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15일 KBS1 라디오에서 방송된 정당대표 연설에서 잘못된 과거와 깨끗이 단절하고 미래를 향해 전진하겠다며 국민들에게 새누리당과 함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박 위원장은 선거란 미래에 대한 선택으로, 이번 총선도 과거에 묶이기 보다는 미래를 위해 전진하는 총선이 되어야 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박 위원장의 ‘단절론’은 여러 각도에서 생각하게 된다. 정당은 집권을 위해 노력해야하고 집권 과정에 대해서는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 ‘단절론’은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우선 새누리당은 현재 집권당이고 대통령 임기가 1년이나 남았다는 점에서 ‘단절론’은 무책임하다. 새누리당은 이명박 대통령이 실정과 독선적 정치, 측근 부정부패 등으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청와대와 선을 긋자는 것은 도마뱀 꼬리자르기와 같다. 총선과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는 점이 너무 분명하니까 자구책으로 ‘단절론’을 내세운 꼴이다.

청와대의 막가파식 정치에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적극 기여했다는 점을 살피면 박 위원장의 논리는 기가 막힌다. 집권당의 국회에서의 연이은 날치기 통과와 문제인사들의 고위직 임용 과정에서의 거수기 역할은 청와대의 직간접적 주문에 대한 당의 적극적인 야합 속에 이뤄졌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조폭 조직의 ‘오야봉과 꼬봉’의 역할을 해왔던 점을 박 위원장은 명심해야 한다. 당명을 바꿨다 해서 과거가 다 세탁되지는 않는다.

새누리당은 진심으로 머리 숙여 국민에게 집권 기간 동안의 부적절한 정치에 대해 사과하고 이 대통령 남은 임기 동안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노력을 하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는가. 당명을 바꾸고 당헌, 정강, 정책 등을 일부 손질하면서 국민에게 앞으로 잘하겠으니 계속 밀어주세요 하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면서 표를 구걸하는 파렴치한 모습이다.

박 위원장의 ‘단절론’은 한국정치에 불행한 전례를 만든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정치는 일제 및 독재 정권에 대한 과거청산에 극구 반대했던 옛 한나라당의 모습과 닮았다. 진정한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잘못을 가리고 거기에서 교훈을 끌어내는 작업을 통해 가능하다. 엄청난 과오와 비리를 저질러 악취가 진동하는데 ‘청와대 당신들만 책임지시요’라면서 선을 긋는 것은 조폭도 삼가는 파렴치한 행태다. 조폭들도 의리를 말하는데 하물며 국민을 대신해 정치를 하겠다면서 ‘정치적 배신’을 하는 모습은 참담하다.

박 위원장의 ‘단절론’은 그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정적 유산에 대한 태도와 매우 유사하다. 박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의 독재 청산과 그 피해자들에 대한 진정한 화해와 같은 일을 한 적이 없다. 박 전 대통령이 부당한 방식으로 만든 정수장학회가 소유하거나 대주주인 영남대, 부산일보, 문화방송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논란이 지속되지만 입을 다물고 있다.

부산일보의 경우 박 위원장이 정수장학회를 통해 인사권을 행사한 것을 노사간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다. 박 위원장은 그 문제에 대해 일체 언급치 않는다.

박 위원장의 박 전 대통령 독재에 대한 태도가 이번에 ‘단절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박 위원장은 아버지의 경우와 현실 정치에서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고 미래를 향해 전진하다’는 지극히 아전인수식 처세론을 생의 철학으로 삼고 있는 모습이다. 책임정치, 윤리정치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사대 상황에 걸맞지 않는 태도다.

21세기 민주주의는 정치리더의 유권자에 대한 무한 봉사를 통해 이뤄진다. 박 위원장의 ‘단절론’은 국민에게 무한 봉사하는 정치 형식이 아니다. 안철수 현상으로 정치판이 대 지각 변동을 일으킨 것은 이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큰 변화를 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무한 봉사는 무한 책임을 통해 이뤄진다. 유권자들은 직접 민주주의가 최대한 반영되는 시스템 속에서 윤리적인 정치, 투명한 정치가 실현되기를 원하고 있다. ‘단절론’은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겠다는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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