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이 오는 3월말 주주총회에서 선임될 사장 문제를두고 청와대 낙하산 사장 개입 의혹이 제기돼 홍역을 앓고 있다. 노조 관계자 중에는 '파업'을 언급하는 등 강력 반발하면서 이명박 정권에 맞서는 언론인들의 투쟁 대열에 동참할지 여부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 소유 구조의 한계로 인한 사장 선임 문제는 서울신문에서 늘 골칫거리였지만 이명박 정권 말기 청와대 인사가 개입한 사장이 서울신문으로 온다면 더 이상 '희망'은 없다는 인식이 퍼져있다. 

특히 그동안 정부 친화적인 보도에 대해 서울신문 구성원들이 반성하고 거듭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히는 등 지면 자정운동을 통한 변화도 감지된다.

2일 서울신문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이창구 위원장이 먼저 꺼낸 말도 서울신문 논조에 관한 뼈저린 반성이었다.

이 위원장은 "서울신문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은 저에게도 천추의 한"이라며 "직접 이 모양으로 만든 사람들도 큰 책임이지만 제지하지 못한 것도 우리의 책임이 있다"고 털어놨다.

서울신문 편집국 기자 160여명 중 최근 2년간 자리를 옮긴 기자만 20여명일 정도다. '쓰고 싶은 기사도 제대로 못쓰고 생활도 어렵다'는 것이 서울신문 구성원들의 하소연이다.

더욱이 지난 2010년 편집국장 직선제가 폐지되고 사장이 국장을 지명하게 되면서 서울신문의 논조는 정부 친화적으로 급격히 기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위원장은 "제가 서울신문 대표라는 가정 하에 반성을 하면 천페이지를 써도 부족하다. 공명정대한 신문도 못 만들고, 돈도 없으니 있을 이유가 있겠나"면서 "이번 사태는 이런 현실을 극복하려고 하는 마지막 몸부림이며 이런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국면"이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많은 후배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어서 노조위원장이 됐고, 올해 새롭게 노조 집행부를 출범시켰는데 발전은 커녕 퇴행이 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는 없다"고 토로했다.

이 위원장이 말하는 '퇴행'은 정신모 후보자가 서울신문 사장으로 오는 것이다.

정 후보자는 지난달 24일 안병우, 우홍제 두 후보자와 함께 사장 서류심사를 최종 통과했다. 하지만 사장 선임권을 가지고 있는 1대 주주인 우리사주조합이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이 2~4대 주주인 기획재정부, 포스코, KBS 주주대표들에게 자신의 고교 선배인 정신모 후보를 서울신문 사장으로 앉히라고 오더를 내렸다고 폭로하면서 청와대 낙하산 사장 논란이 불거졌다.

서울신문 노조는 노보를 통해 "많은 노조원들이 최금락 수석이 낙점한 것으로 알려진 후보에 대해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있으면 서울신문 재직 시절 그의 행적과 평가에 대한 많은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고 밝히는 등 정 후보자 개인에 대한 반감 역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위원장은 정 후보자에 대해 "현재 미디어환경으로 보면 절대 올 수 없는 분이다. 서울신문에서 퇴직할 때까지 군사정부를 거쳐 YS 정부까지 어처구니 없는 기자생활을 했던 분"이라면서 "서울신문에서 나간지 14년이 되고 칠십 가까운 분을 우리가 모실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정 후보자의 경우 지난 1998년 편집국장으로 선임됐지만 이전 뉴미디어국장을 맡으면서 음성사서함 서비스를 위한 기기 도입 과정에서 개인 비리 의혹이 불거져 사실상 경질되고 감사까지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 노동조합은 3월 첫째주 300여 명의 조합원들을 상대로 해서 전 국실을 돌면서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번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파업까지 고려한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도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이 위원장은 "일단 파업을 하게 되면 정치 파업으로 현행법상 100% 불법 파업이 될 것"이라며 "정상적인 파업 절차를 밟기 힘들면 연차 투쟁도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가 그만큼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공감대를 토대로 의식화, 조직화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 구성원들도 지면개선위원회를 만들고 자사 신문 논조를 통렬히 비판하는 등 자정운동에 나서고 있다.

서울신문은 지난 2004년 8월 이후 중단된 '지면개선위원회 소식'을 올해 1월부터 발행하고 있다. 지난 1월 30일에 첫 발행된 지개위소식에는 '2012년, 팩트로 지면을 점령하라'는 제목의 글로 서울신문 기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지개위는 "2009년 봄 이동화 현 사장의 취임 뒤 우리 신문은 존재감을 잃어갔다. 사장은 요즘 기자들이 편향되어 있다는 등 편집권 독립에 정면으로 반하는 이야기들을 했다"고 비판했다.

지개위는 "이를 기다렸다는 듯 각 부차장 등 데스크들은 태도를 확 바꿨다. 독창적인 발제는 이런저런 이유로 짓누르고 주문제작 기사로 지면을 채웠다"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빼도 박도 못할 팩트만이 불썽사나온 지면기사를 밀어내는 유일한 무기라는 사실을 땀과 노력, 날카로운 문제의식으로 입증했다"고 썼다.

이 위원장은 "편집국 직선제 폐지에 대한 폐해가 드러났기 때문에 편집국 내부의 요구가 우선시 되면 (편집국 직선제 부활은)고려해 볼 수 있는 문제"라면서 "편집국 조합원들의 각성과 요구들이 분출돼야 가능한 작업"이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MBC가 촛불 시민에게 외면을 받았다고 하는데, 사실 MBC,YTN, 연합뉴스보다 못한 것이 우리다. 공정성과 진보성을 따지자면 이들보다 못했다는 얘기"라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친했던 한 인사가 그것도 군사정권에서 기사를 썼던 인사가 온다면 조중동보다 못한 어처구니없는 신문으로 전락하고 결국 희망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신문 사장은 오는 3월 중순 최종 면접 심사가 있고, 오는 26일 주주총회 자리에서 최종 선임될 예정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