 흔드는 파업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6주째 파업을 이어오고 있는 정영하 MBC노조위원장은 “오늘은 언론사에 처음으로 상황이 똑같아서 판단도 같고, 판단이 똑같아 행동까지 똑같은 역사적인 날”이라며 “김인규 김재철 치우기에 나선 것에 환영한다”고 평가했다. 정 위원장은 “방송을 공정한 영역에 놓지 않으면 총선 대선 치르지 못한다는 뜻에 KBS와 MBC가 함께 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파업출정식은 애초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KBS가 버스차벽으로 본관앞과 계단, 출입문을 원천봉쇄했을 뿐 아니라 KBS 신관에서 본관으로 이어지는 곳도 신관 입구에서부터 셔터를 내리고 막아 몸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때문에 KBS 새노조 조합원 700여 명은 KBS 본관 2층 내부의 ‘하모니광장’(접견실)에 모여 약식 결의대회를 연 뒤 단체로 신관 계단으로 이동하는 등 출정식 개최부터 KBS 사측과 마찰을 빚었다.

다음은 KBS 새노조의 파업 투쟁선언문 전문이다.

<투쟁선언문>

우리는 나쁩니다. 권력의 폭압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던 우리는 나쁩니다. 공영방송의 가치를 지키지 못하고 저들의 입이 되었던 우리는 나쁩니다. 내부의 배신자들이 KBS를 사익의 도구로 활용할 때 침묵이나 냉소로 일관하던 우리는 나쁩니다.

우리는 슬픕니다. 경찰 특공대의 구둣발이 회사를 유린해도 끝내 막아내지 못했던 우리는 슬픕니다. KBS와의 인터뷰는 부담스럽지 않고 좋다는 권력자를 대하는 우리는 슬픕니다. 신뢰도 1위, 영향력 1위, 한국의 대표 공영방송이라는 자부심은 쓰레기통에 처박아야했던 우리는 슬픕니다.
 
우리는 없습니다. 언론인의 본분은 팽개치고 권력의 하수인이 되었던 우리는 없습니다. 수백의 노동자가 해고되고 죽어나가도 자본과 정권의 입장만을 대변했던 우리는 없습니다. 권력의 부패함이 나라 전체를 썩은 내로 진동시켜도 카메라의 앵글은 다른 곳만을 향했던 우리는 없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저항과 투쟁이 없지 않았지만 한없이 미약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희생과 상처가 작지 않았지만 국민 여러분이 받은 희생과 상처에는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KBS 동지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의 길을 다시 찾고자 합니다. 찾아서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갈 것입니다. 그 길의 끝에는 바로 국민 여러분이 있습니다.

한없이 부족하지만 사력을 다하겠습니다. 격려나 응원은 감히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국민 여러분의 관심이라면 매서운 질책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 길의 끝에서 기다려만 주십시오. 곧 찾아갑니다.

2012. 3. 6. 언론노조 KBS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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