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군 부대에서 정부비판 앱 등 11개를 삭제 조치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6일 한겨레는 1면 기사에서 육군 6군단 소속 한 부사관과의 인터뷰와 6군단이 예하 부대에 내려보낸 삭제 지시 공문 내용을 공개했다.

군 간부 20만명 귀를 막을 수 있나?

한겨레에 따르면 6군단은 지난달 중순께 예하 부대에 종북 사이트 및 정부 비방 스마트폰 앱을 삭제 지시토록한 내용의 공문을 내려보냈다.

지난 3일 한국일보가 단독으로 육군 군수사령부, 소속 모 부대가 지난 31일 부대장 서모 준장 명의로 '스마트폰의 종북 애플리케이션 삭제 강조 지시'라는 공문을 하급 부대에 내려보냈다고 보도하자 국방부는 "공식적으로 나꼼수를 비롯한 특정 앱을 삭제하도록 일선 부대에 지시한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다른 부대에서도 삭제 지시 내용이 확인되면서 군 당국 차원의 지시라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6군단의 공문에 따르면 범민련 남측본부와 김정일 퍼즐 등 4개가 ‘종북(북한찬양) 사이트/앱’으로, 나꼼수와 반FTA, 가카 퇴임일 카운터 등 7개가 ‘정부비방 사이트/앱'으로 지정됐다. 6군단의 지시에 따라 예하 부대 전 간부를 상대로 한 스마트폰 검사를 실시됐고, 그 결과는 지휘부에 보고됐다.

 

6군단 소속 부사관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나꼼수’가 북한과 관련된 것도 아니잖습니까? 아무리 군인이라지만, 제 귀가 언제부터 나라 것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이어 "휴대폰을 검열받은 뒤 서류에 서명하는데, 아무리 군인이라지만 너무 치욕스럽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며 “지휘관들인 장군들이야말로 정치적인 판단으로 부하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한민국 국민 다 아는 나꼼수를 군대라고 안 듣겠나. 그리고 팟캐스트를 지운다고 안 듣겠나"라며 "장교와 부사관 합치면 20만이 넘는데, 이 사람들 귀를 틀어막으려고 검열을 하겠다는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한겨레는 사설을 통해서도 "이른바 가카 헌정방송이라는 나꼼수나, 민중의 소리가 진행하는 애국전선 등은 이 정부에 비판적인 팟캐스트 방송이고 앱일 뿐이다. ‘반정부적’이라는 표현조차 과분한 수준"이라면서 "이런 앱을 차단하기 위해 종북을 들이댔으니, 누가 이를 장병의 정신전력 보호를 위한 것으로 여길 수 있겠는가. 이 과정에서 군은 정치적 중립이라는 군의 헌법적 의무를 어겼다. 또 군 장병의 양심의 자유나 행복추구권 등 헌법적 권리를 제약했다. 중대한 일탈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방부 대변인, “아이들 부모 욕하면 개판이지 집안 아니다”

국방부는 일선 부대 지휘관의 개인적 판단으로 이번 사태의 책임을 돌렸지만 3일 한국일보 보도 이후 사흘 만에 또다른 부대에서도 삭제 지시 내용이 드러나면서 군 당국 차원의 조직적 개입 의혹도 남아있다.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6군단의 경우 최전방 DMZ를 지키는 부대이고 도발을 하면 전투를 하는 부대이기 때문에 지휘관과 장병들은 전투에 임할 수 있는 정신무장이 돼 있어야 한다"면서 "그런 차원에서 북한을 찬양하거나 또는 그런 성향이 있거나 군 통수권자를 비방하는 것을 장병들이 앱을 장착해 그런 것을 보며 즐기면 친근감을 가질 수 있고 동화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군 당국 차원의 지시 의혹에 대해 선을 그으면서도 '일선 부대에서 또다시 이런 조치를 내린다면 제한을 할 방침은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제한을 둘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아이들을 키울 때도 대학을 간 아이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얘기할 수 없다. 일선 지휘관들의 생각에 따라 한 조치를 틀렸다, 맞았다 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쉽게 말하면 자식들이 밖에 나가서 아버지, 어머니를 욕하는 건인데, 그런 집안은 개판이지 집안이 아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조치는 특히 관련 근거 조항 혹은 합리적 설명 없이 부대장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졌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종북으로 규정할 수 있는 근거도 찾기 어렵고 사실상 스마트폰에서 앱을 삭제한다고 하더라도 인터넷상에서 앱을 실행시킬 수 있어 실효성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08년 7월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비롯한 서적 23권에 대해 국방부가 북한 찬양, 반정부·반미·반자본주의 서적이라며 불온서적으로 지정해 파문을 일으킨 사건과도 비교된다. 23권의 책은 베스트셀러이거나 정식 출판돼 대중들에게 널리 읽히는 책인데도 군 당국은 일방적으로 '불온'이란 딱지를 붙였다.

당시 군 당국의 조치를 놓고 시대착오적이라는 비난이 일었고, 군인들의 '책 읽을 자유'를 제한한다며 헌법재판소 소원까지 제기됐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국방부 장관이 정한 ‘불온서적’을 소지할 수 없도록 한 군인복무규율 조항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이번 조치 역시 군인복무규율상 '군기'에 반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한 ‘정당한 조치’라는 것이 군 당국의 해명이다. 

기본권 광범위한 제약 막을 수 있는 입법 작업 들어가야

평화재향군인회 김환영 사무처장은 이번 조치에 대해 "국방부에서 일단 군 당국 차원이 아니라고 했기 때문에 현장 부대장들이 자의적으로 했다는 것인데, 자기네들이 무슨 권리로 부대원들의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느냐"면서 "제국주의 군대에서나 하는 일이고 민주 군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 사무처장은 이어 "불온서적 지정과 이번 조치 역시 법률이나 합리적인 설명 없이 군인의 기본권을 아무렇게나 제약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문제"라며 “그런 문제의식조차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비록 헌법재판소가 군인복무규율 조항을 합헌이라고 결정했지만 군인복무규율이란 이름 하나만으로 군인의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제한하는 행위를 개정 작업을 통해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번 조치가 법적 근거나 합리적 설명 없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특수한 신분의 군인에게는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다'는 사회 정서와 맞물려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제약하는 군인복무규율에 기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사무처장은 "현재도 군인 간부들은 일과 시간 이후에도 보안과 임무 완수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통제가 가해지고 있다"면서 "자유로운 권리를 누리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제약되는 것은 법률상으로 해야지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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