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파업이 벌써 4주째에 접어들고 있다. 왜곡·편파보도 중단과 보도책임자 교체 등을 요구하며 보도국에서 촉발된 파업의 불씨는 MBC PD협회와 노동조합으로 번졌고, KBS·YTN 등 타 방송사로까지 옮겨 붙으면서 ‘공정방송 회복’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김재철 사장은 구성원들의 요구에 귀를 닫고, 대화채널을 단절한 채 고소·고발로 맞서면서 파업사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난 촛불정국에서 국민들의 성원을 받았던 공영방송 MBC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을까.

MBC 보도국 기자들과 PD협회, 노조의 요구사항은 말 그대로 ‘공정방송 회복’이다. 이들은 엄기영 전 사장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고 후임으로 내려온 김 사장이 MBC를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보도·제작파트의 분위기가 급변하기 시작했다고 한 목소리로 증언하고 있다.

정권에 비판적인 기사는 보도국 윗선에서 막혔고, 과 같은 시사프로그램 간판 PD들이 비제작부서로 전출됐다. 김 사장은 경쟁력 강화를 들었지만 이후 <뉴스데스크>와 , <100분 토론> 등 MBC를 대표했던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은 줄줄이 하락했다. 언론계 안팎에서는 이명박 후보 대선캠프 특보 출신을 MBC에 내려 보낸 정권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보도본부장·보도국장 불신임 투표를 주도한 박성호 MBC 기자협회장이 지난 17일 노조 주최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으라차차! MBC> 파업콘서트에서 밝힌 소회는 MBC 구성원들이 현재 느끼는 조직 분위기를 잘 대변하고 있다.

그는 “작년 말부터 뉴스가 망가지기 시작하는 조짐이 보이더니 이후 몇 가지 징후가 더 나타났다. 이런 상태에서 총선, 대선 치르다보면 이러다가 국민들로부터 전파 반납하라는 얘기 나오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MBC가 권력 비판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외부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내부에서도 보도기능이 심각하게 마비되고 있다는 것을 느껴왔다는 증언이다.

에서 타의에 의해 쫓겨난 최승호 PD가 전한 시사교양 PD들의 고초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4대강을 하겠다고 해도, 현 정부의 인사 청문회를 보도하겠다고 해도 위에서 다 막았다. 60명 정도 되는 PD조직에서 경위서 안 써본 PD가 없고 10여명은 제작과는 상관없는 다른 곳으로 쫓겨났다”고 밝혔다.

최 PD는 또 현 정부와 김재철 사장 체제에서 제작환경이 얼마나 후퇴했는지 노무현 정부 때와 단적인 예를 들어 비교하기도 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시절 에서 FTA 문제를 세게 다뤄 여론이 악화된 적이 있는데 방송을 보고 노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와서는 ‘토론 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 갖고 방송을 해 달라’고 했다”면서 “지금 그렇게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검찰에서 찾아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광우병 의혹을 다룬 제작진이 검찰에 기소됐지만, 대법원까지 가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김보슬 PD는 결혼을 앞두고 집 앞에서 긴급 체포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이들은 “현 정부는 4대강에 보를 세우고 강물을 막듯이 언론에도 보를 세워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세태를 꼬집었는데, 이 지점이 바로 MBC 구성원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콘서트에 출연한 김어준, 김용민, 주진우 등 <나는 꼼수다> 3인방은 “MBC 노조가 지면 안 되는 싸움에 나섰다”고 응원했다. 명분이 MBC 기자들과 PD, 노조에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열쇠를 쥐고 있는 김재철 사장은 사태해결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노조와 대화채널을 가동하지 않고 외부에는 철저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노조의 파업열기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김 사장은 회사에 보름 가까이 출근하지 않고 있으며, 서울 시내 호텔 등에서 집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단행한 보도국장 인사에서도 내부에서 정권 편향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황헌 논설실장을 신임 국장에 임명하고 기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전임 국장은 베이징지사장으로 발령 내는 등 기자협회와 PD협회,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노조의 결심은 단호하다. 정영하 노조위원장은 파업에 나서는 집회에서 “이번엔 길이 없다. 옥쇄투쟁이다”라고 말했다. 현 정권 아래에서 다섯 번째 파업인데다 한달 넘게 이어진 지난 파업에서 이근행 위원장이 해고되는 사태도 겪었기 때문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이다.

파업과 관련한 김 사장의 입장을 들으려 했지만 이진숙 MBC 홍보국장은 “이런 상황에서 사장이 나와 무슨 얘기를 한 들 제대로 받아들여지겠느냐”며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최근 언론보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것이지만 이 말 속에는 김 사장이 당분간 공개석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일반 기업도 아닌 방송사가 파업으로 파행방송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결정권자인 사장이 사태해결에 나서지 않는다는 ‘리더십’에 대한 비판도 거세질 전망이다.

김 사장은 20일 ‘사장을 찾는다’는 전단을 시민들에게 돌린 노조간부 2명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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