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가 12월 1일 개국한 종합편성채널에 개국 초기라는 이유로 노골적으로 이중적인 심의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과 비교해 형평성을 잃었다는 지적과 함께 봐주기 행태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방송통신심위위에 따르면 9일 현재까지 종편은 권고 10건, 주의 1건으로 총11개 프로그램이 제재 조치를 받았다.

채널별로 보면 TV조선이 권고 2건, JTBC가 권고 2건, MBN이 권고 2건의 제재를 받았고, 특히 채널 A는 권고 4건, 주의 1건으로 제일 많은 제재 조치를 받았다.

10건이 넘는 심의 조치를 보면 방송규정 위반 내용에 비해 제재 조치도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종편은 봐주고, 지상파는 안 봐주고

대표적으로 채널A 개국다큐멘터리 <하얀 묵시룩 그린란드>의 경우 개가 개를 잡아먹는 잔인한 장면으로 선정적 논란에 휩싸였지만 결국 법정제재가 아닌 권고 조치에 그쳤다.

반면 지상파 방송 KBS-2TV <세계는 지금>의 경우 "중국의 한 여아가 트럭에 치여 앞바퀴에 깔리는 모습 등 시청자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장면을 일부 모자이크 처리한 채 반복해 보도"했다며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7조(충격 혐오감)제6호를 들어 법정제재인 경고 조치를 받았다.

방송심의규정상 <하얀 묵시룩 그린란드>의 경우 <세계는 지금>과 같이 충분히 충격과 혐오감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조치 처분 결과가 다른 셈이다.

실제 야당추천 심의위원은 "소위에서 전체회의로 넘길 때 법정제재 조치를 당연히 받을 줄 알았다"면서 대표적인 종편 심의 봐주기의 사례로 지적하기도 했다.

채널 A의 <뉴스830>은 A씨 동영상을 모자이크 처리해 연일 방송하면서 황색저널리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지적을 받고 강한 심의 조치를 내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이 역시 권고 조치에 그쳤다.

A씨 동영상 보도는 특히 여당 추천위원들이 제제 조치할 수 있는 방송심의규정이 명확치 않다며 제재에 반대했지만, 지난 8일 열린 방송소위원회에서 MBC <오늘의아침>의 경우 사실관계가 맞지 않은 민원을 수용하면서까지 심의 안건에 올려 제재를 주장하는 등 지상파와 종편에 대한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JTBC의 간판 드라마인 <빠담빠담>도 청소년시청 보호시간대에 욕설이 자주 전파를 타면서 심의 대상에 올랐지만 권고 조치를 받았다.

반면, 지난해 7월 방송된 무한도전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는 "출연자들이 과도한 고성과 저속한 표현을 사용하는 모습과 자막 등을 장시간 반복적으로 방송"했다며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제51조(방송언어) 제3항, 제27조(품위유지) 제1항, 제36조(폭력묘사) 제3항 등을 위반한 사유로 법정제재인 ‘경고’ 조치를 내렸다.

 

종편 개국 이후 같은 기간에 지상파 방송이 받은 심의 제재 조치 내용을 보면 종편 봐주기 행태가 더욱 또렷히 드러난다.

MBC 9시 뉴스데스크는 새마을금고법에 따라 최고 5000만원까지 보호받을 수 있는 새마을 예·적금이 예금자보호대상이 아닌 것처럼 보도했다는 이유로 '주의'를, SBS <좋은 아침>은 드라마 '천일의 약속'의 주요장면을 내보면서 "파격 러브신 덕에 한시도 눈을 땔 수 없다…"이란 멘트와 함께 남녀 주인공들의 키스신 등을 편집해 방송했다는 이유로 주의 조치를 받았다. 

눈에 뻔히 보이는 종편 봐주기 심의가 계속되면서 그만큼 지상파 방송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한 종편 프로그램에서 의사들이 패널로 출연해 질문을 받고 누가 더 선정적인지 경쟁하는 식으로 대답하는 내용을 듣고 깜짝 놀랐다"면서 "지상파 방송이었다면 결코 그런 포맷을 짜지도 못하지만 방송도 내보낼 수 없는 수준인데 종편은 노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방통심의위 내부 관계자들조차도 만약 종편이 지상파와 같은 수준의 심의를 받게 되면 강한 제재 조치가 내려졌을 것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

종편 봐주기 행태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지만 박만 위원장은 개국 초기 종편 심의를 느슨하게 가져갈 것이라는 공식적인 입장까지 내놨다.

박 위원장은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종편도 비록 시청률은 현재 낮지만 지상파에 준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게 큰 방향"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종편이)처음 개국해서 자체적인 심의기준도 완전히 자리 못 잡았고, 심의규정에 대한 숙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종편 심의 봐주기를 사실상 시인했다.

애매모호한 개국초기 명분…위원 갈등 격화

‘개국 초기’라는 애매모호한 종편 봐주기 명분 때문에 심의 위원끼리 종편 심의에 대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갈등이 격화되는 모습도 자주 연출되고 있다.

8일 방송소위원회의에서는 처음으로 MBN의 뉴스와 드라마가 심의 대상 안건에 올랐다.

방송소위원들은 MBN의 <뉴스M 2부>와 <왔어 왔어 제대로 왔어>에 대해 권고 조치를 결정했다. 문제는 JTBC의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가 안건에 오르면서 시작됐다. 여당 추천위원들은 MBN 드라마와 같은 내용의 저속한 표현과 간접광고에 대한 제재라며 <청담동 살아요>에 대해 권고 조치를 주장했지만, 야당 추천 위원 김택곤 위원은 JTBC의 경우 처음으로 올라온 경우가 아니면 제작진의 개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정제재 조치를 주장했다.

권혁부 방송소위 위원장과 김택곤 위원은 한동안 회의를 진행되지 못할 정도로 서로 고성을 높이기도 했다.

야당 추천 장낙인 위원은 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권혁부 부위원장과 김택곤 위원이 크게 부딪히고 김 위원이 이번 건에 대해 입장을 철회하는 대신 다음부터 종편에 대한 봐주기 행태를 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장 위원은 "이제 MBN까지 종편4사가 모두 심의 안건에 올라왔다. 개국 이후 두 달이 넘어가면서 이제 봐줄 근거도 없다"면서 종편 봐주기 심의 행태를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종편 처음으로 시청자 사과 조치 나올 듯

한편, 종편 프로 최초로 채널 A의 <해피앤드>가 법정 제재 조치인 '주의'를 받은 이후 '주의'보다 높은 제재인 시청자 사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9일 열린 광고소위원회의에서 채널 A의 <바꿔드립니다>는 시청자 사과 조치 2명, 시청자 사과 조치 및 제작진 징계 1명, 경고 2명이 나오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전체회의에 넘겼다. 하지만 권혁부 부위원장마저도 시청자 사과 의견을 내면서 전체회의에서 종편 프로그램 처음으로 시청자 사과 조치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채널 A의 <바꿔드립니다>는 진행자와 퀴즈를 겨뤄 이길 경우 평소 바꾸고 싶었던 노트북, 가구 등 각종 소품을 바꿔주는 내용이다. 하지만 방송에서 노골적으로 제품 로고를 노출시키고, 기능을 설명하는 등 간접광고를 뛰어넘어 사실상 홈쇼핑 채널에서 제품을 홍보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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