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마치 제가 1억 원을 내고 회원권을 구입했거나 1억 원 상당의 어떠한 서비스를 받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명백히 허위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2월21일, 새누리당 나경원 서울 중구 예비후보, 전 서울시장 후보)

안타깝게도, 명백히 밝혀진 것은 아직 아무 것도 없다. 나경원 후보의 ‘무죄’를 입증할 근거도, 보도가 ‘허위’라고 판단할 근거도 아직은 없다. 경찰이 예정에 없던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내놓긴 했지만, 스스로 “실체적 진실을 정확히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듯 수사가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다. 의문과 의혹은 여전히 꼬리를 물고 있다.

▷‘1억 회원권’의 존재= 시사인은 나 후보의 ‘ㄷ클리닉’ 출입 의혹을 처음 보도하면서 “이 클리닉 회비는 1인당 연간 1억원선에 이른다”고 밝혔다. 회원이라는 이들의 증언을 확보했고, 고객 신분으로 상담을 신청한 기자도 원장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나 후보는 출입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1억 회비’는 부인했다. “(원장이) 나에게는 실비만 받아서 1억원과는 거리가 멀다. 가급적 건별로 계산하지만 모아서도 결제한다”는 해명이었다. 회원권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논란이 다시 거세진 건 해를 넘긴 1월 말의 일이었다. 나경원 후보 측의 고소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던 경찰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동아일보가 1월 30일자 1면에 1보를 썼다. 경찰은 연회비가 1억원에 달하는 회원권은 없었다고 밝혔다. 1년에 가장 많은 치료비를 지급한 게 3천만원 수준이라고도 했다. 시사인의 보도와 다른 완전히 다른 내용이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몇몇 언론은 해당 의혹을 ‘허위보도’라고 지적했다.

시사인은 2월1일, 취재 당시 촬영한 동영상 일부를 공개했다. 당시 원장과 간호사가 “얘(시사인 기자)는 반 장이면 된다”며 5천만원을 제시했다는 내용이었다. 시사인은 “진실을 가려보자”고 ‘발끈’했다. 2월11일 발행된 230호에서는 “(ㄷ클리닉은) 1억원이 맞다”는 원장 동료의 증언을 소개했다.

‘1억 피부클리닉’이 강남 일대에 퍼져 있는 건 일단 ‘공공연한 사실’로 통하는 분위기다. 조선일보의 자매지인 여성조선 12월호에 실린 <억 억 소리나는 청담동 피부과에 가보니>라는 르포기사를 보면, “VIP 패키지는 1억원 대라고 보면 된다”는 대목이 나온다. “연회원으로 가입해 연중 자유로이 이용하는 클리닉의 가격은 어떤 패키지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데” 그렇다는 이야기다.

ㄷ클리닉에도 이 같은 회원권이 있다고 판단할 근거가 더 많아 보인다. 동영상을 비롯해 관련 증언도 충분히 공개됐다. 한겨레는 당시 이곳에서 치료를 받은 한 회원이 “연회비는 1억”이라고 언급한 동영상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압수수색에서 관련 증거를 확보했고, 논란이 있기 전인 8월경 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하면서 확보한 장부가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40여일 만에 압수수색이 이뤄진 점도 그렇고, ‘이중장부’가 만연한 업계의 관행을 고려하면 의문은 남는다. 물론, 나 후보가 실제 1억원을 지불했는지 여부는 여전히 쟁점으로 남는다.

▷나 후보는 얼마를 냈나?= 애초 “프라이버시 때문에 액수는 못 밝히겠다”며 ‘실비’를 냈다던 나 후보는 논란이 거세지자 “(1억원의) 절반도 안 되는 비용”이라고 해명했다. “비용은 35~40회에 500만~600만원 정도였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딸의 치료 때문에 갔다는 설명과 함께 새로 내놓은 해명이었다.

애초 원장의 설명은 달랐다는 게 시사인의 주장이다. 기사가 나간 지 하루 뒤인 10월21일 원장은 “한 번에 300만원도 받고, 500만원도 받고 뭐 그런 식으로 (받았다)”고 말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1억이 아니면 얼마냐, 5천만원 선이냐고 묻자 “3천만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이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문제는 경찰 발표였다. 경찰은 나 후보가 550만원을 냈다고 밝혔다. 압수한 장부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시사인은 원장이 경찰에서 진술을 번복했다고 지적했다. 나 후보 측이 고소를 제기한 10월24일부터 압수수색이 이뤄진 11월30일 사이에 나 후보와 원장이 입을 맞췄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원장은 이후 월간조선 3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3~4년에 걸쳐 총 금액으로 (1억을) 받은 적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1억 불러 본 적도 없고, 1년에 그만큼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나 후보가 치료를 받은 기간을 따져보면 엇갈린 주장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경찰은 2월부터 선거 직전까지 나 후보가 딸 치료를 위해 5차례, 본인 치료를 위해 10차례에 걸쳐 ㄷ클리닉에 들렀다고 발표했다. 이 기간 동안 쓴 금액을 모두 합쳐 550만원이고, 이는 모두 현금으로 결제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횟수만 놓고 보면 “35~40회”라던 애초 나 후보의 설명과 분명 다른 부분이다.

시사인은 최근호(233호)에서 나 후보의 또 다른 ‘호화 클리닉’ 출입 의혹을 보도하면서 “저한테 다니신지 한 4년 됐다”는 이 곳 원장의 말을 소개했다. ㄷ클리닉 원장과 가깝다는 이 곳 ‘A클리닉’의 원장은 “나 의원님이 본래 나한테도 오시고 거기도 가고 하시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경찰의 발표를 사실로 인정하더라도, 추가 조사나 해명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이 원장은 고객 신분으로 찾아간 두 명의 기자에게 각각 연간 7천2백만원과 4천2백만원에 해당하는 견적을 뽑아줬다.

▷언론은 ‘나경원법’에 올인?= 포문은 문화일보가 먼저 열었다. 이 신문은 1월31일자 사설에서 “‘나경원법’이 절실하고 시급하다”고 운을 뗐다. “선거의 당락을 가르다시피 한” 시사인의 “과장된 흑색보도·선전”을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동아일보는 똑같은 주장을 다음날 아침 1면 머리기사에 올렸다. 경찰 발표를 근거로 시사인의 보도를 ‘허위’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주문한 셈이었다.

조선일보는 한 발 더 나갔다. 이 신문은 2일자 사설에서 “허위사실의 근원지 역할을 한 언론 매체에 대해선 징벌적 벌금을 부과해 회사가 망하도록 하거나 사이트를 강제 폐쇄하는 등의 조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월간조선 3월호는 ㄷ클리닉 원장과의 인터뷰를 보도하며 “제대로 된 언론매체라면 해당 기자에 대해 징계를 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나 후보를 초청한 TV조선 <시사토크 판>은 나 후보의 해명을 유도하며 장단을 맞췄다. 새누리당 정옥임 의원은 지난 6일 나경원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처럼 나경원법 제정을 주장하던 언론들은 시사인의 추가 폭로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시사인 기자회는 “언론 자유를 뒤흔드는 경찰·거대언론·여당의 마녀사냥이 판치고 있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 언론 대다수가 시사인에 사실 관계를 확인하거나 반론을 구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경찰 발표 이후 새로 제기된 쟁점들에 대한 여타 언론의 후속 보도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미 많은 말을 쏟아낸 뒤다.

나 후보가 최근 ‘의혹이 사실이면 정치를 안 하겠다’고 밝히자 시사인이 또 다른 피부클리닉 출입 의혹을 공개하는 등 ‘맞불’을 놓으면서 다시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대다수 언론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나 후보는 22일 “정치가 신뢰를 다시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동의하는 유권자들은 ‘진실’을 파헤칠 언론을 원하고 있을 테다.

 

파파라치 스토킹, 성차별적 접근 방식 비판도
“젠더 문제 아니다” 반박
 

시사인은 “호화 피부클리닉 출입 사실이 서울시장 선거 시기에 쟁점으로 떠오른 데는 나 후보 측에서 먼저 불을 지핀 상대 후보와의 ‘서민시장 이미지 경쟁’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박원순 후보의 250만원대 월세 등을 끄집어내 공격하는 한편 ‘친서민 이미지’ 만들기에 공을 들였던 와중에 이같은 보도가 나와 여론이 폭발적으로 반응했다는 것이다.
 
반면 나 후보의 생각은 달랐다. 22일 TV조선에 출연한 그는 “여러가지 이슈들이 주로 (제가) 여성후보기 때문에 때문에 공격하는 게 상당히 많더라”는 견해를 밝혔다. 고가의 다이아몬드 반지와 의상 등이 주로 논란이 됐다는 점도 언급했다. 진행자들은 “야권은 뭐가 먹히는지 아는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고, 나 후보는 “감성적 대응이 약한 것”이라고 말했다.

피부클리닉 논란이 다소 성차별적인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례로 어느 남성 정치인이 억대 회원권의 골프장에 출입한다는 사실은 ‘의혹’에도 끼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 후보는 논점을 피해가고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해명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문제’라는 이야기다.

당시 불거졌던 다이아몬드 반지 논란은 나 후보가 재산을 축소신고 했다는 의혹이 핵심이었다. 2캐럿짜리 다이아 반지를 700만원으로 신고한 건 현재 시가로 신고하도록 규정한 공직자윤리법과 선거법을 어긴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나 후보는 “23년 전에 시어머니한테 받았다”는 동떨어진 해명을 내놨다.

피부클리닉 출입 논란의 쟁점도 ‘여성’이 아니다. ‘친서민 이미지’와 억대 피부클리닉 회원권이 어울릴 수 있는지 여부는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나 후보의 행동과 해명은 ‘오락가락’ 했다는 평가다. 해명과 전혀 다른 증언이나 정황이 새롭게 제기됐지만, 나 후보는 침묵을 지켰다. 나 후보는 “신뢰가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나 후보 캠프는 시사인 등을 고소했다. 시민들은 나 후보의 ‘겉과 속’이 궁금하다는 댓글을 남기고 있다.

한편 시사인의 보도가 ‘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개인의 사생활을 무분별하게 공개한다는 비판과 대중의 성차별적 관점을 유도했다는 비판 등이 제기된다. 시사인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또 “젠더 문제가 아니다”라는 입장도 밝혔다. 그러나 최초 보도 당시 이례적으로 해당 기사를 지면 발행 나흘 전에 온라인에 먼저 게재한 건 일정한 ‘효과’를 노린 것 아니냐는 반론도 제기된다. 또 실제보다 부풀려져 여성 정치인에게 가해질 수 있는 일정한 폭력에 대해서도 경계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사인 김은남 편집국장은 “(나 후보의)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내용들은 최대한 언급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