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버스에서 나타난 시민들의 연대를 잇기 위해 노동현장에서 ‘사회적 파업연대기금’을 조성하자는 목소리가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1만인 월 1억 원(1만원×1만명) 계좌 만들기’를 목표로 하는 사회적 파업연대기금은 권영숙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노동사회학 박사)을 비롯해 여러 현장활동가들이 손해배상, 가압류 등 정리해고 투쟁과정에서 겪는 현실적 압박에서 노동자들을 벗어나게 하자는 취지에서 제안했다.

권영숙 박사는 2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시민들이 희망버스에서 보여준 연대가 일회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 사파기금을 제안하게 됐다”고 밝혔다. 노동자 조직인 민주노총이 아닌 외부에서 이런 기금모금을 하는 이유에 대해 권 박사는 “노동계마저도 파업 노동자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파업기금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1987년 이후 자본의 ‘무노동 무임금’에 수세적으로 끌려다닌 민주노조 운동의 방향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권영숙 박사는 “우리는 모두 잠재적인 노동 파괴의 위협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라며 “나대신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쟁의기금을 만드는 게 중요한 시기”임을 강조했다. 다음은 권 박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사회적 파업기금이 뭔가.
“노동자라면 자본주의의 한 축이기도 하지만 파업을 통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집단행동을 해나가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을 말한다”

-기금 조성의 계기는.
“부산영도로 달린 희망버스가 보여준 연대를 일회적인 ‘사건’으로 남기지 않기 위해 고민했다. 정리해고는 한진중공업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상까지 연대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희망버스를 타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연대 행위를 여러 가지로 만들고 싶었다.”

-파업기금이 필요한 구체적인 이유는.
“조합비 일부를 파업기금으로 모으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에는 없다. 이 사실이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고 있다. 쌍용차 투쟁을 보면 된다. 자본에 편드는 친자본주의 국가와 제도정치, 비타협적인 자본의 문제, 이들이 결합한 ‘폭력’의 문제가 있는 한편 ‘돈’의 문제 또한 있다. 돈의 압박 속에서 파업이 형해화되는 경우다. 이뿐이 아니라 파업이 끝난 뒤에 업무방해를 이유로 손해배상 문제도 있다.”

-불법파업으로 규정하는 것도 문제가 아닌가.
“한국의 정부와 자본, 법체계는 파업의 공적 성격을 인정하지 않고 업무방해, 폭력 등을 명분으로 파업을 범죄로 낙인찍고 있다. 그리고 파업이 끝나면 손해배상 소송을 건다. 자유자재로 노동자를 압박한다.”

-파업을 바라보는 한국에서의 특수성 때문인가.
“외국에는 노동법원을 따로 둔 곳이 많다. 노동쟁의는 사적 영역이 아니고 공적 영역 안에서도 특수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헌법에도 노동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대칭적인 위치에 있는 노동자에게 특별히 부여받은 시민권이다. 그러나 하위 법률인 노동법은 그렇지 않다. 파업을 불법화하고 돈을 이용해 쉽게 무력화한다.”

-돈을 이용해 파업을 무력화한다는 건 어떤 얘긴가.
“쟁의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생계가 개인의 문제가 돼버린다. 국가와 자본이 그렇게 밀어붙이지만 노동조합에서조차 책임지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87년 민주화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한계에 있다. 70년대 민주노조들이 간헐적으로 파업을 했던 것과 달리 87년 이후에는 상시적으로 파업이 발생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의 노동시장은 보호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파업을 해도 임금을 줬다. 자본은 ‘무노동무임금’을 들고 나왔지만 노동은 92년까지 여기에만 치열하게 저항하느라 제도적 장치로 파업기금을 생각하지 못했다.”

-과거에 파업기금을 생각지 못해 지금 이 상황이 됐단 얘긴가.
“이후 파업은 더욱 장기화됐다. 원래 파업은 대기업 노조가 먼저 나서 평균 2.5일 정도에 끝났다. 이른바 노동의 낙수효과가 있었다.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이 6~7% 오르면 중소기업은 20% 가까이 오른 경우도 있었다. 90년대에 실질임금 상승률이 11%가 넘는 해도 있었다. 그런데 갈수록 이런 효과가 없어졌고 임금 인상도 선별적으로 이뤄지게 됐다.”

-DJ, 노무현 때부터 장기투쟁사업장이 늘고 있다.
“이제 파업을 하려면 자기 목숨을 걸어야 하고 인생을 송두리째 파업의 재단 앞에 바쳐야 하는 시대다. 자기 가족의 생계 또한 팽게쳐야 한다. 그런데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는 장기투쟁사업장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않다. 코오롱 같은 경우 2500일이 넘었고 콜트콜택, 흥국생명, 재능교육 등 많다. 우리나라에서 파업을 하면 버틸 수 있는 최대치는 2개월에서 3.5개월로 나온다. 그런데 길게는 8년까지 투쟁하는데 돈의 압박이 얼마나 심각하겠나. 이 모든 과정이 말해주는 건 한국사회에 노동자의 파업권이 없다는 거다.”

-노동자의 파업권을 보충하자는 뜻에서 기금을 제안했나.
“사회적 파업연대기금은 ‘돈’의 압박에 노동자들이 쓰러지지 않게 하기 위한 연대다. 파업이 필요할 때 파업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돕는 연대다. 사실 돈을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돈은 대부분 시민에게 피 같은 노동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파기금은 노동자들의 사회적 연대의 의미를 담고 있다.”

-노동자, 시민들에게 있어 사파기금의 필요성은 뭔가.
“‘나는 노동을 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노동으로부터 축출돼 파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중요하다. 신자유주의적 고용시장은 누구나 정리해고할 수 있고 누구든지 희망퇴직자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잠재적인 노동 파괴의 위협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대신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 쟁의기금을 만드는 게 중요한 시기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