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질문해 보자. "당신이 성공한 엘리트고, 소득이 남들보다 많으며, 물려 받은 재산도 적지 않다고 할 때, 당신은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아마 열에 아홉은 '부동산'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지금이야 부동산 가격 상승이 주춤하고 투기 열기가 완연히 식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가장 안전하면서 최고의 수익을 안겨주는 투자대상이었다.

이런 상식에 기반해 회고해 보면 대한민국 엘리트 가운데 부동산 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사정이 이해될 것이다. 부동산 투기로 돈을 쉽게 버는 경로가 확고하게 구축된 이후에는 투기는 선택이라기 보다는 재산증식을 위한 필수코스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부동산 투기를 해 치부를 한 행위가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려는 생각을 가진 마당에 자금과 정보라는 투기에 최적의 조건을 구비한 엘리트들에게 부동산 투기를 외면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매우 허망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을 따름이다. 

문제는 고위공직자들의 거의 대부분이 파워엘리트 가운데 선발된다는 점이다. 어찌보면 당연하게 여겨지는 고위공직자 선발 방식은 그러나 치명적인 약점을 노정한다. 청문회 등을 통해 고위공직자 후보들에 대한 검증절차가 투명해지고 공개되면서 고위공직자 후보 중 대다수가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휘말리고 만 것이다. 복기해보면 금방 알 일이지만, 이명박 정부의 고위공직자 후보 중에 부동산 투기 의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손에 꼽을 지경이었다. 참여정부가 이명박 정부 보다는 형편이 다소 나았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참여정부 기간 고위공직자 후보 가운데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인해 낙마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다. 없기는 커녕 제법 많았다.

이는 결국 부동산 투기 의혹을 기준으로 고위공직자 후보들을 걸러내기 시작하면 온전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며 고위공직자 인력 풀이 매우 좁아질 것임을 의미한다. 투기공화국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고위공직자 후보들에 대한 인력 풀을 유지하면서, 부동산 투기 의혹도 해소시키는 방법이 긴절히 요구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부동산 백지신탁제'가 고위공직자 후보들에 대한 인력풀을 유지하면서, 투기 의혹도 해소시킬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 아닐까 싶다. 참여정부 당시 입법발의까지 된 바 있는 '부동산 백지신탁제'는 고위 공직자 후보가 취임 시에 실수요 아닌 자신 및 배우자. 직계 비속 소유의 부동산을 중립적 신탁위원회에 신탁하도록 하는 제도다. 신탁가액은 과거 그 부동산을 매입했을 당시의 시가의 원리금과 신탁 시점의 시가 중 적은 금액으로 한다. 투기 목적으로 구입한 것이 아니라면 고위 공직자 후보도 이를 수긍할 수 밖에 없다. 이 때 주의할 대목은 실수요에 대한 소명책임은 고위 공직자 후보가 부담하며-실수요 소명에 실패하면 당연히 신탁대상이 된다-통상 부모들이 부동산을 자녀에게 증여할 목적으로 자녀 명의로 취득한 경우가 많으므로 자녀 명의의 부동산도 실수요 소명 및 신탁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한편 고위공직자가 그 직을 마칠 시에는 고위공직자가 신탁한 부동산의 신탁운용금을 고위공직자에게 교부하며, 고위공직자가 퇴임한 후 몇년 간-기간은 조정이 가능하다-은 실수요 목적이 아닌 부동산 취득을 금지한다. 이렇게 하는 까닭은 직무와 관련된 개발 정보 등을 이용해 부동산을 취득하는 것을 방지해 직무집행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함이다. '부동산 백지신탁제'를 이렇게 설계하면 고위공직자의 과거 투기의혹도 깨끗히 세탁(?)되고, 개발 등과 관련해 고위공직자가 직무상 행한 결정의 공공성도 확보된다. 한 마디로 양수겸장인 셈이다. 또한 앞으로는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신호를 시장에 던지는 효과도 부수적으로 기대된다.

'부동산 백지신탁제'가 사실상 강제수용을 정책수단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위헌론을 피하기 위해서는 고위공직자 후보들에 대해 '부동산 백지신탁제'를 선택사항으로 두어도 정책효과를 발휘하는데는 큰 지장이 없을 것이다. '부동산 백지신탁제'를 받아들이도록 여론이 압력을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19대 국회가 구성되면 긴급히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을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부동산 백지신탁제'의 입법화다. 고위공직자 후보들에 대한 인재풀을 좁히지도 않고, 고위공직자 후보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도 세탁해주며, 고위공직자가 개발과 관련해 내린 정책의 신뢰성도 담보해주는 '부동산 백지신탁제'를 시급히 시행하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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