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프로그램을 개편할 때 프로듀서가 가장 고민하는 것은 포맷을 결정하는 것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개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지만 이미 나올만큼 나온 포맷을 제쳐두고 새로운 양식을 찾아 내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일본 프로그램을 모방하는 일도 생긴다. 게다가 때로 포맷은 프로그램 형식과 내용을 천편일률적으로 고착화시키는 역기능을 하기도 한다.

MBC가 봄철 개편과 함께 <논픽션 30>을 만든 이유는 바로 포맷의 고민에서 벗어나 무엇이든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의도였다. 지루한 다큐멘터리를 좀체 보지 않는 시청자의 특성을 고려해서 시간도 30분짜리로 만들었다. 11일 오전 8시35분에 방송되는 ‘빌딩에서 찾은 골목길’(연출 박신서)은 골목길을 소재로한 <논픽션 30>중에 2번째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탐색은 이렇게 시작한다. “서양의 공동체문화는 광장에서부터 출발했지만 씨족이 군락을 이루며 살았던 우리에게는 그런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군락을 이루는 가옥과 가옥 사이에 골목길이 존재할 따름이었다.

이 골목은 어린이의 놀이터이기도 하고 마을사람들이 어울려 이야기 꽃을 피우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재개발의 열풍이 몰아닥치고 대형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골목길은 신작로로 바뀌고 작은 골목길마저 자동차에게 자리를 내놓았다. 아이들은 골목길을 버리고 방으로 들어가 전자오락에 몰두하게 됐다. 노인들도 경로당에 갇혀서 그들끼리만 지내게 됐다.”

MBC <논픽션 30> 제작팀은 아파트 공간 속에서 골목길의 유용성을 찾는 탐험을 시작했다. 제작팀이 찾은 곳은 행당동 철거민들이 새로 안착한 임대아파트. 비슷한 경제력과 비슷한 직업을 가진 이곳 사람들이 정착단계부터 생산과 소비에서 협동생활을 해왔다는 점이 제작진의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생활정보 공유는 물론 공부방이나 탁아방도 공동으로 운영한다. 복지회관을 자치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지역주민중 한사람은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따냈다. 그러나 제작진은 이들의 노력이 공간의 구조화로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현재의 건축문화나 아파트 구조는 공동체를 만들려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개인생활을 보호하려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작진은 공동체 문화의 시스템화를 연구하는 건축가 백문기씨를 만나 해결책을 모색해 보기도 했다. 골목길의 문화와 정서를 되찾는 것이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입장에서 접근해 봤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전체가 공간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결론만 있을 뿐이었다. 제작진이 못내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프로는 최근 급증하고 있는 문화다큐와는 확실한 차별성을 보여준다. 같은 류의 회고성 프로그램들이 과거라는 앨범 속에서 즐거운 기억만을 끄집어내는데 그치고 있는 반면 <논픽션 30>‘빌딩에서 찾은 골목길’은 회고성 프로그램의 한계인 과거 미화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문제 해결에 나서려는노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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