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철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자의 사기업 겸직 경력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정부기관의 비상임이사로 재직하면서 사기업에서 겸직한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업무 관련성을 놓고 볼 때 부적절한 처신이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미디어오늘이 김재윤 민주통합당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이 후보자의 국민건강보험료 자격 및 보험료 납부내역을 보면 이 후보자는 지난 2006년 이후 글로발테크(주)에서 약 3억여원의 급여를 받기 이전에도 3곳의 회사에서 근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02년 5월 1일부터 2003년 1월 1일까지 근무한 (주)애니유저넷은 이 후보자의 근무 당시 KT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승승장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애니유저넷은 이 후보자가 지난 2000년 12월 KT(구 한국전기통신공사) 사장을 그만두고 들어간 첫 직장이다.

이 후보자가 애니유저넷에 들어간 첫달인 2002년 5월 애니유저넷은 KT의 중소기업 기술혁신 프로젝트 공개입찰에서 H.323/SIP 인터넷전화(VoIP) 프로토콜간 상호연동을 포함한 다양한 부가서비스용 대용량 프로토콜 변환 솔루션 개발 프로젝트를 수주받았다.

지난 1998년 40억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한 애니유저넷은 국내 최초로 인터넷 전화 식별번호인 070번호를 부여받은 인터넷전화(VoIP) 서비스기업이다. 애니유저넷 입장에서는 KT의 프로젝트 수주로 인해 인터넷전화 서비스 사업의 날개를 단 셈이다. 당시 프로젝트 수주로 애니유저넷은 VoIP 시스템을 사용하는 가입자들은 프로토콜에 관계없이 상호 수용함으로 인터넷전화 통화가 가능하게 됐다.

 

애니유저넷과 KT의 관계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해 7월 애니유저넷은 KT와 컨소시엄을 이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선정하는 인터넷전화 도입에 따른 사업자로 선정됐다. 이에 따라 KT와 애니유저넷은 일반 구내 전화설비는 그대로 유지한 채 인터넷전화용 게이트웨이 장비를 추가 설치해 통화료 절감 효과를 얻게 됐다. 바로 이어 애니유저넷은 KT로부터 7억원 규모의 전략적 투자를 받으면서 KT는 애니유저넷은 4대 주주로 5.4%의 지분을 갖게 됐다.

당시 언론은 "애니유저넷은 이번 투자로 KT와의 전략적 사업관계를 확보함은 물론 기업용 인터넷전화 시장확산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창출 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애니유저넷 송용호 사장은 "국내 최대 통신사업자인 KT와의 투자관계를 통해 사업적인 면에서의 상승효과도 클 것"이라며 KT의 투자에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애니유저넷은 지난 2004년 12월 국내별정사업자 중 처음으로 통신위원회로부터 070 인터넷전화번호를 부여받았다.

문제는 2002년부터 KT의 든든한 배경을 통해 애니유저넷의 사업 성과들이 나타난 것이 사실상 KT 사장을 역임했던 이 후보자의 영향력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비록 애니유저넷이 미국 컴퓨터텔레포니 엑스포에서 최우수 인터넷 전화회사 대상을 수상하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았지만 애니유저넷이 국내 최초로 인터넷전화번호를 부여받기까지 KT의 밀접한 관계를 통한 지원이 결정적 역할로 작용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KT 사장을 역임한 이 후보자가 첫 직장으로 들어간 회사가 공교롭게도 KT의 협조 아래 인터넷전화서비스 사업자로서 승승장구한 것이다. 이 후보자는 앞서 KTF에 통신장비를 납품했던 글로발테크의 고문을 맡고 한국전파진흥원에서 비상임이사를 겸직해 업무 관련성으로 볼 때 사실상 로비스트로 활동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이 후보자가 2002년부터 KT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애니유저넷에서 근무한 것이 확인되면서 KT의 사장의 직위를 이용한 로비의혹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2002년 당시 한국인터넷진흥원(구 한국정보보호진흥원)에서 선임비상임이사로 재직해 겸직 논란도 예상된다.

이 후보자는 2003년까지 애니유저넷에서 근무한 뒤 2005년 1월부터 2006년 5월까지는 (주)에이스앤파트너스와 에이스테크(에이스앤파트너스의 분할회사)에서 사외이사를 재직한 사실도 드러났다. 특히 두 회사는 무선통신 및 종합솔루션 회사로 이 후보자가 당시 비상임이사로 겸직한 한국 인터넷진흥원의 인증·진단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민주통합당 전병헌 의원실은 이 후보자가 구 정보보호진흥원의 선임비상임이사로 재임하던 시기 기획재정부가 발행한 공기업·준정부기관 비상임이사 직무수행 지침상 겸직 금지 의무를 위반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공기업·준정부기관 비상임이사 직무수행 지침은 "비상임이사가 이사회의 승인 없이 기관의 영업부류에 속하는 거래를 하거나, 동종 영업을 하는 다른 기관의 무한책임사원이나 이사에 취임할 수 없다. 이러한 겸업금지 의무는 비상임이사의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 의무를 구체화한 규정"이라고 유권해석이 돼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 후보자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글로발테크에서 재직하면서 한국인터넷진흥원과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에 겸직한 것을 두고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과 한국인터넷진흥원은 정관상 비상임 이사의 겸임을 금지하고 있지 않으며, 다른 비상임 이사 들도 교수, 사업체 대표, 연구기관 재직 등 각자의 직업을 갖고 있었음. 따라서, 사기업체 고문으로 겸직하는 것은 문제가 없음"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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