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가 재단수입금의 일부를 고위험자산에 투자했다가 100억 원이 넘는 손실을 보는 등 부도덕하고 무능력한 ‘기업’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고대는 특히 비정규직 교수의 임금 현실화에 대해 ‘어떠한 요구도 들어줄 수 없다’고 외면해 반발을 사고 있다.

시간강사인 김영곤 비정규교수는 이에 항의하기 위해 19일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는 2005년부터 고대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김 교수는 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천막에 대해 “대학의 본질, 대학개혁의 방향성을 묻는 곳”이라고 평가했다.

고대에 온지 이듬해(2006년)부터 비정규 교수의 열악한 처우 개선을 촉구해온 김 교수는 지난해 5월 전국대학강사노조 고려대분회를 결성하고, 임금 및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했으나 학교는 이를 거부했다. 임단협 안에 포함된 주요 조항은 시간당 강사료를 10만 원으로 올리고, 방학중에도 강사료를 지급해야 하며, 계약기간도 6개월에서 2년으로 늘릴 것 등이었다.

1월 노동위원회의 조정에도 고대측이 수용불가 입장을 고수해 천막농성에 이르게 됐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비정규교수는 일주일에 평균 4.2시간 동안 강의를 하고 연간 600여만 원의 임금을 받는다. 강의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정을 하소연하면 주변에서 ‘강의를 더 하지 그러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김 교수는 “3곳에서 3시간씩 총 9시간 강의를 한다고 치면 이동하고 강의하는데 모든 시간을 다 쓰게 된다”며 “강의 준비와 연구를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고대 교수의 시간당 강사료는 전국 대학 가운데 50위 수준으로 더 낮은 편이다.

김영곤 교수는 “전국을 돌며 강의를 서너 개 뛰는 일부 강사들도 연봉 2000만 원을 넘기 힘들다”며 “대학별로 차이가 있는 것도 문제지만 전체적으로 임금을 올리는 게 근본적인 방법이라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비정규교수를 연구자로 보지 않고 강의자로만 생각해 활용하려는 대학의 인식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비정규교수 또한 정규직 교수와 마찬가지로 강의, 강의준비, 연구, 학생지도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고려대에 수백 여 명의 비정규교수가 있지만 이들이 강의를 준비할 공간은 딱 한 곳, 그것도 15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비좁은 곳임을 지적하며 질 높은 수업, 다양한 주제를 강의하기 위한 공간이 없다고 비판했다.

2011년 통과된 고등교육법 개정안에 따르면 비정규교수들에게 △‘교원 지위’가 부여되고 △시간당 강사료도 연 1만 원 씩 오르며 △6개월 계약 관행도 1년으로 바뀐다. 이에 대해 김영곤 교수는 시간강사 제도를 폐지하면서 임금을 시급으로 제공하고, 방학 때 임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으며 고용불안이 1년 단위로 연장될 뿐 교육공무원법·사립학교법·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면서 “홍길동에게 난리법석을 피우니까 홍씨 성을 쓰라고 허락한 것 뿐”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이 개정안의 핵심이 ‘교원 외 교원’로 대우하겠다는 것이며, 이마저도 사립대에게는 권고만 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김영곤 교수는 자신의 천막농성의 배경을 두고 ‘대학의 기업화와 교육의 상품화’라고 꼽았다. 재벌을 끼고 있는 성균관대, 중앙대 등의 교육 구조조정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 김 교수에 따르면 성균관대는 ‘2020 플랜’에서 2020년 이후 학부 강의 전부를 계약직 교수에게 맡기고, 중앙대는 순차적으로 1600여 명의 비정규교수를 활용해 강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또한 대학의 교육내용도 인문 사회학 대신 경영·회계 중심으로 대체돼 가고 있는 것에 대해 김 교수는 “한국의 대학은 기업에서 필요한 기술을 배우는 ‘기능대학’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성균관대는 삼성 훈련소, 중앙대는 두산 인력양성소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질문과 대답이 없는 강의실 모습이 교육 구조조정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회 앞 천막과 고려대, 국민대 등 소수 비정규교수들만이 생계를 걸고 싸우고 있다. 학생, 교직원, 정규직 교수들의 연대가 없다면 혼자만의 싸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학생들과 교직원, 다른 학내 노동자들도 김 교수와 뜻을 함께 하면서 관심이 확산되는 분위기라고 김 교수는 내다봤다.

그는 정규직 교수들에 대해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만큼 움직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투쟁을 접으라’며 회유하는 진보적인 교수들도 있는데 이는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천막농성을 하면서 졸업식과 입학식, 개강을 맞은 김 교수는 이번 학기에 고려대 세종캠퍼스 경영학부에서 ‘노동의 미래’를 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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