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해 전 세계를 휩쓸었던 단어 하나를 찾자면 'occupay'(오큐파이, 점령하다)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뉴욕의 월스트리트 주코티 공원에서 시작된 '시위자'들의 ‘점령하라’는 구호는 지난해 10월 29일 총행동의 날에 세계 1000여 개 도시에서 열린 동시다발적인 집회와 시위로 퍼져나갔다.

‘오큐파이’라는 구호가 금융자본에 맞선 전 세계적인 저항운동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이름없는 '시위자'들이 있었다. 1%에 맞선 99%의 얼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책 ‘점령하라’는 윌스트리트 점령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어느 지식인이나 언론의 분석에 기대지 않는다. 철저히 어떻게 뉴욕의 주코티 공원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생활하고, 시위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등의 이야기를 전해줄 뿐이다. 지은이도 '시위자'로 명명했다. 책에 따르면 윌스트리트 점령운동을 이끄는 실무그룹에서 운동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60여 명이 공동 작업에 참여해 책이 탄생됐다고 한다.

책은 윌스트리트 점령운동을 시위자의 관점에서 서술했다는 점에서 장단점이 분명하다. 기존 언론의 프레임과 지식인들의 분석을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99% 사람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경청할만하다고 생각한다면 이처럼 생생한 이야기도 드물 것이다. 특히 지난 2008년 촛불 집회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당시의 기억을 회상시켜줄지 모른다. 놀라우리만큼 주코티 점령운동과 촛불집회가 닮았기 때문이다.

99% 시위자들의 윌스트리트 점령운동은 우연치 않게도 친환경 반소비 잡지인 애드버스트의 글에서 촉발됐다. 애드버스트는 지난해 7월 13일 웹사이트 하단에 있는 블로그 난에 "윌스트리트를 점령하라, 타흐리르 광장을 재현하고 싶은가? 9월 17일 맨해튼 남쪽으로 달려가서 텐트를 치고 키친을 만들고 평화의 바리케이드를 쳐서 윌스트리를 점령하라"는 글을 올렸다.

애드버스트는 ‘윌스트리트 점령’이라는 이름을 만들고 구체적인 날짜를 제시했지만, 실질적으로 운동을 이끈 사람은 뉴욕의 시민들이었다. 뉴욕시 예산삭감반대모임 사람들은 9월 17일 대규모 반 윌스트리트 시위를 위해 준비했다. 모임 참가자 재키는 "처음에 회의적이었던 사람들조차 누군가 시위를 조직해야 한다고 생각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나타날지도 모르니까요!"라며 당시의 일을 회상했다.

재키의 바람대로 주코티 공원에는 연령, 직업, 인종을 초월한 많은 시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서 의견을 모으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시위자들은 첫 총회에서 연대원칙을 공식문서를 정하고 "직접적이고 투명한 참여 민주주의를 실현"하려고 했다. 이들이 거리에 뛰쳐 나온 것은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점을 자각하고 동시에 어느 정치세력도 금융자본의 문제점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불만에서 비롯됐다. 주택담보 대출을 갚지 못하고, 직장을 잡아도 등록금 상환금 때문에 여유가 없고, 일자리는커녕 등록금마저도 내지 못하는 상황은 별반 우리나라, 미국, 전세계 상황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금융으로 배를 불린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돈을 불린다.

불평등한 세상을 바로 잡아보자는 사람들이 거리에 나왔으니 요구는 다양할 수밖에 없었고, 이들의 요구를 한 곳으로 모으는 일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윌스트리트 점령운동의 총회는 직접민주주의의 발전 가능성을 엿보일 수 있는 흥미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하나의 의제로서 채택되는 과정은 더디긴 했지만 시위자들은 "결속을 다지고 행동의 광범위한 원칙을 세우는 도구로서는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며 총회에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경찰의 폭력 문제는 역설적으로 윌스트리트 점령운동을 확산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한 경찰관이 여성 시위자들을 향해 최루액을 뿌리는 영상은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오히려 점령운동의 동력을 이끄는 계기로 작용했다. 브루클린 다리 위에서 무려 700여 명의 사람들이 경찰에 연행되는 일도 벌어졌다. 연행자 중에는 당시 해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24살의 키이스도 포함됐다. 키이스는 연행된 지 12시간에 풀려난 뒤 주코티 공원의 안내 데스크로 가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책은 점령운동을 이상적인 것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특히 광장 안 의식주 문제와 함께 운동성향이 다른 두 세력간의 갈등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책에 따르면 주코티 공원의 모습은 동서로 나눠 극명하게 달리 보이는데, 대체로 동쪽에는 개혁 성향의 중산층 지지자들이, 서쪽에는 노동자 계급의 강성 정치 운동가들이 모여 있었고, 둘은 때때로 반감을 드러내며 운동방향을 놓고 의견충돌을 빚기도 했다.

윌스트리트 점령운동은 폭력적인 미디어의 보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장이기도 했다. 점령운동 첫날, 행진 시위가 있었지만 주류 언론의 철저히 눈을 감았다. 9월 26일 경찰이 여성 시위자에게 최루액을 뿌린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윌스트리트 점령기사는 여론조사 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의 미디어 분석 자료에 집계되지도 않았다.

운동 초기 CNN은 '시위 정말 맞나!?'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로 점령운동을 조롱했고, 뉴욕 타임스 역시 "틀린 표적을 가지고 윌스트리트를 겨누고 있다"면서 "시위대에는 응집력이 없고 진보주의를 실천하기 보다는 흉내 내길 원하는 게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한달 가까이 시위가 계속되고 700여명이 연행될 정도로 열기가 확산되자 주류 언론들의 보도 행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코미디언 존 스튜어트는 "이제 언론은 버튼을 눌러 '정전' 모드에서 '야단법석' 모드로 바뀌었다"면서 "언론에는 원래 버튼이 두개 밖에 없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점령운동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 책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쌍용자동차 점거농성, 울산 현대차 점거농성, 김진숙 지도위원의 크레인 점거 농성 등에서 보여준 언론의 보도 행태를 보면 특히 그렇다. 호들갑스럽게 '점거'한 행위만을 떠들어댔지, 그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귀를 기울이지는 못할망정 애써 외면을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대목이다.

윌스트리트 점령운동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 대부분 모두 99%임을 자각하는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을 기획하고 편집한 제현주씨는 "1%의 요구는 언제나 하나이므로, 그들은 뭉치려 애쓰지 않아도 같이 움직인다. 99%는 필연적으로 수많은 소수자의 모임이므로, 끊임없이 토론하고 논쟁하고 부딪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하지 않는 한 같이 움직일 수 없다"며 "이제야 우리는 단순하고 순진해빠진 점령운동의 선언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보고 있다"고 썼다. 

99% 대 1% 윌스트리트 점령 인사이드 스토리 / 시위자 / 임영주 옮김 / 북돋움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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