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CEO인사말

언론 감시와 비판 22년, 씩씩하게 계속 가겠습니다. 언론이 바로 서야 세상이 바로 섭니다.

대통령을 비판했다고 해서 남산에 끌려가 코로 설렁탕을 마시던 그런 시대는 지났죠.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은 비교적 자유로워진 것 같지만 자본권력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위축돼 있습니다. 그리고 언론권력은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있습니다. 언론은 여전히 민주주의의 강력한 동력이지만 우리는 일부 언론이 기득권 세력과 결탁하거나 이미 기득권 세력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봐야 합니다.

감시자를 누가 감시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금처럼 미디어 플랫폼이 분산되고 소셜 커뮤니케이션이 폭발하는 시대에는 더욱 중요합니다. 아젠다 셋팅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지만 언론이 늘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진실은 흔히 상대적이고 층위가 복잡다단하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감시자가 아니라 직접 플레이어로 뛰면서 뉴스에 개입하고 스스로 뉴스를 만들 거나 뉴스가 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계일보가 2013년 12월 정윤회 문건을 터뜨리자 박근혜 정부는 세계일보의 대주주인 통일교 재단에 세무조사를 들어가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석연찮은 이유로 사장과 회장이 바뀌었고 취재는 중단됐고 기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죠. 이 어마어마한 사건 앞에 대부분 언론은 한 발 떨어져 있었습니다. 최순실 게이트는 이미 예견돼 있었습니다. 언론이 침묵하거나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고 있었던 거죠.

2016년 7월 조선일보가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의 부동산 의혹을 보도한 뒤 익명의 청와대 관계자가 조선일보를 “부패 기득권 세력”이라고 비난하고 며칠 뒤 송희영 당시 조선일보 주필이 대우조선해양에서 접대와 향응을 받았다는 폭로가 쏟아집니다. 뒷조사를 통해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하는 것이죠. 언론이 자사 이해관계에 따라 권력과 거래를 주고받거나 여론의 방향을 컨트롤하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채동욱 혼외자식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조선일보가 검찰총장에게 혼외 자식이 있다는 보도를 내보냈죠. 채 총장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선거 기간에 국가 정보원이 개입한 정황을 수사하다가 불명예 퇴진했습니다. 기사는 조선일보에서 터뜨렸지만 뒷조사는 청와대 행정관이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죠. 본인이 아니면 뗄 수 없는 가족관계 증명서를 누군가가 들춰봤는데 청와대는 개인적 일탈이라면서 이 행정관을 직위해제하는 것으로 끝냈습니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는 2015년 2월, 후보자 시절 기자들과 낮술을 먹다가 케이블 채널의 패널을 교체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너스레를 늘어놓았죠. 같은 자리에 있었던 기자들이 사석이라는 이유로 일제히 침묵했지만 뒤늦게 녹취록이 흘러나와 파문이 확산됐습니다. “지가 어떻게 죽는지도 몰라요”라며 기자들 목줄을 쥐고 있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도 했죠. 이완구 총리는 결국 불법 정치자금에 연루돼 조기 낙마했습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는 한국 언론의 바닥을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전원 구조 오보가 아니었다면 아이들 몇 명을 더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종자 가족들이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그 순간 해양경찰은 에어포켓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공기를 주입하는 척 시늉만 했고 언론은 “사상 최대의 작전”이니 뭐니 정부 발표를 받아쓰며 막연한 ‘희망고문’을 계속했죠. 엉뚱하게도 유병언 유대균 관련 보도를 수천 건 쏟아내기도 했죠.

“세상에 (대통령님이) KBS를 오늘 봤네. 한 번만 도와주시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에 전화를 걸어 세월호 관련 보도를 마사지한 정황도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죠. 우리는 뉴스의 결과물만 보지만 그 이면에서는 뉴스가 만들어지거나 사라지거나 뉴스가 현실을 변형하거나 영향을 미칠 때도 많습니다. 객관적인 진실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론 보도도 수많은 이해관계와 정치적 역학관계의 결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뒤늦게 드러났지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 표를 던졌을 때 대부분 언론이 침묵하거나 합병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최순실의 강요에 의해 반대 의견을 묵살하고 손실을 감수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건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직업병 피해자들이 500일 넘도록 천막농성을 계속하고 있는데 관심을 갖는 언론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오히려 반올림 협상을 왜곡하는 보도가 쏟아졌죠.

미디어오늘은 권력과 자본의 결탁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의 언론이었고 핍박과 탄압으로 고군분투하는 정의로운 언론인들의 동지였습니다. 미디어오늘은 늘 진실의 편에 서왔다고 감히 자부합니다. 늘 가장 깊숙이 현장에 들어가되 도그마에 갇히지 않도록 다른 시각과 다른 프레임으로 사건의 실체와 이슈의 핵심을 추적해 왔습니다.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끊임없이 뉴스의 이면과 팩트 너머의 진실을 추구해 왔습니다.

깨어있는 언론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절입니다. 언제까지나 기울어진 운동장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죠. 우리는 권언복합체의 횡포에 맞서는 동시에 닫힌 언로를 회복하고 공론장을 복원하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표현의 자유가 광범위하게 허용되고 생산적인 비판과 토론이 활성화돼야 합니다.

미디어오늘은 1995년 5월17일 창간사에서 이렇게 선언한 바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부터 향하고자 하는 곳은 언론의 ‘심층’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한국의 언론을 작동시키는 본질적인 힘의 실체와 그것들의 운동 방식을 밝혀내고자 한다. … 우리가 앞으로 미디어오늘을 통해 보여줄 언론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이고 때로는 참회록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공정한 언론, 국민의 편에 서있는 사랑받는 언론을 기대하는 우리들의 의지와 희망의 기록이 될 것이다.”

이 선언은 지금도 유효할 뿐만 아니라 여전히 절실한 울림을 갖습니다.

제가 편집국장이던 시절 창간 20주년 기념사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디어오늘은 모두가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언론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미디어오늘은 권언유착 뿐만 아니라, 경언유착, 언론과 자본의 결탁을 고발해 왔습니다. 광고와 지면을 맞바꾸는 음습한 거래와 그런 거래가 은폐하고 있는 자본의 범죄를 추적하고 폭로해 왔습니다. 미디어오늘은 언론 현장에서 거꾸로 기자들을 취재하고 가장 불편한 기사를 써왔습니다. 수많은 협박과 고소·고발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투쟁하는 언론인들의 동지로 함께 싸워왔고 기득권 언론의 여론 조작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해 왔습니다. 언론 보도 이면의 진실을 추적하고 언론이 감추거나 왜곡하는 팩트의 본질을 파고 들었습니다.”

미디어오늘은 젊고 강력한 신문입니다. 미디어오늘은 어떤 이해관계와도 타협하지 않고 날 것의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단순히 현상을 좇고 중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슈의 생성과 유통, 그리고 인과관계를 파헤치겠습니다. 주류 언론을 비판·견제하는 것과 동시에 저널리즘의 대안을 모색하고 지속가능한 저널리즘 생태계를 위한 고민을 계속하겠습니다. 미디어오늘의 경쟁력은 타협하지 않고 치고 나가는 선명한 논조와 불편할 수도 있는 주제를 꺼내놓고 논쟁을 촉발하는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언론이 바로 서야 사회가 바로 선다는 미디어오늘의 창간 정신을 지켜나가겠습니다.

저는 미디어오늘 사장이자 편집인으로서 미디어오늘 기자들이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마주보도록 지원할 것입니다. 미디어오늘은 소유와 경영, 경영과 편집이 완벽하게 분리된 많지 않은 언론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좌파 성향 언론사로 낙인 찍혀 온갖 불이익을 겪었지만 어떤 타협도 하지 않았습니다. 미디어오늘의 경쟁력은 정의로운 기자들의 열정과 패기에서 나옵니다. 미디어오늘을 좀 더 강력한 매체로 만들겠습니다. 지켜봐 주시고 격려해 주시면 좋은 기사로 보답하겠습니다.

2017년 1월2일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이사 사장 / 편집인 올림.